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문정인 "北, 국방력 강화 명시했지만 외교적 타결 의지 분명"

한예경 2021. 1. 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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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문정인 외교안보특별보좌관
"日 스가정부에서도 한일관계 개선 기대 어려워"
日 외교문제를 내치에 이용
역사문제 선해결 주장하면
징용·위안부 문제 출구 없어
문정인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 외교가에서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는 누구보다 특별하다. 그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있어도 글과 말을 못 봤다는 이는 없을 정도다.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출범 직후부터 특보로 활동해오면서 지난 3년 9개월동안 그의 말과 글은 전세계 언어로 번역돼 실시간 타전됐다. 코로나 때문에 고위급 외교 왕래가 거의 중단된 지금도 그를 만나겠다 청하는 이들이 줄을 섰다. 지난달 중국의 외교 수장 왕이 외교부장 방한 때도 중국쪽에서 먼저 찾아온 이가 문정인 특보다.

가공할 무게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문정인 특보는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도 세심했다. 외교적 수사를 배제한 담백한 말속에서도 혹시 파생될지 모르는 부작용에 신경을 쓰고, 의례적인 멘트도 허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티가 역력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힘을 강조하는 소위 '자주적 외교'에 대한 신념과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는 일은 문 특보에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한명의 세계 시민으로서 공동체에 대해 갖는 견해도 여기 포함된다. BTS에 세계인이 열광한다고 K-팝의 우수성을 해외에 홍보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이다.

문정인 특보는 대통령의 외교안보를 안팎으로 보좌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자기만의 본론을 풀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보좌진이었다. 그런 그가 특보직을 마무리하고 다음달부터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창신동 정부별관에서 소회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북한이 8차 당대회를 통해 국방력 강화를 명시했는데 비핵화에서 후퇴한 게 아닌가.

▶ 과거 입장과 크게 다르다고 보지 않는다. 이번에는 자위력 부분을 더 강조한 것 같다. 다른 게 있다면 과거에는 보복타격을 강조하다 이번에는 선제타격까지 거론하며 전술핵, 초음속 미사일, 정찰위성, 핵잠수함 등 미래 전략 자산에 대해 언급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려가 된다. 그러나 외교적 타결 의지는 분명한 것 같다. 우리에 대해서도 기존 합의를 준수하면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 역시 조건적이다. 미국과 우리 하기에 따라 북의 대응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문대통령 임기 후반인데, 북한 비핵화 시계는 하노이 이후 사실상 멈췄고 한중일 정상회담도 어려워졌다. 남은 임기동안 어떤 외교안보 성과를 기대하나.

▶ 문정부는 2018년 남북관계에 상당한 진전을 봤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이후 계속 답보 상태다. 곧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 한미관계도 정상궤도에 올랐으면 한다. 두 번째로 미중관계 어려워질수록 우리의 전략적 선택지는 좁아지므로 미중관계 개선을 바란다. 세 번째로는 외교안보현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게 아닌가. 문재인 정부 마지막 1년 동안 남북미 관계 진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만 들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겠다.

- 한일관계가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보인다. 해법은 없는 건가.

▶ 지금 한일문제는 우리 문제가 아니라 일본 문제라고 본다. 강제징용피해자와 위안부 문제는 행정부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문대통령은 일관되게 얘기해왔다. 사법부 판결을 어떻게 행정부가 뒤집나. 그래서 문희상안 같은 것으로 대안을 찾아보자는 건데.

징용·위안부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의 역사적 기억과 집단 정서 문제다. 상처받은 정서를 치유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대통령이 호소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문대통령은 꾸준히 노력했다. 일본 아베 전 총리와도 11번이나 전화 통화하고 4번을 직접 만나 역사문제는 치유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니 북한 핵문제, 중국의 부상, 경제협력 등 당면한 문제들부터 풀어가자고 했지만 일본이 거부했다. 아베 총리나 스가 총리 할 것 없이 모두 역사문제 선결 없이는 한일관계 개선이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접근으로는 한일관계 개선이 어렵다. 내치가 외교 행보를 구속하는 것 같다.

- 스가 정부에서도 한일관계 회복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인가

▶ 그렇다. 정상끼리 만나야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미국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서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한일관계 중재 나선다 해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징용문제와 동결자산 풀어주는 문제는 문희상안 같은 새로운 안을 나와야 하는데 피해자들이 동의해 줄지 의문이다.

- 지난해 국회 통과한 대북전단금지법 문제를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를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가 해외에 인권침해 정부로 비춰지는 것 아닌가

▶ 과거 보수정권 때도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제약이 필요하다는 게 큰 흐름이었다.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도 이런 연장선이다. 일단 법을 시행해보고, 시행착오가 있으면 고치면 될 일이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가 한 인터뷰에서 전단살포가 북한의 인권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상당히 회의적이라면서 한국의 주권 사항인데 미국 의회나 행정부가 그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정곡을 찌른 거라고 본다.

