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에서 '43일'..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왜 집무실을 옮겼나

김찬호 기자 2021. 1. 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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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남북 정부에 개성공단 재개 선언 촉구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 / 경기도 제공

경기도에는 전국 지방정부 중 유일하게 ‘평화부지사’가 있다. 2018년 정무부지사의 직함을 변경해 탄생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전국에 딱 하나뿐인 직책이지만 평소 관심을 받는 자리는 아니다. ‘평화’가 가시적 성과물도 아니고 지방정부 단독으로 달성 가능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 평화부지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임진각에 천막을 설치하고 부지사 집무실을 통째로 옮겨버렸기 때문이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원래 목표는 비무장지대에 있는 도라전망대에 집무실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엔사령부는 이를 ‘거부’했다. 경기도 부지사가 경기도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 부지사는 임진각에 집무실을 차리고 43일간을 지냈다. 지난 1월 6일, 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봤다.

-평화부지사는 낯설다. 역할이 무엇인가.

“경기도의 평화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경기도는 지정학적으로 북한과 접하고 있어 남북관계 변화에 민감하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 및 국회와 협력이 필요하다. 평화부지사는 이에 필요한 정무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또 민관협치, 사회적 경제, 도민 인권보호도 주요 업무다.”

-집무실을 도라전망대로 옮기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남북 정부에 개성공단 재개 선언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다. 2004년에 문을 연 개성공단은 남북 노동자 5만5000여명이 매일 만나던 ‘작은 통일’의 공간이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문을 닫을 때까지 약 3조8000억원의 누적 생산액을 기록했다. 남한 자본과 기술, 북한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된 그야말로 남북경제공동체 실험의 장이었다.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이 보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막상 도라전망대 집무실은 설치하지도 못했는데.

“유엔사가 막았다. 정확한 이유는 설명받지 못했다. 처음에 집무실과 관련해 1사단에서 조건부 승인을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1월 9일에 맞춰 도라전망대로 집무실을 옮기려 했다. 막상 당일이 되니 유엔사 승인이 안 났다며 안 된다고 했다. 유엔사는 ‘검토 중이다’라고 만했다. 어쩔 수 없이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 집무실을 설치했다.”

-유엔사가 막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유엔사가 정전협정에 대한 유권해석을 했거나 그동안의 관행을 근거로 막은 것 같다. 정전협정 서문에 유엔사는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출입에 대해서만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경기도가 행정 목적으로 출입을 하겠다는 것을 막아선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치다.”

-못 들어간다고 했을 때 심정은 어땠나.

“서글펐다. 우리 땅인데 다른 나라 사람들 허락을 받아야 했다. 심지어 도라전망대는 행정구역상 파주시인데 파주시장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시장이 시민을 만나러 가는 것도 외부자들이 통제한다. 이런 것이 남북관계 진전에 방해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지금은 수원에 있는 원래 집무실로 복귀한 것인가.

“지난해 11월 10일부터 12월 22일까지 43일을 임진각 집무실에 있었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학계가 호응을 해줘 개성공단 재개 선언 범국민연대회의가 만들어졌다. 저는 시급한 도정 현안을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23일 철수했다.”

-정부와 공감대는 형성했나.

“집무실을 옮길 때 통일부에 연락은 했다. 별도 지지 표명은 없었다. 경기도는 남북 간 대화와 교류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지방정부만이 할 수 있는 작지만, 실질적인 노력을 해왔다. 집무실 이전은 평화협력 노력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평화협력은 무슨 의미인가.

“남북관계가 기존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핵화 이후 평화가 따라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평화라는 큰 틀 안에 비핵화가 따라오는 것이다.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관계를 개선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선 평화 프레임을 정착시키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겠다는 의미다.”

-구체적 사례가 있나.

“내부적으로는 평화가 정착되고 교류협력 사업이 시작되면 경기도가 수혜를 받는다는 사실을 도민들에게 설득하고 있다. 도민들과 평화협력 토론회를 한다든지 토크 콘서트 같은 것도 추진해 왔다. 북한과의 평화협력 사업으로는 취약계층의 영양상태 개선을 위한 유리온실 사업을 추진했다. 필요한 물자는 유엔 제재 면제를 신청해 승인받았다. 지자체 사업으로는 최초였다. 현재는 스마트 양돈장을 지원하기 위해 유엔 제재 면제 신청을 할 예정이다. 가축전염병 공동방역이나 보건의료협력 등의 인도적 협력 사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왜 중요한가.

“우리는 미국이나 유엔 제재의 틀을 벗어나 남북이 자주적으로 관계를 진전시키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이에 필요한 일들을 정부가 다 할 수는 없다. 지방정부가 북한과 교류하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평화협력 지방정부협의회도 만들고 있다. 50여개 지방정부가 가입할 의사를 보여왔다. 정부가 나서기 어려울 때 지방정부가 남북협력을 이끌어간다는 취지다. 경기도는 북한과 협력하며 쌓은 지식을 공유하려고 한다.”

-현 상황에서 남북협력은 어떤 이득이 있나.

“코로나19 이후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의선과 경원선을 복원하면 물류가 유럽까지 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한국경제 먹거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될수록 경제는 살아날 수 있다. ”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개성공단 재개 선언이다. 평화에 대한 큰 틀은 이미 남북 지도자들이 합의했다. 4·27 판문점선언이나 9·19 평양공동선언에 이런 정신이 잘 담겨 있다. 이제는 실천이 필요하다. 허용 가능한 경계라는 말이 있다. 남북관계는 이 경계를 계속해서 무너뜨리고 넓혀 나가야만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계를 허물 용기와 결단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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