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담보로 주식투자..신용대출도 7일새 4533억 늘어
다급한 당국, 은행임원 불러
11일 대출 한도 긴급 점검
◆ 질주하는 한국증시 ◆
# 직장인 성 모씨(38)는 지난 7일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연 2%대 후반 금리에 1억원을 대출받았다.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하는 등 증시 상승세가 지속되자 아내가 "우리도 주식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성씨를 채근한 것이다. 재테크라고는 은행 예금밖에 몰랐던 성씨는 이번에 처음 주식 투자를 해본다. 직장 동료가 비트코인으로 한 달도 안 돼 2배를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성씨는 대출금 1억원 중 일부를 가상화폐에 투자할 계획이다. 금리가 워낙 낮아 이자 부담도 거의 없다.
지난 연말 금융당국의 대출 조이기로 주춤했던 은행권 가계대출이 연초부터 급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는 주식시장 활황에 따른 '빚투(빚을 내 투자)'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10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7일 현재 신용대출 잔액은 134조101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133조6482억원)과 비교하면 7일 만에 4533억원 늘어난 숫자다. 대출 한도를 받은 뒤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빼낼 수 있는 마이너스통장 신규 건수도 같은 기간 7411개나 급증했다. 하루 평균 발급 건수가 전달에 비해 2배 가까이 뛰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이 늘어난 것은 주식시장 활황과 생활자금 마련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연말에 막혔던 대출 수요가 연초에 몰리면서 증가세가 가파르게 보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5대 은행 신용대출은 생활자금 수요와 부동산·주식시장 투자 등이 겹치면서 지난해 11월 월별 증가폭이 사상 최대인 4조8495억원을 기록했다. 신용대출이 급격히 늘자 금융당국이 적극 관리에 나섰고, 이에 따라 지난달에는 한 달 새 443억원이 감소하기도 했다.
연초 신용대출이 급증하자 금융감독원은 11일 주요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과 긴급 점검 영상회의를 개최한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현황을 점검하고 대출 급증을 막아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달 여러 기업의 기업공개(IPO)가 예정돼 있어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할까봐 우려된다"며 "은행별로 제출한 올해 대출 계획에 대해 함께 짚어보고 대응 방향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에서 월별 대출을 포함한 연간 총량 관리 계획을 받고 있다. 주요 은행은 대체로 올해 가계대출 성장률 관리 목표를 5% 안팎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융당국은 고액 신용대출 조이기에도 나선다. 2억원과 3억원 등 큰 덩어리로 나가는 신용대출은 매일 모니터링하고 용도 외 사용도 추적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전체 가계대출이 코로나19와 저금리 등 영향으로 전년보다 9.73%(59조3977억원)나 불어난 사실을 고려하면, 일단 계획상으로는 올해 강도 높은 가계대출 조이기가 예고된 셈이다.
다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연간 대출 목표치를 획일적으로 고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에 대한 지원은 계속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도 핀셋 형태의 대출 조이기를 시작했다. 국민은행은 연초부터 '전세보증금 담보부 생활안정자금 등 일반용도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비율을 기존 '100% 이내'에서 '70% 이내'로 낮췄다.
DSR는 모든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한 사람의 소득 대비 대출 부담 수준을 나타낸다.
[윤원섭 기자 / 김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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