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20주기 맞아 출간된 산문집 《첫마음》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2021. 1. 1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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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의미 있는 시구를 남겼다.

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한국의 작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마해송, 이원수, 권오덕, 권정생, 정채봉 등을 든다.

이번 수록작 《마음 밭의 풍경》에서 말하듯 작가의 마음은 고향 순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생겨났다.

이번 산문집과 시집에 있는 많은 글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담담한 작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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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아이 사이 잇는 동화작가의 부활

(시사저널=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의미 있는 시구를 남겼다. 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한국의 작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마해송, 이원수, 권오덕, 권정생, 정채봉 등을 든다. 그리고 정채봉이라는 이름 앞에 서면 귀한 품성을 가진 분을 너무 일찍 데려간 하늘을 다시 보게 된다.

올해는 오십대 중반에 안타깝게 영면에 든 정채봉 작가의 20주기가 되는 해다. 작가를 기리는 산문집 《첫마음》도 출간됐다. 더 행복한 것은 작가의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가 같이 출간된 것이다. 어린이의 화법으로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각성을 주던 작가의 산문집은 그래서 더 절절히 읽힌다.

《첫 마음|정채봉 지음|샘터 펴냄|196쪽|1만3000원》

워즈워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더욱이 코로나라는 암울한 상황에서 맞는 신축년에 던지는 정 작가의 위로는 따스하다. 산문집의 제목은 작가의 시 《첫마음》에서 발췌해 실었다.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 언제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이번 수록작 《마음 밭의 풍경》에서 말하듯 작가의 마음은 고향 순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생겨났다. 그곳은 가족의 정을, 첫사랑의 들뜸을, 이유 없는 눈물을 싹트게 한 텃밭이었다. 작가의 작품 가운데 드문 장편소설 《초승달과 밤배》도 고향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었고, 많은 시와 산문에서 수구초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남 승주의 바닷가 마을은 순탄하기만 한 공간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마저 소식이 끊겨 할머니의 손에서 성장했다. 이 때문에 "저 바다 가운데 서 있는 바위섬에 파도 자국이 없을 수 없듯이… 바라기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저 바위처럼 아린 상처나 덧나지 않게 소금물에 씻으며 살 수밖에요"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글에 대한 열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재수 끝에 작가의 산실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꽃다발》로 당선됐고, 이후 무수한 한국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성인 동화'라는 새로운 문학 용어를 만들어냈으며, 한국 동화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동화집 《물에서 나온 새》가 독일에서, 《오세암》이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됐다.

하지만 지상에서 귀한 인재는 하늘도 필요로 했다. 1998년 말에 간암이 발병했다. 죽음의 길에 섰던 그는 투병 중에도 손에서 글을 놓지 않았다. 이번 산문집과 시집에 있는 많은 글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담담한 작가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출간된 첫 시집도 병상에 있을 때 펴냈다. 작가는 2001년 1월, 동화처럼 눈 내리는 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책 제목이 된 시 《첫마음》의 중간에는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이라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작가는 움직이는 환자용 침대를 따라 아이가 가져온 신발을 신어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하지만 작가의 따뜻한 동화와 시들은 여전히 유효하게 아이와 어른을 잇고, 땅과 하늘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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