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이냐, 복원이냐' 문재인 정부 남북관계는 어디로 가나

김찬호 기자 2021. 1. 1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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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북한 경제난 타개 새 북미관계 필요… 선택지 적은 한국 정부 행보 주목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기남 기자

한반도 정세 전환이 시작됐다. 북한은 지난 1월 5일 제8차 당대회를 열었다. 오는 20일이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출범한다. 북미관계는 기존 셈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 설정을 예고하고 있다. 누가 먼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드러내느냐가 협상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에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1년이다. 2022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으로 역점 사업인 남북관계 개선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공식석상으로 이끌었지만 종전선언, 금강산 관광 같은 가시적인 결과가 없다. 남은 1년 성과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전체가 평가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정세 변화와 그 대응이 주목받는 이유다.

경제에 ‘방점’ 찍은 북한, 대화 나설까

미국 행정부의 출범 시기는 미리 정해진 상수였다. 반면 북한 당대회는 시기나 논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어 변수가 된다. 당대회가 주목받는 것은 중요성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당은 모든 국가 조직보다 위에 있다. 조경근 경성대 교수는 논문 ‘제7차 당대회와 북한 핵문제의 전망과 함의’에서 “당대회는 국가 최고의 권력기관이자 최고 의결기관”이라며 “군대는 물론이고 국정을 수행하는 내각, 인민을 대표하는 최고인민회의도 모두 당의 관리와 지도 아래에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1946년 제1차 당대회를 개최한 이래 75년 동안 총 8차례 당대회를 열었다. 자주 열지는 않았지만 당대회 때마다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졌다. 2016년 5월에 열렸던 제7차 당대회에서는 당시 김정은 제1비서를 조선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또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선언하며 사실상 핵보유국임을 공식화했다. 선당을 중심으로 선핵, 선경의 3대 노선을 정립한 것이다.

제8차 당대회가 주목받는 것도 북한의 국정운영 방향을 전망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당대회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경제 중시 기조다. 지난 5일 김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밝혔다. 경제실패를 인정하고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이다. 경제 중시 기조는 당대회에 참여한 대표자 중 행정경제부문 대표가 이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11월 북한의 대중국 수출이 2000달러밖에 안 됐다”며 “최악의 경제위기가 집권 10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는 북한의 외교전략이 결국 대화에 집중될 것이라 판단하는 근거도 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정책적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경제에 방점을 찍었다”며 “경제 상황이 악화되지 않게 외교나 남북관계도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회사나 사업총화보고에 ‘대외관계 진전’이라는 말이 포함된 만큼 추후 협력이 강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 위원장이 핵 잠수함 등의 군사부문 성과를 강조한 것은 변수가 된다. 협상을 하더라도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기 때문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정부가 방역협력이나 개별관광 등을 매개로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미국, 중국과 함께 북한을 설득할 때나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의 입장을 기다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전략적 인내 정책을 쓸 수 있다”며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협상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오길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미국이 초기부터 접점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북한이 판을 깰 정도로 도발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월 5일 북한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가 개막됐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남은 1년, 한국의 선택은

북미가 관계 설정을 새롭게 시작한 상황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한국 정부의 선택지를 제한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실현 가능한 일부터 선제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도적 협력과 철도·도로 등의 공공 인프라 확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성과를 욕심내기보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018년 남북관계가 산 정상이라면 지금은 계곡까지 내려온 수준이다”며 “산 중턱 정도에서 차기 정부로 넘겨줄 수 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코로나19 백신 문제다”며 “백신 협력 등을 통해 판문점 선언 수준으로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당대회 이후 북한은 협상에 나설 것”이라며 “이인영 장관이 계속 나서는 것은 이런 낌새를 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를 이용해 비핵화로 가는 입구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미가 ‘비핵화’와 ‘대북 적대 정책 폐기’를 합의하고,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것까지를 비핵화의 입구로 제시했다.

반면 미국과의 관계 강화를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로 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 교수는 “미국 민주당 정부는 동맹국의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한미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과거 김대중 정부와 호흡을 맞춘 클린턴 정부의 ‘포용정책’이나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한국 입장을 존중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 원장 역시 미국과의 신뢰 강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 이유에는 차이가 있다. 김 원장은 “한미공조 강화는 한국 내 북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바꾸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지지한다면 정부가 북한문제에서 ‘퍼주기’ 프레임에 빠지는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은 것은 미국이 북한문제를 한국에게 맡겨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정부가 남북 간 합의사항에 대해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래야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북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을 넘어선 국제공조를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 교수는 “한국이 주역이 되는 것만이 대북정책의 성공은 아니다”며 “남북관계 중심이 아닌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남은 1년 동안 완전히 새로운 성과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기존 성과를 보완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새롭게 설정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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