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수리 5자매' 전주비전대, 열악한 환경 극복하고 비상하다

민준구 2021. 1. 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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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민준구 기자] 2020 KUSF 대학농구 U-리그 여대부는 서수월칠보체육관에서 열렸다. 코로나19를 뚫고 간신히 개최한 이번 대회에서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9년 여자대학부를 평정한 부산대가 전승 행진을 거두며 당당히 정상에 섰다. 하지만 부산대보다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바로 상대팀이었다. 지난 2년간 대학리그를 떠나있었던 전주비전대가 결승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독수리 5자매로 불린 전주비전대. 그들은 어떻게 코트 위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게 된 것일까.

※ 본 기사는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2년 공백 끝에 돌아온 전주비전대
전주비전대 농구부는 2007년 2월 창단했다. 현재 전라북도 내 유일한 대학농구팀이다. 2015년 대학농구리그 여자대학부가 생긴 이래 두 차례 참가했지만 2017년까지 통산 3승 21패를 거뒀을 뿐이다. 저조한 성적에다 선수 수급 문제를 겪은 전주비전대는 결국 2018년과 2019년, 2년에 걸쳐 대학리그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은 농구계에서 잊혀져 갔다. 2020년 3월이다, 오장수 감독이 기전중으로 떠났다. 그 공백을 전라도 농구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남궁정기 감독이 채웠다. 남궁정기 감독은 기전중과 우석대, 군산서해초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왔다. 지역 사정에 밝아야 하는 아마농구의 특성상 전주비전대는 가장 안정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남궁정기 감독은 “군산서해초에 사직서를 내고 나왔던 상황에서 전주비전대 감독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생각에 들어오게 됐다. 사실 여자농구판에서 10년 넘게 있었다. 이번이 내 지도자 인생의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또 운이 좋게도 자리가 생겼다”라며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 전주비전대는 새 감독이 온다고 해서 크게 나아질 상황은 아니었다. 학업 중심의 선수, 확실한 운동 목표가 없는 선수를 데리고 농구부 성적을 단기간에 올리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선수가 부족했다. 뛸 선수도 없었고 훈련할 선수도 없었다. 억지로 긁어모으려고 해도 주간 수강, 야간 수강 등 수업 시간대가 다른 선수들의 일정에 막혔다.

남궁정기 감독은 “사실 외부에서 전주비전대를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전주비전대와 연습경기를 해본 팀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보면 운동을 안 한 티가 너무 난다는 평가가 많았다. 나 역시 그런 오해를 한 적이 있다. 근데 막상 현장에 와보니 시스템 자체가 훈련량을 늘릴 수 없는 구조다. 운동부 선수들이 가는 학과는 아동복지학과, 태권도체육학과, 사회복지경영학과다. 근데 사회복지경영학과의 경우 야간 수강이 있다. 근데 아동복지학과는 보통 오후 4시에 끝난다. 또 일주일에 하루는 아예 운동을 나올 수 없더라. 또 방학 때는 실습이 있는 학과가 있다. 운동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습이나 수업을 빼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자대학부와는 달리 여자대학부는 WKBL이 최우선 목표가 아니지 않나. 농구가 아닌 다른 꿈을 꾸는 선수들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운동을 시킬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운동량이 다른 팀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악조건 속에서도 전주비전대는 2020년, 대학리그 참가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업을 하면서도 농구 코트를 지킨 선수들이 있었다.

