中企에도 시한폭탄 "걸리면 밥줄 끊기고 문 닫을 판"

박민 2021. 1. 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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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국회 통과에 망연자실
추상적인 법조문 탓에 불안감 커
건설업은 특성상 유예도 받지 못해
의무구체화·면책조항 등 보완 요구도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경제계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민·김호준 기자]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사고라도 나면 징역형에 감당 못할 수준의 벌금까지 맞게 되는데 회사 문을 닫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전문건설업체 A대표)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이하 중대재해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중소기업계도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강화한 사업주와 경영진의 처벌 규정이 경영과 안전을 동시에 책임져야하는 중소기업들에게는 폐업이라는 최악의 직격탄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다.

건설현장에서 수십 년간 골조공사(건물 기둥을 세우는 작업)를 해온 업체 대표는 “지상 23층 규모의 80억원짜리 골조 작업에 하루 공사 인력만 80명~120명 정도가 투입된다”며 “아무리 근로자에게 안전교육과 안전조치를 한다고 해도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하면 저(대표)는 구속되고 회사(법인)는 벌금을 맞는데 이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는 “법령 통과 소식을 듣고 아내에게 난 언젠가 감옥 갈지도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 1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중대 산업재해’ 발생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어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와 별도로 법인에도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또 경영 책임자의 중대 과실로 인한 사고일 경우 피해자가 입은 손해액의 최대 5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 책임도 지도록 했다. 문제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라는 게 추상적이고 광범위해 ‘걸면 걸리는 규제’라는 비판이다.

해당 법은 공포 후 1년이 지난 내년 초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다만 법안의 여파를 고려해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공포 후 3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방의 소규모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업은 특성상 공사 기간 동안 일용직 근로자를 계약직 근로 형태로 쓴다”며 “우리 회사 정직원은 10명 내외지만, 공사 수행기간 일용직 근로자도 상시근로자 수에 포함돼 50명을 훌쩍 넘어 곧장 적용받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계는 회사 대표 구속 시 기업 존폐 위기가 불가피해 기업의 경영활동을 극도로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문을 닫게 되면 직원들 역시 실직이라는 악순환에 빠진다. 상·하수도공사 업계 관계자는 “영세 중소기업은 대표가 경영과 안전을 동시에 책임지는 경우가 많아 모든 현장을 다 챙기기에 역부족이다”며 “하청사에서 사고가 나면 원청사도 처벌을 받는데 원청사가 다음에 또 그 회사(하청사)를 쓰려고 하겠는가. 결국 밥줄이 끊겨 회사 문 닫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천 경인주물공단의 한 주물업체 대표도 “어느 사업주가 직원 다치라고 고사를 지내면서 경영 활동을 하겠느냐”며 “사업장에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비롯해 보호구 다 갖추고 공장을 운영하는데도 예측하지 못한 데서 사고가 발생한다”며 정부의 안전망 구축 책임도 되물었다. 사후적인 처벌강화보다는 예방과 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계는 이번 법령에서 처벌 근거가 되는 ‘안전 보건 확보 의무 조치’가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제정될 시행령엔 사업주 안전조치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지킬 경우 면책 조항이 담기도록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또 법 시행 이전 정치권을 설득해 사업주 징역 하한규정을 상한규정으로 바꾸고, 사업주 처벌은 ‘반복적인 사망재해’로 한정하게끔 보완 입법도 촉구할 방침이다.

한편 이번 ‘중대 산업재해’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중대 시민재해’에서는 10인 미만 소상공인과 1000㎡ 미만 규모 영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법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돼 안도할 수 있게 됐다”면서도 “중대재해법 통과로 대·중소기업 경영 의욕을 약화시켜 우리 경제의 체질 또한 약화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선 우려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민 (parkm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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