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바보였나"..'삼천피 시대' 소외된 일개미·주부도 '동요'

황덕현 기자,박기범 기자,이밝음 기자,강수련 기자 입력 2021. 1. 10. 08:01 수정 2021. 1. 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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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없이 진입하는 낮은 장벽..자금 유동성도 영향
"직장생활로 富 추월차선 못타..일의 가치 잘 생각하길"
코스피가 브레이크없이 질주하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의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120.50포인트(3.97%) 폭등한 3152.18을 나타내고 있다. 이날 코스닥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07포인트(0.11%) 하락한 987.79에 거래를 마감했고,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2.5원 오른 1089.8원에 장을 마쳤다. 2021.1.8/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박기범 기자,이밝음 기자,강수련 기자 = "테슬라, 삼성전자를 비롯해서 주식시장이 '불장'(전반적 상승장)인 걸 보면 그동안 주식 안 했던 제가 바보같아요. 지금하자니 너무 고점을 잡는 건가 싶어서요."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3150선을 돌파한 지난 8일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근로 의욕 상실'이라는 제목의 글 중 한 대목이다.

이날 비슷한 주제의 글은 줄줄이 이어졌다. "위험하지만 이제라도 주식에 뛰어들자니 현업(자영업)을 유지하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 차트를 보기엔 한계가 있다"는 하소연부터 "열심히 일해서 돈 번 나만 바보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후회도 있었다.

새해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가 열리자, 주식에 손 놓고 있거나 소외됐던 직장인·자영업자, 주부, 학생 등이 동요하고 있다.

7년차 직장인 이모씨(35)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씨는 "최근 친구들과 대화 주제가 부동산과 주식를 많이 하는데, 주식으로 번 돈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월급은 돈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일만 하는 나만 바보였나'하는 생각에 빠진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다음 주 주식계좌를 만들고 다른 이들을 쫓아가기로 했다.

주부 박모씨(35)도 "매일 카톡방에는 주식 얘기뿐이다. 대박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용돈벌이 정도는 된다는 지인들이 많다"며 "지금까지 뭐 하고 산 건지 후회가 된다. 지금이라도 계좌를 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들이 흔들리는 건 역시 분위기가 한몫한다. 3년차 직장인 황모씨(27)는 "주변 모두 주식, 비트코인(블록체인) 이야기밖에 안 한다. '근로소득 몇백만원 벌어서 뭐해'라는 분위기가 많다"고 했다.

최근 뒤늦게 뛰어든 이들의 적지 않은 성공 사례가 많은 덕분이기도 하다. 주가 고공행진 중 한발 늦게 '동학개미'에 합류한 이모씨(35)는 500만원을 주식에 태웠다. 그는 400만원을 삼성전자에, 나머지 100만원을 분산투자해 시세차익을 남겼다. 이씨는 "앞으로 현금 생길 때마다 주식에 투자해서 자본을 모을 것"이라고 했다.

5년차 직장인 이모씨(29)도 적금 만기된 목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그는 "투자심리가 큰 건 아닌데 뒤처지는 느낌 들까봐 주식한다"면서도 "카카오에 넣어둔 게 최근 200%까지 올랐다"고 했다. 이씨는 "(이를 본) 부모님까지 '주식하게 계좌 만들어달라'고 하신다"고 덧붙였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왼쪽부터)와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 나재철 금융투자협회장, 박현철 부국증권 대표이사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로비에서 코스피 3000 돌파를 축하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1.1.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일에만 충실하거나 주식에 관심 없던 이들의 투자심리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인 '애프터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위험이 높아지면서 생긴 직업적 불안정성과 확대된 자금 유동성의 결과로 분석한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금리가 낮으니) 쉽게 돈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인 가운데 (고용 유연성 등 때문에) 종사 직업의 성공이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 교수는 "본인들은 합리적 투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은 '막차만 안타면 된다'는 투기장 성격이 있다"며 "다만 너도나도 한다고 해서 뛰어드는 모방심리와는 별개다. (단순) 주식매매는 전문지식 없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생활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물질적 보상이나 보수가 (주식 및 부동산 등) 투자를 통한 부(富)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이유 중 하나"라고 판단했다.

이어 "심리학적으로 보면 (투자에서) 내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회복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는데, 이 경우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성이 커진다. 결국 (남들보다) 손해본다는 고통이 이득의 기쁨보다 크기 때문에 남녀노소 투자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역시 "(투자는) 변화된 불확실성 높은 상황에 적응하려는 안간힘이 투영된 결과"라고 했다.

다만 이 교수는 "(투자) 생각을 하는 동안엔 불안이나 이런 것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인데, 투자는 개인의 선택이더라도 일의 가치에 대해선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일의 가치가 돈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도 당부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9일 서울 광진구 광나루 한강공원 앞을 흐르는 한강이 얼어붙어 있다. 2021.1.9/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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