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식 빚투, 과열됐다"..금감원, 은행권 긴급 소집
개인 신용대출 잔액이 올들어 5대 시중은행에서만 올들어 1주일만에 4533억원 불어났다. 마이너스 통장은 7400여개가 새로 개설됐고, 기존에 마련해 놓은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낸 건수도 지난해 말보다 두 배 불어난 하루 2000건으로 증가했다.
코스피지수가 연일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개인들이 주식투자 자금을 신용대출에서 끌어 쓴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11일 주요 은행 임원을 불러모아 긴급 점검회의를 열기로 했다.
10일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에 따르면 이들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작년 12월말 133조6482억원에서 지난 7일 134조1015억원으로 4533억원 증가했다. 지난 12월에는 일부 은행들이 대출을 아예 중단하는 등 식으로 돈줄을 죄면서 신용대출 잔액이 전월보다 455억원 줄어 11개월만에 감소했다. 신용대출 급증세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부추긴다는 우려에서 금융당국이 일선 은행들에 대출 제한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연소득 8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1억원 이상 신용대출을 중단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을 확대했다.
연초들어 은행들이 개인 신용대출 문을 다시 열자마자 ‘대출 러시’가 재현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들어 증가폭은 주택 구입을 위해 ‘영끌(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지난해 하반기에 버금가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최근 대출 급증세의 원인으로 증시 상승세를 꼽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자금을 뜻하는 증권사 투자자예탁금은 작년말 65조5227억원에서 지난 7일 69조2718억원으로 일주일만에 4조원 가량 늘어났다. 언제 다시 대출제한이 이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권의 분석이다.
금감원은 11일 주요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과 화상 회의를 갖기로 했다. 은행별 신용대출 현황을 보고받고 다시 신용대출이 급등세로 전환한 이유를 면밀하게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작년과 대출 이유 다르다"
정부가 작년 11월 고소득자의 DSR 규제를 도입한 건 신용대출이 부동산 값을 끌어올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한 국민 우리 하나 농협 등 5대 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11월 전달에 비해 4조8495억원 불어 월간 증가폭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규제 시행 전 미리 신용대출을 받아놓으려는 막판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이달들어 벌어진 신용대출 증가세는 이때와는 양상이 다르다는 게 금융감독원과 은행들의 판단이다. 이미 고소득자(연소득 8000만원 이상)의 고액신용대출(1억원)을 죄는 DSR 규제가 시행된 가운데, 부동산 매수를 위한 추가 신용대출 수요는 한풀 꺾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부동산보다는 주식을, 실물자산 보다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매수하려는 수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은행들의 분석이다.
○1월 신용대출 증가는 이례적
통상 매년 1월 신용대출 잔액은 전달에 비해 크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월에는 기존 대출의 갈아타기와 정기 예적금 등 금융상품을 재가입이 이뤄진다”며 “급여생활자의 경우 연말 보너스 등으로 대출을 갚는 경우도 많아 신용대출 잔액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의 경우 5대은행 신용대출 잔액은 전달에 비해 2247억원 감소한 109조6861억원을 기록했다.
올들어 이례적인 ‘1월 신용대출 증가세’가 나타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작년 연말 주요 은행들은 가계대출 비중을 낮추고, 기업대출 비중을 높이기 위해 주요 신용대출을 닫았다. 정부 규제와 더불어 국제 건전성 기준인 바젤Ⅲ를 조기에 도입한 은행들이 급격히 가계대출 비중을 낮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 올해 조치가 풀리자마자 ‘풍선 효과’가 나타났다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연말에 억눌렸던 일부 서민대출 수요가 나타나고, 주식시장과 비트코인의 연초 랠리가 작용하면서 증가세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고나면 오르는 주식시장과 비트코인의 가격 말고는 신용대출 급증세를 설명하기 힘들다”고 했다.
○고액신용대출 억제 방침은 지속
일각에서 말하는 ‘패닉대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주일 간 증가한 4533억원은 작년 하반기 5대 은행의 주간 증가액 평균치(7282억원)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647억원(지난 5일), 604억원(6일), 484억원(7일) 등 일간 증가액이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에 흘러가는 신용대출을 억제한다는 정부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부터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의 건수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우려를 표한 건 주택 시장에 흘러갈 가능성이 있는 고액 신용대출”이라며 “연초 은행들이 신용대출을 재개하면서도 1억원으로 줄인 최대대출 한도를 다시 늘리진 않았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선 이때문에 금감원이 은행 부행장들을 부른 건 긴급한 추가 신용대출 규제 등의 조치보다는 현재 대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고 보고 있다.
○더 풀기 어려워진 대출 방정식
정부가 우려하는 건 넘쳐난 유동성이 부동산에 이어 주식과 가상화폐 등이 대출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지수가 '자고나면 오르는' 가운데 말리기도, 부추기기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출 규제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DSR 규제를 발표하면서 금융권역과 금융회사별 DSR 기준을 차주 개인별 DSR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DSR은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DSR 70% 전체 대출의 5%이하로 90%이 넘는 대출을 3% 이하로 관리하면 됐고, 9억이상 주택 보유자 등에게만 개인별 DSR 기준이 적용했지만, 앞으로는 모두 개인별 DSR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초강력 DSR 규제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서민 대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정부는 이달 중 은행권 전체의 월간 증가액 한도(2조원)을 손보는 등의 종합적 대출 정책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이런 가운데 주식시장과 가상화폐 시장에 ‘빚투’가 나타나면서 정부의 스텝이 꼬였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최근 은행들에 최근 올 한해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계획을 받았다. 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이달 말까지는 제출된 가계대출 계획에 대한 피드백을 주겠다고 했지만, 최근 기류가 바뀐 것 같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주식과 가상화폐 가격의 급등세와 변창흠 국토부장관이 조만간 내놓기로 한 주택 정책과의 조율 등이 필요하지 않겠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우려를 나타낸 건 신용대출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지 주식시장에 돈이 흘러가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대출 시장에 영향을 끼칠 변수가 더 많아지면서 더욱 상황을 타계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박종서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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