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급돌봄노동 가치, GDP 대비 최대 3%"
[이창곤의 웰페어노믹스] 돌봄경제와 돌봄노동의 가치
돌봄경제- ① ‘보이지 않는 가슴’의 경제
한 아이가 태어나 일생을 온전히 살아가는 데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젖먹이 때야 말할 것도 없지만, 어른이 돼도 손길이 요구될 때가 있다는 건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깨닫는 사실이다. 아마 가장 절박한 순간은 늙고 병들어 제힘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이뤄지는 모든 손길이 ‘돌봄’이다.
거동이 힘든 어르신이나 환자를 돌보거나, 아이들 밥을 챙기고 학원에 데려다주거나 급한 사정이 생긴 이웃의 아이를 잠시 맡아주는 것 등의 돌봄은 한 공동체가 생존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노동’이다. 돌봄은 때로 대가가 치러지지만, 대체로 딸과 며느리 등 여성에게 떠맡겨진 채 그 값어치가 무시됐고,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돌봄, 결코 멈출 수 없는 필수노동
여성의 돌봄노동을 두고서 헌신이란 찬사의 수식어를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그 헌신이 그들에게 오히려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에 더해 억압의 굴레로 몰아넣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에는 많은 이가 눈을 감는다. 몇 세기 동안 자기 이익을 추구할 기회를 박탈당했지만, 여성 또한 주체적인 존재로서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제는 돌봄을 시장에서 살 수도 있지만, 여전히 저평가된 노동으로 누군가에겐 삶의 굴레이며 고통이지만,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박하게 필요한 보편적 서비스다. 특히 노동 관점에서 보면, 돌봄은 “인류의 생존을 가능하게 해준 노동”이며 “어느 시점에서도 멈출 수 없는 필수노동”이다.(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18세기 위대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의 후예들은 거동을 못하는 늙은 어머니를 병구완하는 딸의 수고, 아이를 위해 기저귀를 갈고 요리하는 엄마의 땀방울, 일을 잠시 쉬고 아이를 돌보는 ‘육아 대디’의 양육 같은 돌봄노동의 값어치를 주목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이른바 ‘비시장 영역’의 노동으로 값을 매기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수 경제학자는 근본적으로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자비롭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초기 경제학의 어록을 되뇌며, 인간의 이기심이야말로 경제성장에 기여하며, 만인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날 무급으로 이뤄지는 많은 돌봄노동은 개인들의 일상생활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고 현세대와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노동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을 움직이고 자동으로 규제하는 힘, 즉 ‘보이지 않는 손’의 경제가 있듯이, 사랑·의무·호혜 같은 가족 가치에 기반을 둬 움직이는 또 다른 힘, 즉 ‘보이지 않는 가슴’의 경제가 있다. “식탁을 차렸던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빵 굽는 이가 아니라 보통 아내나 어머니”인 것이다.(낸시 폴브레 미국 여성주의 경제학자) 이 돌봄경제는 또한 “은행 통장의 출입으로 기록되지는 않지만, 개인과 가족이 밥을 짓고, 청소하거나 아이의 기저귀를 갈며 노인을 수발하는 행위는 경제적 후생을 높이는 소득과 마찬가지의 역할”(윤자영 충남대 교수)을 한다.
코로나19로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이동 중단 등 인류사 이래 전례 없는 충격이 가해졌지만, 역설적으로 그동안 간과한 돌봄노동의 중요성과 가치를 새삼 체감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각 가정에서 공적 돌봄 서비스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일깨워줬다.