▲ 연합군 성격 강했던 전주비전대
전주비전대는 오랜 시간 대학리그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장 정상 전력을 갖추는 건 어려웠다. 문제는 심각했다. 전주비전대는 사실 연합군 성격이다. 박은하는 극동대, 정은별 역시 수원대 출신이었다. 박은정은 원래 극동대 입학 예정자였지만 1년을 쉬고 전주비전대에 입학한 케이스다. 처음부터 전주비전대에 입학한 선수로는 김승리, 임은빈, 박소현, 김미현이 있었지만 이들은 대학리그 경험이 없었다. 박은정은 “극동대에 입학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근데 시기상 전주비전대로 오는 과정에서 2019년 입학이 안 되더라. 그래서 1년을 쉰 다음에 입학할 수 있게 됐다. 운동은 계속 같이 해왔었다”라고 말했다. 김미현 역시 “오장수 전 감독님께서 연습경기를 지켜본 뒤에 같이 하자고 하셔서 오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남궁정기 감독에게는 남모를 어려움이 더 있었다. 감독 부임 이후 지도하게 된 선수들과 교감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사실 아마농구에서 자신이 선발한 선수, 그렇지 않은 선수는 분명 다르다. 차별을 두는 것이 아닌 그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대부분 이전 오장수 감독이 선발한 선수들이었다. 지도 방식의 차이도 분명 있었을 거다. 그런 부분을 좁혀가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대학리그 개막이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남궁정기 감독은 팀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게 힘들었다. 대부분 WKBL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 입학을 선택한다. 당장 프로 진출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 위해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박은정은 전자의 경우다. “원래는 대학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실업팀에 가서 농구를 하려고 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게 망가진 상황에서 신입선수 선발회에 지원하고 떨어지면 농구를 그만두려 했었다. 근데 그때 주변에서 대학에 가서 준비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렇게 이곳으로 오게 됐다.” 김미현은 실력 좋은 동기들에 밀려 대학을 선택한 경우다. 그는 “또래 선수들의 실력이 다들 좋고 또 나는 부족한 것 같아서 지원은 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더 배운 뒤에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김승리와 임은빈과 같이 여전히 목표를 정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운동 환경도 최악이었다. 남궁정기 감독과 선수들은 결국 제대로 된 합을 맞춰보지도 못했다. 문화체육관은 폐쇄됐고 선수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어렵게 치른 연습경기도 불과 2~3경기 정도. 선수들은 각자 개인 운동을 통해 몸을 만들어야 했다. 전지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정은별은 “뭘 맞춰볼 수가 없었다. 팀 훈련도 9월이나 되어서야 처음 해봤다. 패턴은커녕 기본적인 농구가 되지 않았다. 기전여고랑 초반에 몇 경기 정도를 한 걸 빼면 실전 연습은 전혀 없었다. 선수들도 부족하니 5대5 연습은 불가능했다”라며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전주비전대는 좌절하지 않았다. 남궁정기 감독은 선수들을 최대한 배려해 어려움 없이 운동할 수 있도록 도왔고 선수들 역시 똘똘 뭉쳐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다. 박은정은 “(김)승리랑 (임)은빈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다. 내가 멘탈이 약한 편인데 힘들어할 때마다 응원해주고 격려해줬다”라고 밝혔다. 막내 김미현 역시 “언니들이 있어 정말 큰 힘이 됐다. 또 주변에서 격려해주시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라며 단단한 모습을 보였다. 시간이 흘러 결국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가 열리게 됐고 몸보다 마음을 가다듬은 전주비전대 역시 출전 준비를 마쳤다.

▲ 전패 예상했던 전주비전대, 독수리 5자매는 강했다
전주비전대의 전력은 사실 운동 환경과 전력을 갖춘 다른 팀들에 비해 초라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들었지만 그중에서도 분명 차이는 있었다. 전주비전대는 가장 준비가 되지 않은 팀이었고 뛸 수 있는 선수들도 불과 5명이었다. 정은별은 기전여고와 연습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내년 7월 복귀 예정이다. 박소현 역시 십자인대 부상 및 개인 문제로 뛸 수가 없었다. 모두가 전주비전대의 전패를 예상했고 남궁정기 감독과 선수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궁정기 감독은 “대회 전에 선수들한테 승패보다는 즐겁게 하다 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주변에서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웃음). 첫 경기가 끝나고 연락이 왔는데 몇점차로 졌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이겼다고 하니까 깜짝 놀랐다. 두 번째, 세 번째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좋아하면서도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나 역시 믿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박은정은 “우리가 운동을 철저히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 머신을 조금 달렸을 뿐이었다.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먹긴 했지만 그걸로 승리가 따라오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생각을 비우긴 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따라왔다”라고 전했다. 그렇다. 전주비전대는 단국대와 첫 경기에서 73-72로 승리하며 이변을 일으켰다. 이뿐만 아니라 2018 대학리그 통합 챔피언 수원대를 연장 접전 끝에 94-84로 크게 꺾었으며 4강에선 한림성심대를 60-53으로 격파했다. 대학리그 참가 이후 두 시즌에 걸쳐 얻었던 3승을 단숨에 해냈으며 결승 진출이라는 결과를 내기도 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특히 단국대와 첫 경기에선 자칫 잘못했다간 패할 수도 있었다. 본인 스스로 최악의 경기였다고 평가한 박은정은 “처음에 안 풀리니 끝까지 안 됐다. 자신감이 완전히 떨어지더라. 승리와 은빈이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수원대 전까지 망쳤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미현도 “궂은일만 하자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잘 풀렸지만 팀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경기를 했다”라고 바라봤다. 전주비전대는 5명의 선수로 5일간 4경기를 치르며 투혼을 불살랐다. 결국 부산대와 결승에선 지친 기색이 확연히 드러났다. 부산대와 객관적인 전력차를 떠나 선수들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시종일관 끌려다니며 68-86, 18점차 대패로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박은정은 “한마디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니었나 싶다”라며 웃음 지었다. 김미현 역시 “부산대는 정말 세더라. 그래도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준우승이란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남궁정기 감독은 “솔직히 말하면 부담이 될 정도의 결과였다. 운동한 것에 비해 너무 좋은 성적을 내 기쁘기도 하면서 부담도 된다. 주변 기대도 많이 높아졌다. 또 학교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게 소득이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패했지만 끝까지 웃으면서 경기를 치렀다. 그렇기에 만족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비전대는 대회 후 독수리 5자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그들에게 매우 어울리는 별명이다. 박은정은 이에 대해 “정말 힘들었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 걸 알아준 것 같아 기쁘다. 욕심도 났고 간절하기도 했다. 그래서 멋진 별명을 얻은 것 같다”라며 미소를 보였다. 김미현도 “고등학교 때도 5명으로 대회를 치러본 적이 많다. 그때마다 좋은 기억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게 돼 행복했다. 좋은 별명까지 덤으로 얻어 기분 좋다”라며 기뻐했다.

