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소다가 인생이라는 시즌을 끝낸 날..LA는 푸른 눈물을 흘렸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내 혈관에는 '다저 블루'의 피가 흐른다. 내가 죽으면 하늘에 있는 더 큰 '다저 블루'로 갈 것이다."
메이저리그(MLB) 전설의 명장, 토미 라소다 전 엘에이(LA) 다저스 감독이 하늘 위 더 큰 '다저 블루'로 갔다.
다저스 구단은 9일(한국시각) 성명을 내고 "라소다 전 감독이 캘리포니아주 풀러턴 자택에 머물던 중 심장마비가 왔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유망주 발굴 탁월했던 사령탑..'박찬호 양아버지'로도 유명
71년간 다저스 감독, 홍보대사 등 역임.."내 혈관은 다저블루"
“내 혈관에는 ‘다저 블루’의 피가 흐른다. 내가 죽으면 하늘에 있는 더 큰 ‘다저 블루’로 갈 것이다.”
메이저리그(MLB) 전설의 명장, 토미 라소다 전 엘에이(LA) 다저스 감독이 하늘 위 더 큰 ‘다저 블루’로 갔다. 다저스 구단은 9일(한국시각) 성명을 내고 “라소다 전 감독이 캘리포니아주 풀러턴 자택에 머물던 중 심장마비가 왔고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라소다 전 감독은 작년 11월에도 건강 문제로 두 달간 병원에 입원했었다. 향년 93살.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라소다 전 감독은 1976년 다저스 사령탑으로 부임해 1996시즌 도중 심장병으로 중도 사퇴할 때까지 21년간 다저스를 이끌었다. 두 차례(1981년, 1988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등 재임 기간 1599승 2무 1439패의 성적을 거뒀다. 유망주들에게 아낌없는 기회를 주면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9명이나 배출했다. 퇴임 직후인 1997년 사령탑 최고 영광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20 시드니올림픽 때는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따냈다.
라소다 전 감독이 발굴한 유망주 중 한 명은 박찬호였다. 그는 박찬호를 양아들로 대우하면서 무척 아꼈고 그의 지도 아래 박찬호는 빅리거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라소다 전 감독의 사망 소식을 접한 박찬호는 자신의 SNS에 “어떤 말로 이 슬픔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27년 동안 내게 사랑을 준 전설적인 야구인 라소다 감독님이 새로운 세상으로 가셨다. 마음이 무겁고 슬픔이 깊어지는 건, 그가 내게 준 사랑과 추억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며 추모의 글을 남겼다. 박찬호는 코로나19로 병문안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많이 안타까워했다.
라소다 전 감독은 구단 홍보대사 시절까지 포함해 무려 71년 동안 다저스에 몸담았다. 평소 “내 혈관에는 ‘다저 블루’의 피가 흐른다”면서 다저스에 대한 무한 사랑을 표현해왔던 그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엘에이 공항도, 엘에이 시청도 사망 다음 날 저녁 ‘다저 블루’ 조명을 켜는 방법으로 라소다 전 감독을 추모했다. 다저스타디움 외곽에는 푸른 장미가 섞인 조화가 놓이기도 했다. 다저스 구단주인 마크 월터 회장은 구단을 통해 “라소다는 훌륭한 야구 홍보대사였고, 선수들과 코치의 멘토였다”면서 “그는 항상 팬들을 위해 시간을 내 사인을 해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그를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소다 감독은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가장 유명한 말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었다. 그의 삶의 시즌이 끝난 날, 엘에이도, 메이저리그 안팎도 큰 슬픔에 빠졌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