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북한 무력과시로 기선잡기..대결 아닌 대화 국면 만들어가야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8차 당대회를 통해 미국에 적대 정책 철회를, 남한에는 남북관계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 5~7일 진행된 당 대회 사업총화(결산) 보고를 통해서다. 대미 요구의 골자는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고, 북미 관계의 열쇠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거두는 데 있다는 것이다. 남측을 향해서는 군사력 증강에 불쾌감을 나타내며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에 화답하는 만큼, 합의 이행을 위해 움직이는 것만큼 상대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대미, 대남 정책을 내놓지 않고 두 나라의 행보에 맞춰 비례 대응하겠다는 메시지 발신이다. 김 위원장은 대외정치 활동의 초점을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맞추겠다며 대미 압박 강도를 한껏 높였다. 중국, 러시아와 쌓아온 친선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신임 대통령을 상대로 기선잡기에 나선 모양새다. 북미협상 교착이 지속하는 가운데 바이든의 대선 승리 후 사실상 처음으로 나온 북한의 대미 메시지로 의미가 있다. 북한 이슈가 바이든 정부의 정책 최우선순위가 아닐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일단 미국에 공을 넘긴 것인데, 선결 요구 수준이 만만치 않아 단기간 내 협상 재개와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이 미국을 '최대의 주적'으로 규정하며 다양한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힌 대목이 특히 눈에 띈다. 소형·경량화된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계속하기로 했으며, 1만5천km 사정권 표적에 대한 명중률을 높여 핵 선제 및 보복 타격 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것이다. 사거리 1만5천㎞면 미국 본토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핵잠수함과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추진 중이라는 점도 처음 공식화했다. 동북아 무기 개발 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또 다른 긴장 요인이 생긴 것이다. 핵잠수함은 기술적으로는 무기한 잠항이 가능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은밀히 침투해 기습할 수 있는 전략병기에 속하고, 극초음속 무기 또한 현존 미사일방어(MD) 체계로는 요격이 불가능한 무기체계로 통한다. 향후 상황에 따라 북한이 얼마든지 고강도 도발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북한이 게임 체인저 개발을 가속한다면 동북아의 군비 경쟁을 촉발해 무력 대치를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대회 보고에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주목되는데 여기에 '완전한 비핵화'에서 '핵 군축'으로 가려는 의도가 담겼다면 이 또한 협상을 더욱 꼬이게 할 걸림돌이 된다. 어떻게든 피해야 할 시나리오들이다. 극한 군사력 대치는 공멸을 초래할 뿐이다. 모든 당사국이 협상에 문을 열고 대결 아닌 대화의 국면을 만들어가야 할 이유다.
북한은 남한에 여전히 고자세를 보였다.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한미 군사훈련 중지를 요구하고 남한 당국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 관계가 3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자위력을 강조하면서 남한의 억지력 확보는 외면하는 일방주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제안해 온 방역, 인도주의적 협력, 개별관광 등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도 했다. 비핵화 협상과는 별개로 남북 간 우선 할 수 있는 협력은 추진하자는 일관된 제의에 대한 거부다. 따라서 오는 3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이 북미, 남북 관계에서 큰 고비가 될 전망이다. 냉전의 산물인 한반도 문제는 매우 특수한 상황이어서 남북한의 노력만으로 풀 수 없다. 그렇다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고차방정식인 북미 협상의 진전만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이 이를 인정한다면 북미 협상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 남북 간 협력이 가능한 공간은 찾아 나가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 코로나19, 수해라는 3중고를 겪고 있다. 대외 협력 없이는 출구 모색이 어렵다. 미국의 새 바이든 행정부도 관망의 시간을 줄이며 대북 접점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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