기실 여성주의 등 돌봄경제학은 주류 경제학과 달리, 일찍이 이런 돌봄노동의 가치에 주목해 무급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천착해왔다. 자녀를 돌보는 부모나 부모를 돌보는 자녀의 행위는 직접적인 시간 지출이며, 다른 일을 할 때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비용이며, 다른 유의미한 활동의 가치이기도 하다는 논지다. 그래서 그 가치를 화폐로 환산해 보여주려 힘썼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 무급 노인 돌봄은 2006년 미국 경제에 약 350조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했다는 연구나, 국내의 통계청이 2018년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국민총생산 대비 20.9~24.3%로 추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돌봄경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도전
이처럼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돌봄을 제공하는 경제부문을 두고 ‘돌봄경제’라고 한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돌봄경제학이다. 주류경제학에 도전장을 던지는 대안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 학자 중 한 명인 이토 팽 캐나다 토론토대학 교수는 2019년 12월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에서 열린 초청 세미나에서 “돌봄경제는 건강 돌봄, 교육, 개인, 사회 및 기타 서비스를 포함하며, 공식 및 비공식 부문에서 수행하는 유급 그리고 무급 일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자녀나 부모를 위한 지출, 병간호서비스를 구매하는 등의 유급 돌봄노동, 가족과 친구 이웃 등의 무급 돌봄노동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팽 교수는 한 사회가 돌봄경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두고서 이렇게 말했다. ①돌봄은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핵심으로 여성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젠더·인종·계층불평 등의 원천이다. 특히 ②유급 돌봄 부문은 고용 창출 측면에서 오늘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부문이다. ③직장을 택하거나 학교에 갈 때 여성들이 마주하는 공통된 제약이다. ④무엇보다 더는 돌봄을 가족에게 맡기거나,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고령화 사회 등 갈수록 돌봄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높아지는 흐름에 조응해,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을 추진해온 정부도 2019년 4월 발표한 제2차 사회보장기본계획에서 돌봄경제 개념을 공식적으로 담고,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적 운영인 이른바 ‘웰페어노믹스’ 관점에서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돌봄경제가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화폐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돌봄경제-②돌봄노동의 가치
돌봄은 딸과 며느리 등 가족 구성원이 무급으로 하는 일이 아직도 많다. 이처럼 자본주의 시장경제 영역 밖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다보니 돌봄은 여전히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그러나 가족이든 가족이 아니든, 모든 돌봄은 누군가가 자신의 시간을 지출하는 노동 행위다. 따라서 누군가가 투여한 그 시간은 엄연히 다른 활동의 기회비용이다. 이런 맥락에서 학자들은 아동과 노인 등을 위한 무급 돌봄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인정하기 위해, 돌봄노동 시간과 그 경제적 가치를 연구해왔다.
돌봄노동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법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돈으로 추산해낼까? 학자들은 이를 위해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돌봄노동을 정의하고, 둘째는 그에 근거해 돌봄노동 시간을 산출하는 것이다. 사실 돌봄노동을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하냐는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추정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그 정의에 따라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크게 달라지거나, 과소 또는 과다 추정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돌봄노동 하면, 얼굴을 맞대고 아이나 노인을 돌보는 직접적 행위를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이런 직접적 행동만으로 그칠 수 없다. 요양보호사가 거동하지 못하는 어르신을 돌볼 때 가사 지원을 하는 것처럼, 돌봄을 받는 아이나 노인을 위해 의식주 관련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돌봄노동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전자를 ‘직접 돌봄노동’, 후자를 ‘간접 돌봄노동’이라 지칭하며 이 둘을 합해 돌봄노동으로 규정한다.
이렇게 돌봄노동을 정의하는 데도 일반적인 가사노동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여전히 존재한다. 예컨대 자녀를 위해 요리하거나 쇼핑했다면 가사노동이 분명하지만 이를 돌봄노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돌봄노동을 둘러싼 쟁점은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 추정이 큰 편차를 보이는 결과를 낳는다.
셋째 요소는, 투입한 시간에 임금률을 적용해 돈으로 산정하는 것이다. 여기엔 ‘누군가를 돌보는 데 들인 시간을 실제 돈을 버는 데 썼다면 얼마일까’라는 가정에 기반을 둔 방식(기회비용법)과, 돌봄노동을 한 사람이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하게 할 때 치러야 할 값을 매기는 방식(대체이용법)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로 추산될까? 충남대 윤자영 교수(경제학)가 최근 이를 시도해 값을 내놓았다. 윤 교수가 이를 위해 사용한 기초자료는 ‘2019년 생활시간 조사’다. 이 조사는 만 10살 이상 가구원을 대상으로 1만2345가구의 약 2만9천 명에게 연속 이틀의 시간 일지를 10분 단위로 작성하도록 한 것이다. 윤 교수는 10살 미만 아동 돌봄(간호하기, 공부 봐주기, 책 읽어주기, 대화하기), 10살 이상 아동 돌봄, 장기 돌봄이 필요한 성인 돌봄, 돌봄과 관련한 이동 등을 직접 돌봄노동으로 분류하고, 음식과 식사 준비, 세탁, 청소 등을 간접 돌봄노동으로 분류했다. 그다음 돌봄 시간을 측정하고 여기에 노동자 평균임금률을 적용했다. 다만 남성에게는 남성의 시장노동 평균임금률, 여성에게는 여성의 시장임금률을 적용했다. 시간당 임금 자료는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를 활용했다.
