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은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한다"

문정인 2021. 1. 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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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중국공산당이 만든 나라다. 중국공산당을 타도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극한 대립을 전제한 것이다. 이념의 차이를 이유로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냉전적 발상일 뿐이다.

1992년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저서가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 그는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은 ‘역사의 종말’을 의미하며 “인류는 이제 이념적 진화의 종착점에 도달해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사회의 보편적 정치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다”라고 단언했다.

3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그의 예측은 참담한 오류로 귀결됐다. 서구 자유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고 냉전의 망령은 무서운 기세로 부활하고 있다. 2019년 7월23일 닉슨 기념관 연설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 공산주의를 인류의 공적으로 규정하고 중국공산당 타도를 미국 외교정책의 새로운 목표로 설정하며 사실상 신냉전을 선포했다.

ⓒAFP

트럼프 행정부는 이 신냉전을 네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개해왔다. 첫째는 지정학 전선이다. 중국이 군사력 증강을 통해 5대양 6대주에 걸친 군사적 팽창 의욕을 내보이고 있으므로 동맹과 연대해 이를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대(對)소련 봉쇄 전략의 언어 그대로다. 둘째, 지경학 전선이다. 중국의 보호주의 무역과 일대일로 구상이 국제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교역 대상국에 피해를 주므로 중국을 국제경제에서 고립시키는 무역과 투자 부문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가속하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과학기술 전선이다. 베이징이 국가 주도의 공격적 과학기술 정책으로 기술 패권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나라들을 중국에 예속하게 만들고 각국의 안보를 크게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처방은 국제사회와 기술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념 및 가치 전선이다. 중국공산당은 공산주의 이념 확산은 물론 중국식 권위주의 정치 모델의 비호 세력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홍콩보안법과 위구르 지역의 정치범수용소 등 광범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있는바,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집단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감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많은 부분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과거 미국이 그러했듯 경제력이 증대되면 군사력도 비례해 커지기 마련이다. 중국 역시 해로 안전과 자국 이익의 보호를 위해 해외 군사기지 확보를 추구할 동인이 있다. 또한 14개 국가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가 주변국과의 마찰을 완전히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중국과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 분야 탈동조화는 더욱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 후발국 중국의 기술 추적은 당연한 현상이다. 선도 국가인 미국은 기술경쟁력 강화로 맞설 수 있다. 이미 미국 의회는 이러한 기조로 대응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 내 산업스파이 행위에 대해서는 미국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상응하는 법률적 조치를 취하면 된다. 이를 섣불리 ‘중국 때리기’의 수단으로 삼는 순간 문제해결의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신냉전과 바이든의 반면교사

마지막으로 이념과 가치의 문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공산당이 만든 나라다. 중국공산당을 이념적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극한 대립을 전제로 한 말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탄압에 대한 공개적 문제 제기는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념과 가치의 차이를 이유로 상대의 시스템을 전복해야 한다는 주장은 냉전적 발상일 뿐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이제 40년, 본격적 경제성장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중국의 체제와 가치체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트럼프 행정부 식의 대중(對中) 정책은 미·중 두 나라는 물론 관련국 모두에게 피해를 끼칠 공산이 크다. 특히 이러한 행보가 국내 정치적 유불리만을 따지는 협소한 계산법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우려스럽다.

냉전기 미국 외교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호소한 바 있다. “신냉전은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한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직된 대중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신냉전의 파국을 피해나가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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