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 미안해! 사과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칼럼니스트 여상미 2021. 1.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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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로 보는 육아맘] #아동학대 #양부모 #입양 #정인이법 #정인아미안해

2021년, 새해의 시작부터 전 국민의 공분을 사게 만든 이른바 '정인이 사건'. 이번 아동 학대 사건은 우리 사회가 입양 아동에 대한 관리가 얼마나 소홀했는지, 그리고 아동 학대에 대한 신고 및 이후 절차가 얼마나 안일한지 여실히 드러나게 한 사건이 되기도 했다. 다른 사건과 달리, 특히 안타까운 부분이 바로 아이가 대응조차 할 수 없는 너무나 어린 아기였기 때문이고, 학대에 대한 정황이 여실히 드러나 주변에서 할 수 있는 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를 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왜 악마에 가까운 양부모의 손에서 정인이를 구하지 못했을까?

사망 이전의 정황을 보면 일반인, 보육기관은 물론 의료기관까지 나서 학대를 의심하고 신고를 했지만 이것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가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경악했다. 양부모에 대한 인성, 그리고 그 끔찍한 죄에 대한 대가는 응당 처벌받아야 할 것이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의 아픈 영혼을 이제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또 우리 사회에 숨겨진 정인이가 있다면 지금의 행정 시스템이나 대응책이 이대로 괜찮을까 싶은 생각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내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아이가 네 살 정도 될 무렵,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또래 유아가 친부모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맞으며 신체적인 폭행이 가해지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꽤 오랜 시간 아이를 일방적으로 다그치는 것 같기에 다가가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할까 싶었지만, 설마 제 부모인데 별일이 있을까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신고 같은 것은 애초에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자꾸 그때의 내 행동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다. 아마 나 자신이 떳떳하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어른으로서 정당한 대응이 불가능한 아이를 위해 어찌 된 영문인지 상황 파악이라도 해보려고 노력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렇게 안일하게,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혹은 다른 피해가 올까 두려워 대응하지 못하고 돌아선 순간들이 정인이를 만들게 된 것은 아닐까? 나는 너무 부끄러운 어른이라 감히 정인이라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기 어렵다.

나는 과연 정인이에게 사과하고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 어른일까? ⓒ여상미

불행 중 다행인 걸까. 1월 8일 '정인이법'이라 불리는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물론 사건이 일어나야만 속전속결로 통과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이미 사망한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일 테지만 지금이라도 구할 수 있는 아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면 그래도 희망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번 개정안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자녀에 대한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을 삭제한다는 내용이며, 지자체 혹은 수사기관이 신고를 받으면 즉각 조사나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인이 사건으로 인해 아동학대법은 생각보다 빠르게 개정이 됐지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가득하다. 특히 APO(학대예방경찰관) 한 명당 담당 아동수가 6300여 명에 달한다고 알려진 수치 등이 그 예이다. 법의 개정과 함께 현실에서도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병행돼야만 이렇게 계속되는 아동 학대 범죄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세 차례 신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양부모에게 돌려보내지며 잔혹한 학대 속에 떠난 정인이를 생각하면 이제 와서 개정되는 법안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제부터라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바꾸기 위해 나서서 노력하는 어른들이 됐으면 좋겠다. 무엇이라도 바꾸고 나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 살리기 위해 노력한 이후의 사과만이 훨씬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정인아, 미안해.' 이 말로는 모든 것을 용서받기에 너무 단순하다.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부터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 모든 어른들이 함께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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