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버팀목 가족..'코로나 블루' 쯤이야

전지현 2021. 1. 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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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순수하고 영원한 童心 작가
휴식 같은 집·자연 등 담은
해학적이고 소박한 그림
천진난만한 그림 동화 같은 장욱진(1917~1990) 작품에 아이가 자주 등장한다.

그의 자녀 6남매는 지금도 "그림 속 아이는 나"라며 옥신각신한다. 6남매 모두가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확신할 만큼 다정했다. 천성이 깔끔하고 요리를 잘 했던 장욱진은 아이들 도시락을 싸주고 운동화까지 깨끗이 빨아 널었다.

장녀인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는 "아버지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가족 여행을 가고 자녀들에게 헌신적이었다. 돌아가신 후에는 '왜 맨날 아버지가 해 준 음식만 맛있게 먹고 직접 식사 한 끼를 안 해드렸을까'라고 자책한다"고 말했다.

`가로수(1978)`. [사진 제공 = 현대화랑]
장 이사는 최근 서울 현대화랑에서 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그리워 울컥했다. 부친의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1월 13일~2월 28일)에 걸린 그림들을 보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국전쟁 등 인생의 시련에도 붓을 계속 들 수 있도록 응원한 가족과 집, 자연을 해학적이고 소박한 선과 색으로 표현한 그림 50여점이 걸렸다. 삼성미술관리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뮤지엄산 등의 소장품이다.
장욱진 가족도(1972).
전시의 출발점은 1951년 전쟁중에 그린 '자화상'이다.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굳은 물감을 석유에 찍어서 갱지에 그렸다.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논길에 프록코트를 차려 입은 신사가 있고 그 뒤를 시골개가 따른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가는 전원 풍경이다. 프록코트는 화가가 입었던 결혼식 예복과 비슷하다. 장 이사는 "아버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전쟁의 비참함을 잊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한다.
장욱진 밤과 노인(1990).
장욱진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인 가족과 집, 자연은 코로나19 시대 더 소중한 가치가 됐다. 답답한 '집콕'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가로수 위에 올라가 있거나 하늘에 거꾸로 매달린 집이 그려진 그의 그림은 자유와 동시에 위로를 전한다. 장욱진에게 집은 가족의 휴식처를 넘어 창작의 공간인 작업실이었다. 남양주 덕소, 서울 명륜동, 충주 수안보, 용인 신갈 등으로 옮겼던 작업실에 따라 작품 세계도 달라졌다.
장욱진 자화상(1951).
그는 화백이나 교수(서울대)보다 집 가(家)자가 들어가는 화가(畵家)란 호칭을 가장 좋아했으며, "집도 작품이다"고 했다. 오래된 한옥과 농가, 정자를 손수 고쳐 작업실을 만들기도 했다. 집과 공간, 건축에 대한 관심은 그림의 조형적 질서와 구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집이나 나무를 중심으로 해와 달,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좌우 대칭을 이루는 구도를 자주 사용했다.

번잡한 도시가 싫었던 장욱진은 시골 자연에서 안식을 찾았다. 나무와 새, 개, 닭, 소, 돼지 등 동물과 공존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덕소 시절에 쓴 에세이 '강가의 아틀리에'를 통해 "나는 자연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동물을 그릴 때도 가족을 강조했다. 어미 소 아래에서 젖을 먹는 송아지, 마당을 뛰놀거나 하늘을 나는 어미 새와 새끼 새 등 동물 가족을 묘사했다. 서울대 교수직을 사임하고 전업 작가의 길을 가는 그를 대신해 서점을 운영하며 가장 역할을 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 그가 덕소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는 동안 떨어져 있는 6남매에 대한 미안함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장욱진.
1990년 생애 마지막 해 작품 '밤과 노인'은 죽음을 예견한 듯 흰 옷을 입은 노인이 하늘에 초연히 떠 있다. 마치 이번 생의 에너지는 모두 쏟아냈으니 후회 없다는 듯 지상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번 전시를 개최한 현대화랑은 1978년 '장욱진 도화전'을 시작으로, 1979년 '장욱진 화집 발간 기념전', 1999년 '장욱진의 색깔 있는 종이 그림', 2001년 장욱진 10주기 회고전 '해와 달·나무와 장욱진', 2004년 '이달의 문화인물 장욱진', 2011년 '장욱진 20주기 기념전' 등을 개최하며 화가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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