연구 결과, 우리나라 만 15살 이상 개인은 여성이 남성보다 가사·돌봄 노동에 일일 평균 2시간 이상을 더 투입하고, 시장노동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2시간을 더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런 시간 투입은 자녀가 있는 가구와 없는 가구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10살 미만 자녀가 있는 가구의 남성은 가사노동에 겨우 0.77시간, 아동 돌봄에 0.91시간을 쓰지만, 여성은 각각 3.20시간, 2.99시간을 쓴다.
여성, 남성보다 3배 많이 돌봄노동
이런 계산을 통해 만 20살 이상 개인의 1인당 돌봄노동 시간은 남성이 연간 497시간, 여성은 1426시간으로 분석됐다. 특히 여성은 시장노동에 투입하는 시간의 약 77%에 해당하는 시간을 직간접 돌봄노동에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간은 10살 미만 아동 돌봄, 10살 이상 아동 돌봄, 가사노동 등으로 쪼갤 수 있다. 이 시간에 각기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임금을 준다고 가정하면 남성은 연간 평균 583만원~657만원, 여성은 1681만원~1858만원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만 19살 미만의 자녀와 함께 사는 가구주나 배우자 여성은 임금노동자의 연평균 시장 노동시간의 1.26배나 많아 그 경제적 가치가 2786~3261만원에 달했다. 미취학 자녀가 있으면 3539~4173만원으로 높아지는 걸로 추산됐다.
이를 전체로 환산하면 남성은 12조7천억~14조3천억원, 여성은 37조9천억~41조9억원에 이른다. 이를 거시지표인 국내총생산(GDP, 2019년 1919조400억원)에 견줘보면,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GDP 대비 2.64~2.93%에 해당한다.
윤 교수는 정부지출과도 비교해 제시했다. 그 결과는 보건, 교육, 사회보호 부문에 대한 정부지출의 20.52~23.78%에 해당한다. 윤 교수는 “이는 가정에서 무급 돌봄노동이 없다면 정부는 최대 20.52~23.78%에 해당하는 지출을 추가로 해야 함을 시사한다”며 “정부의 돌봄사회화 정책으로 무상급식, 보육, 방과후교실, 장애인 돌봄, 요양 관련 제도와 사업으로 가정의 돌봄노동이 공적 영역으로 상당히 이동했으나 여전히 가정에서 창출하는 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상당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상황에서 이런 돌봄노동이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필수적인 노동이고 한 나라와 사회,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지 새삼 뼈저리게 확인시켜준다. 나아가 누군가에는 돌봄이 고통이고 굴레가 될 수 있으며, 돌봄 공백을 비롯한 건강한 돌봄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얼마나 중요하지도 깨닫게 해준다. 기실, 돌봄노동의 가치를 어찌 화폐만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goni@hani.co.kr
<참고문헌>
낸시 폴브레 지음 윤자영 옮김, 『보이지 않는 가슴 돌봄경제학』, 2007, 도서출판 또하나의 문화
윤자영, 무급돌봄노동의 경제적 가치 『월간 노동리뷰』, 2020년 11월호 no 188,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코로나19 팬데믹과 유무급돌봄노동, 『월간 노동리뷰』, 2020년 11월호 no 188, 한국노동연구원
은기수, 코로나19 팬데믹과 자녀돌봄의 변화, 『월간 노동리뷰』, 2020년 11월호 no 188, 한국노동연구원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2020년 역대 가장 따뜻한 해였다…2016년과 동률
- “남조선당국 태도에 따라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
- ‘보통사람’ 아던의 뉴질랜드, 다시 ‘세계의 실험실’ 될까
- ‘슈퍼밴드’ 멤버는 남자만 된다니…여성 참가 배제한 jtbc 오디션
- 항암 치료 준비…나는 넘어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 [속보] 코로나19 신규 확진 641명…닷새 연속 1천명 아래
- 미드로 영어공부? ‘리슨 뚜우 미’ 남미·프랑스 배우 영어발음 듣다보면 ‘귀가 뻥’
- ‘폭행·협박’ 따지는 강간죄…‘동의 여부’로 판단해야
- 그날 밤 ‘강남 4구’만 교통지옥으로 변한 까닭은
- 눈길에선 벤츠보다 강하다? 야쿠르트 카트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