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비평준화 지역에 사는 중학생의 고민

안승민 입력 2021. 1. 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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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민 기자]

   
 시험. 전국의 모든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첫 시험을 맞이한다. 그러나 고교 비평준화 지역의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첫 시험이 아니다. 내 고등학교, 넘어서는 내 미래가 걸린 시험이기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현실, 이대로 두고 봐도 괜찮을까.
ⓒ 픽사베이
1974년 서울, 부산지역에서 과도한 고입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를 시행했다. 그 이후로 47년이 흐른 지금, 상당수 지역은 고교 평준화가 완료되었다. 현재 많은 대도시는 고교 평준화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고교 비평준화가 낯선 청소년들도 꽤 많다. 하지만 고교 평준화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고등학교에 아무나 다 가니까 중학생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말도 들었고, 학교가 난장판이 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이번 글에서는 고교 비평준화 지역에서 살아가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나는 경기도 화성, 동탄2신도시에 사는 중학생이다. 동탄2신도시는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꾸준히 평준화 전환 이야기가 나왔던 지역이다. 고교 평준화를 실시하기 위해 교육청에서도 꾸준히 도입을 시도했으나 난항을 겪었다. 어쨌든 중학교2학년인 내가 고등학교에 갈 때까지 평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전면 평준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이고, 그마저도 잘 될지는 모르겠다.

2020년에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한 학년 올라갔으니 설레는 마음이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설렘은 없었다. 대신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수행평가, 지필 평가, 그리고 중학교 내신 점수였다. 등교하자마자 수행평가를 보았다. 자유학기가 끝나고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나도 이제는 고입을 시작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주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필요한 점수를 찾기 시작했다. 이 학교에 가려면 내신이 몇 점이 되어야 하고, 저 학교는 몇 점이 필요하네. 친구들과 이 학교는 어떻고, 저 학교는 어떻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친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옆 지역의 소위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어떤 친구는 가까운 고등학교를, 어떤 친구는 고등학교 내신을 챙기기 위해 상대적으로 커트라인이 낮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우리 사이에는 주변 고등학교의 순위가 매겨졌다. '이것이 고교 서열화구나'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 고교 비평준화는 곧 고교 서열화로 이어졌다.

학교란 참 모순적인 공간이다. 배려와 협력을 가르치지만 정작 나는 옆에 있는 친구와 경쟁을 해야 한다. 옆에 있는 친구가 공부를 잘하면 내 내신 점수는 떨어지고, 옆에 있는 친구가 공부를 못하면 내 내신 점수는 오른다. 학기 말 성적표를 나누어 줄 때도 평균 점수에 눈길이 간다. 평균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내 내신 점수는 떨어진다. 반대로 평균 점수가 낮으면 내 내신 점수는 오른다. 이러한 현실 탓에 상대적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내 친구들이 시험을 못 보기를 바라야 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이런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고교 비평준화 지역 중학생들의 삶은 고달프다. 특히 중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상대적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는 친구들은 더욱 그렇다. 내 친구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친구 A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 A는 주말에도 학원을 갈 정도로 학업에 매진하는 친구다. 새벽 시간대에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시험 기간에 새벽 3~4시까지 안 자는 것은 물론이고, 시험을 보는 날에는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친구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모습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는 처지에서는 학업에만 집중하느라 자기 몸도 못 챙기는 것 같아서 걱정되기도 한다. 비단 A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 고교 비평준화 지역의 많은 학생이 이처럼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고교 비평준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구조의 문제다. 과도한 경쟁만능주의, 지나친 불평등과 승자독식의 사회구조, 학벌주의 등 문제의 원인은 너무 많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단번에 고칠 해결책은 없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을뿐더러 서로 얽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전면 고교 평준화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과도한 경쟁만능주의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 중학생들이 시험 기간에 에너지 음료로 버티며 밤을 새우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시험을 못 보는 것을 바라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고교 평준화는 학교가 진정한 배려, 협동을 배우는 공간으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많은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가 진행되고 있다. 매년 몇몇 지역들이 고교 평준화를 진행하고 있다. 공부를 잘 하는 것,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의 삶이다. 이제는 시험 기간에 밤을 지새우고 카페인 음료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교 평준화가 그런 변화의 시작이다. 전면 고교 평준화, 이제는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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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고교 비평준화 지역의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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