▲ 박은하의 프로 진출, 그리고 어두운 이면
전주비전대의 돌풍은 2020-2021 WKBL 신입선수 선발회까지 이어졌다. 주장이자 에이스였던 박은하가 3라운드 2순위로 청주 KB스타즈에 지명된 것이다. 경사였다. 사실 전주비전대 출신으로는 현재 인천 신한은행의 파이터 김아름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이제는 김아름에 이어 박은하가 전주비전대 출신 WKBL 선수가 됐다. 남궁정기 감독은 “(박)은하는 정말 열심히 했다. 팀 훈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몸 관리를 철저히 했던 것 같다. 너무 열심히 해서 안 봐줄 수가 없는 선수였다. 체지방률도 좋은 수준을 유지하며 게으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WKBL 진출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라며 극찬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박은하와 함께 신입선수 선발회에 나선 임은빈은 지명 실패 후 곧바로 학교를 떠났다고 한다. 편입 준비 중인 김승리, 개인 문제로 학교를 떠나게 된 박소현 등을 제외하면 현재 전주비전대에 남은 선수는 정은별, 박은정, 김미현이 전부다. 세 명의 선수가 다음 시즌까지 남아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심지어 정은별의 경우 부상으로 인해 내년 여름이 되어서야 복귀가 가능하다.

남궁정기 감독은 “각자의 목표가 있다면 그 길을 위해 언제든 배려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목표를 세우지 않은 선수들이 막막한 상황에서 섣불리 농구를 그만둔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내년에 신입생 선수들이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그래도 10명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보통 한 시즌이 끝나면 마무리 훈련 및 동계 훈련 등 다음 일정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전주비전대는 지난 대학리그 종료 이후 단 한 번도 훈련을 한 적이 없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문화체육관의 문이 다시 닫혔기 때문이다. 남궁정기 감독은 말없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훈련 일정이 없는 선수들은 기말고사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미 더 큰 어려움도 이겨냈던 전주비전대. 그들은 사실 여러 번 쓰러질 위기에서도 꿋꿋이 버텨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남궁정기 감독과 선수들은 신입생들이 대거 들어올 다음 시즌을 기대하고 있다. 주장을 맡게 될 정은별은 “인원이 많아진다는 건 교체가 가능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훈련도 조금 더 체계적이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에 만족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박은정과 김미현 역시 “1, 2학년들이 주축이 되어 뛰어야 하는 만큼 여러 면에서 힘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훈련 분위기나 환경은 더 좋아질 것 같다. 선수들이 많아질 것 같아 기대된다”라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또 예비 신입생들을 위해 선배로서 따뜻한 조언도 남겼다.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왔으면 좋겠다.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즐겁게 운동할 수 있다. 하루빨리 와서 같이 손발을 맞춰봤으면 한다.”

▲ 남궁정기 감독이 바라는 전주비전대의 2021년
남궁정기 감독은 본인 스스로 과거 전라도 농구 지도자 중 손에 꼽히는 악마였다고 밝혔다. 감독이 모든 것을 지시하는 구시대적인 지도자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전주비전대 부임후 남궁정기 감독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팀이 지고 있을 때나 이기고 있을 때 모두 큰 차이 없이 선수들에게 온화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남궁정기 감독이 이렇게 변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미세하지만 많이 바꾸려고 노력했다. 예전의 나는 강압적인 지도자였고 선수들에게 윽박지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바뀌고 싶었다. 다른 대학을 봐도 분위기가 달라진 걸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바뀌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왜?가 중요한 것 같다. 내게 있어 변화의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이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전주비전대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웃으면서 농구를 하는데 성적도 나오는 곳에 아이들이 더 오고 싶어하지 않을까? 다행히 올해 성적이 좋아 많은 신입생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아직 부족하다. 전주비전대에 오면 즐겁고 밝은 분위기에서 농구를 할 수 있다는 걸 직접 알려주고 싶었다.”