- 전단법 문제가 외교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가

▶ 전단법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국익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미국 내의 진보 이상주의자들과 네오콘들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가치보다 접경지대 주민 안전,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우리의 국익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대한민국 국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통과시킨 법안을 미국 정치인들이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친 처서라고 본다. 한국의 현실을 좀 객관적으로 파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 한국 외교 입장에서 보면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우려도 있을텐데

▶ 얼마 전 워싱턴 포스트에 로버트 라이트가 아주 유익한 칼럼을 기고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인선으로 보아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네 가지 오류, 즉 전략적 오만, 인지적 공감대 결여, 선과 악의 이분법, 그리고 국제법의 무시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나도 상당 부분 동의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을 것이다. 코로나, 경제 문제가 가장 우선이겠지만 외교에서도 기후변화·중국·이란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남긴 유산 때문에 이들을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그럼 북한 핵문제는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오바마 대통령 시절 '전략적 인내'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 그 부분은 한국 외교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을 강화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트럼프식 일방주의와 달리 우리 입장을 경청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 정부도 북한과 대화 협상을 통해 외교적으로 풀어보자는 게 기본입장이니 미국도 우리 쪽 요청을 일방적으로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략적 인내'라는 말은 워싱턴의 전문가나 언론이 붙인 말이지 오바마 정부가 만든 말이 아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안정적인 상황 관리를 위해 북한과의 협상을 나름대로 모색하고 있었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의 주류 외교 담당자 시각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다른 이슈도 많으니 북한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할 것이다. 북한이 인내와 자제를 갖고 나와서 협상 의지를 분명히 하면 미국도 이에 응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외교 진용이 짜여지는 향후 5~6개월간 북한의 행보가 가장 중요하다.

- 북한 아직까지는 도발 없이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북미대화 재개가 가능할까

▶ 북한과 미국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선언에서 출발해야 한다. 북한은 당시 합의 내용 준수하고, 미국도 그에 따라 화답한다면 북미 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 때는 톱다운 방식이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실무접촉 후에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바텀업-톱다운 절충식을 취할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윌리엄 페리를 대북고위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페리 프로세스 진행 했듯이, 바이든 대통령도 북에서 거절 못 할 인사를 고위 특사로 임명해 협상을 해나야 한다고 본다.

- 지난달 중국 왕이 외교부장 방한 후에 중국 외교부가 문 특보와의 회동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중국에 무슨 주문을 했나.

왕이 외교부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내 얘기를 많이 듣고 싶다고 해서 환담이 길어졌다. 핵심은 우리에게 미국 압박이 많은데, 중국이 제대로 해서 우리 어려움을 없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신냉전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왕이 외교부장도 신냉전은 역사의 반동이라고 했다. 미국이 주장하는 지경학적 탈동조나 기술억압 문제도 중국을 윽박질러서는 효과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중국은 주변국에 덕치를 해야한다고 했더니, 왕이 부장도 중국의 사상가 중에 권모술수를 쓰는 병가나 법적 강압을 강조하는 법가를 선호하지 않고, 덕치를 강조하는 유가사상을 선호한다고 얘기하더라.

- 그런데도 국제사회는 중국의 패권정치에 점점 멍들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6.25 전쟁 관련 연설에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일어나고, 호주를 향한 중국의 보복외교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 한중 국민 모두 그런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도 일본의 압제에 희생당한 나라이지만, 중국도 아편전쟁 이후 150년 수모와 치욕의 역사를 경험한 나라다. 이게 중국인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인민의 자긍심을 건드리면 중국 공산당도 통제가 안 된다. 역지사지해서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국민감정 갖고 싸우면 양국 모두 손해다. 중국의 여론 지도층도 그런 면에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 올해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인데 미중갈등 속에 우리 외교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미국이 쿼드 플러스 참여를 타진했을 때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연합에는 참여하기 어렵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었다. 한미동맹으로 중국을 견제한다면 중국이 가만히 있겠나. 미국이 한국에 사드 추가 배치하고 중국 겨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도 전진배치 한다면, 중국도 가만히 있겠는가. 우리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고 북중러 3각동맹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안보 환경이 더 악화할 수 있다. 현명한 외교적 포석을 해야 한다.

- 국제사회가 중국의 인권 억압 등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는데도 한국만 침묵할 수 있겠는가

▶ 가치와 국익의 문제다. 둘 다 얻으면 좋겠지만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둘 다 얻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치와 국익을 둘 다 얻을 수 있을까. 미국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주장했듯이 우리에겐 보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국익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국익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고 가치는 국격의 문제다. 가치가 생존과 번영을 담보로 삼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 그러다보니 미국과 동맹이 약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동맹의 기초는 국익이다. 동맹이 가능한 것은 공동의 위협과 공동의 적이 있을 때다. 위협 인식이 다르면 동맹의 강도가 약해질 수 있다. 중국 관련하여 미국은 강한 위협을 느끼고 있겠지만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한미가 똑같은 강도의 위협을 느낀다. 사안에 따라 동맹의 강도가 달라 질수 있다는 이야기다.

동맹은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국익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동맹을 목적 그 자체로 간주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 건전한 동맹을 위해 미국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월 6일 미국 의회폭동에서도 어두운 단면 목격하지 않았나. 미국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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