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실은 카페로 바꾸고 급식땐 '막춤' 추는 교장
[화성시민신문 이슬기]
처음 이 부엉이가 시작된 계기는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의 등교가 늦어진 것과 연관이 있다. 기다렸던 서연고등학교의 첫 학생들의 등교를 축하하기 위해 교무부장, 수석 교사와 함께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올 4월에서야 첫 등교를 시작한 학생들의 위해, 세 개의 탈을 각자 빌려 쓰고 아침 교문 지도를 했다.
웃음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지난해 9월 3일 부엉이가 첫 선을 보인 이후로 박길훈 교장은 매일 두 번씩 '서여니'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손목에 찬 휴대폰에는 최신 유행하는 댄스곡들을 잔뜩 넣어두고, 아침에는 교문 지도를 하고 점심에는 급식실 앞에서 식사 지도를 한다. 주로 학생들과 인사를 하지만 가끔은 음악에 맞춰 막춤을 추면서 지나가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웃기기도 한다. 그에게 '서여니'로서의 시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부엉이 탈속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살핍니다. 확실히 그날그날 학생들의 기운이 다른 게 느껴지더라고요. 즐거운 일이 있으면 확실히 전체적으로 흥이 많고, 시험 때나 사건이 일어났던 날은 다들 기분이 다운되어 있습니다. 학생들의 매일을 알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각자 잘하는 게 다를 뿐이다
박길훈 교장은 수학 교사로 교직에 들어섰다. 그 역시 그가 왕성하게 교직 생활을 하던 때에는, 지금과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그의 교직 목표였던 적도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벌도 흔하던 때였다.
장학사를 거쳐 첫 교감으로 발령받을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교육철학이 갖춰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학교의 관리자로서 문제 학생들을 자주 만나고 상담한 경험, 동료 교사들과의 소통, 수시 선발 중심으로 바뀐 대입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면서 조금씩 학생 중심의 교육관이 생겨났다.
"저는 학생들이 무엇이든 남들보다 잘하는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서로 잘하는 게 다르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각자 잘하는 게 다를 뿐이잖아요. 지금은 내가 잘하는 게 뭔지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지 자신만의 재능이 나타날 것이라는 응원을 해 주고 싶습니다.
또 모든 학생이 자존감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명령이나 힘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결국 가장 피해 보는 건 힘이 없고 소심한 학생들입니다. 누군가를 때리거나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학생들이 차라리 낫지, 오히려 아무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학생들이 더 위험합니다. 심해지면 자기 자신을 해하는 일도 생기거든요."
부엉이 '서여니'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을 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내 교직 생활이 다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이 부엉이 탈은 제가 산 옷 중에서 가장 비쌉니다. 하지만 매일 두 번씩이나 이 옷을 입으니 전혀 아깝지 않죠. 앞으로 제 교직 생활이 몇 년 남지 않았는데, 그때까지는 계속 입을 생각입니다. 그동안 우리 학생들이 '베스트가 아닌 유니크한 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게 안 되면 적어도 우리 학교의 교조(校鳥)가 부엉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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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지난해 화성시마을자치센터 공모사업으로 진행한 마을잡지 '오롯'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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