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호트 격리와 시설의 비극 / 권영숙

한겨레 2021. 1. 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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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난달 30일 서울 구로구 미소들요양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줄 서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권영숙|  사회학자·사회적파업연대기금 대표

작년 봄 미국 캘리포니아주 교도소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됐을 때, 감옥의 죄수들을 사회로 내보냈다. 전염병의 위험을 그들을 사회로 풀어놓는 위험보다 더 크게 본 것이다. 교도소에 ‘사회적 거리두기’란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이 조처를 취했다고 한다. 전염병의 제1원칙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확진자의 격리’인데, 죄수들이 밀집 격리된 교도소는 그 조처가 아예 불가능한 대표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럼 어떤가?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구치소 내 감염자가 200명이 되어도 300명이 되어도 교정당국은 확진자들을 빨리 파악하고 별도 격리시키지 않았고, 당연히 이들을 잠시라도 사회로 내보낸다는 생각은 아예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감염자는 1100명을 넘어섰다. 전염병 발생 이후 법무부는 수감자들에게 마스크도 배분하지 않았고, 자비 구입도 불허했다. 참고로 2020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한국 교정시설은 수용정원 4만7990명에 수용인원 5만4624명으로 정원 초과 과밀 상태다.

코로나19에 최선의 방역 방법은 사회적 거리두기다. 그렇다면 이미 격리시설에 밀집수용돼 있는 이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한국은 지금 격리시설에 코호트들을 함께 격리하여 확진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것을 ‘코호트 격리’라고 부른다. 코호트(cohort), 한국어로 번역하면 동류집단. 결국 교도소 감방의 죄수들은 함께 확진될 가능성도 그만큼 ‘동반’한다. 코호트 격리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최초의 코로나19 사망자가 지난해 1월 청도대남병원에서 발생했을 때다. 결국 격리시설에 있는 코호트들, 즉 동일집단 모두를 확진자와 함께 격리하는 것, 그게 코호트 격리였다. 그런 격리시설들로는 감옥,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요양병원(노인요양원) 등이 있다.

솔직히 한국의 케이(K)-방역이 영 미심쩍다. 이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매일매일 작동하는지 우리는 대략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국가든지 간에 코로나19는 그 사회의 속성과 민낯을 낱낱이 드러내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처럼 수용시설, 격리시설, 감금시설 등 ‘시설’(institution)이 넘쳐나는 사회, 즉 배제와 비가시화된 소수자가 많은 사회에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과연 어떻게 집행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알다시피 이 사회는 이미 비가시화된 이들에 대해서 항상 무심했다. 그것이 교도소, ‘나환자촌’, ‘부랑아’ 수용시설, 그리고 수십년간 형제복지원의 강제구금, 수많은 정신병원의 인권유린, 고아원, 보육원, 장애인 수용시설 등에서 ‘시설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격리와 감금시설을 ‘복지시설’이라며 허용한다.

그리고 이제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격리와 감금은 요양병원, 요양원까지 이어진다. 이는 불편한 현실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자식들은 부모를 죽을 때까지 지낼 격리시설로 보낸다. 합법적인 고려장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치사율은 60대 이상 고령자의 경우 20%를 넘고 50대 이하, 특히 30대 이하의 치사율은 매우 미미하다. 1월초 현재 코로나19 사망자 총 1000여명 중 25% 이상이 70대 이상 고령자들이다. 결국 현대판 고려장이 코로나19로 완성되는 셈이다.

격리와 감금의 ‘시설사회’. 어디까지 허용하려 하는가. 소위 ‘코호트 격리’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이 자기방어기제도 없이 코로나19에 감염되고, 방치되고, 죽고 있다. 전염병 앞에서 소수자와 약자들은 자신을 방어할 권리도 박탈당해야 하는가? 국가는 전염병을 통해 우생학적인 인구관리를 도모해선 안 된다. 전염병에 가장 취약한 이들을 ‘코호트 격리’라는 이름으로 격리해선 안 된다. 격리와 감금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모습이다. 각자도생과 적자생존, 자연도태의 3가지 성격을 지니는 ‘사회적 다윈주의’,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가 택한 자본주의 사회의 야만 상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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