남궁정기 감독의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대학의 농구팀 감독이지만 선수들에게 오로지 농구만 강조하지 않고 있다. 자신보다 선수들의 미래를 더 걱정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승리도 잡으면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공부를 너무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더라. 나만 생각했으면 승리처럼 잘하는 선수를 놓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선수가 아닌 한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억지를 부릴 수는 없다. 보통 여자 선수들의 경우 고교 졸업 후 WKBL 진출을 시도한다. 그 정도의 기량이 안 되거나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려는 선수들이 오는 곳이 대학이다. 또 대학에서 배운 걸 가지고 다시 WKBL에 가려는 선수들도 있다. 차선책으로는 실업팀도 있다. 전주비전대에 오는 선수들에게는 선택권을 주려고 한다. 본인이 농구에 뜻이 있다면 지원해줄 것이다. 또 농구보다는 학업에 무게 중심을 두면 그 또한 지지해줄 생각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바로 정확한 목표를 정하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멈춤 없이 흘러가는 게 시간이다. 자신이 확실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면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다. 운동과 학업,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둘지 먼저 고민하고 왔으면 한다. 그래야 나도 해줄 수 있는 걸 미리 준비할 수 있다. 올해 7월에 MBC배 대회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몇몇 선수들이 자격증 시험을 본다고 했다. 농구가 더 중요했다면 막았겠지만 다녀오라고 했다. 그 자격증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루 훈련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 될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농구에 대한 고민을 덜어낼 수는 없다. 농구만을 바라보고 온, 그리고 올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남궁정기 감독은 전주비전대의 2021년을 하나의 분위기를 만드는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이에 대해 “전주비전대의 이미지를 확실히 바꿀 수 있는 시간은 3년이라고 본다. 올해 좋은 성적을 내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성적보다 중요한 건 팀 분위기라고 생각한다”라며 “학교 지원은 날이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물질적인 것보다 전주비전대만의 팀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선후배 격식을 없애려 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반발이 있겠지만 전체를 위한 선택이다. 선수들의 숙소 배정을 3인 1실로 할 생각이며 최대한 같은 학과 선수들이 같이 지낼 수 있게 하려 한다. 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프로 출신을 한 명 받으려 한다. 실패 사례가 많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과거 김아름도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성공 사례가 있는 만큼 한 번 시도해보려 한다”라고 밝혔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목표를 세웠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남궁정기 감독은 그렇게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성공할 수도, 또는 실패할 수도 있다. 다만 대학리그 참가조차 매해 불투명했던 전주비전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달라지고 있다. 한때의 성공에 취하지 않고 다음을 준비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 전주비전대 역대 대학리그 성적
2015_ 3승 9패(6위)
2017_ 12패(7위)
2020_ 3승 1패(2위)

BEHIND STORY.
전주비전대 선수들에게 수원대 전 승리가 간절했던 이유
전주비전대는 2020 KUSF 대학농구 U-리그 여자대학부에서 4경기를 치러 최종 3승 1패를 기록했다. 결승이었던 부산대 전을 제외하면 예선 및 4강에서 전승을 거둔 쾌거였다. 그렇다면 선수들이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날 인터뷰에 참가한 정은별, 박은정, 김미현 모두 수원대와 예선 마지막 경기를 꼽았다. 먼저 정은별은 자신이 몸담았던 수원대와 맞대결이었기에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부상으로 인해 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수원대에서 좋은 일로 나온 게 아니라서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수원대 선수들이 나를 보고 조금 신기해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 꼭 이겼으면 했는데 그 바람이 이뤄져서 너무 짜릿했다.” 정은별의 말이다. 단국대 전에서 부진했던 박은정의 경우 수원대 전 활약이 절실했다. 여기에 수원대로 진학한 친구 최지혜가 도발하며 승리에 대한 의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박은정은 “(최)지혜가 ‘너네는 우리 절대 못 이겨’라고 도발한 순간 무조건 이기려 했다. 파울이 많아 불안하기는 했지만 연장까지 가는 승부에서 제 몫을 다해 다행이었다. 다음에는 이기고 나서 도발했으면 좋겠다”라며 웃음 짓기도 했다. 박은정은 수원대 전에서 무려 22득점 13리바운드 5어시스트 4스틸로 펄펄 날았다. 김미현에게는 수원대 전 승리가 생애 첫 조1위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평생 농구하면서 조1위를 해본 적이 없다고. 그렇게 세 선수에게 있어 수원대 전 승리는 남다른 추억으로 자리했다.

# 사진_점프볼 DB(한필상,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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