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출국 막은 날, 검사가 내민건 조작된 출금서류였다

양은경 기자 2021. 1. 9. 19: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사건 그날- 김학의 사건의 불편한 진실]
1편-불법으로 얼룩진 긴급출금, 가짜 사건번호까지 동원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작년 10월 28일 오후 항소심 선고 공판 출석을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2000∼2011년 '스폰서' 노릇을 한 건설업자 최모씨로부터 4천3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 무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500만원, 추징금 4천300만원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前文
뇌물수수·성접대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은 1심에서 무죄, 2심에선 뇌물 혐의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작년 10월의 2심 판결은 ‘김학의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지 6년 만에 나왔다. 뒤늦었지만 고위층 비리에 단죄(斷罪)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김학의씨 단죄를 위해 작동한 우리 사법체계의 이면(裏面)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국이 2019년 3월 태국으로 출국하려던 김씨를 긴급출국금지하는 과정이 불법으로 얼룩졌다는 것이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법무부 출입국공무원,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 검사가 불법에 관여했고, 공적 기관이라면 해선 안 될 ‘서류 조작’이 이뤄졌다.
본지는 그 과정이 기록된 한 제보자의 106쪽짜리 공익신고서를 입수했다. 그 내용은 법집행의 절차가 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무시돼도 이를 용인해야 하느냐,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 물음을 던져준다.

2019년 3월 23일 0시 8분,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에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의 긴급출국금지 요청서가 접수됐다. 이 검사는 민간인들이 주축이 된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파견돼 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요청서에는 김학의씨 사건번호가 기재돼 있었다. 긴급출금에는 사건 번호가 필요했다. 당시는 김씨가 성접대 의혹 관련으로 형사입건되기 전이어서 사건번호 자체가 없었고, 김씨가 다른 혐의로 입건된 사건도 없었다. 그런데 긴급출금 요청서에는 김씨가 과거 ‘무혐의’ 결정을 받은 사건번호가 붙었다.

◇검사가 김학의 긴급출금 요청서에 ‘가짜’ 사건번호 붙여

당시 긴급출금 요청서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요청기관 :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 검사 이규원)

② 사건번호 : 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호

③ 요청사유 : 3.25경 대검찰청에 뇌물수수 등 관련 수사의뢰 예정

여기에 등장하는 ‘2013년 형제 65889호’는 김씨가 2013년 중앙지검에서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은 성폭행 사건의 사건번호였다. 긴급출금 용도로 쓰일 수 없는 사건번호였다.

2019년 3월 20일 제출된 긴급출국금지요청서. '사건번호' 란에 김학의씨가 과거 무혐의처분을 밭은 사건의 번호가 붙었다.

당시 김학의씨는.태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현장 발권을 하고 출국심사를 마친 후 0시 20분에 출발하는 방콕행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검사의 긴급출금요청서를 근거로 김씨는 출국을 제지당했다. ‘김학의가 해외 도피하려 한다’는 얘기가 이미 언론에 알려져 김씨가 인천공항을 빠져 나가는 장면이 방송에 생중계됐다.

이후 ‘가짜’ 사건번호 대신 ‘가짜’ 내사번호가 등장했다. 이 검사로부터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접수한 법무부 출입국 담당 직원 A씨는 이를 상급자에 보고했고, 이 직원은 그로부터 7시간 뒤인 23일 오전 7시 상급자로부터 ‘긴급출국금지 승인요청서’ 파일을 전송받았다.

긴급출국금지는 검·경 등 수사권이 있는 수사기관만 할 수 있다. 현행법상 수사기관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접수해 대상자를 출금조치한 이후 6시간 이내에 긴급출국금지 승인요청서를 법무부에 내야 한다. 그런데 이 긴급출금 승인 요청서에는 ‘중앙지검 2013년 형제 65889호’가 아닌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1호’라는 내사번호가 적혀 있었다. 법무부 직원 A씨는 출입국본부장의 승인을 받아 이 내사번호를 전산에 입력했다.

긴급출국금지 후 6시간 내에 제출해야 하는 승인요청서. '사건번호' 란에 '서울동부지검 2019년 내사 1호'가 붙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 가짜 사건번호였다.

그런데 이 내사번호 역시 가짜였다. 제보자는 “법부무 전산입력 한달 뒤인 2019년 4월 22일 검찰 내부망인 킥스(KICS)를 검색했지만 해당 내사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제보자는 또 “두 달 뒤인 2019년 6월 18일 킥스를 재검색하자 같은 번호가 붙은 동부지검 내사 사건이 검색됐다”며 “그러나 이 해당 내사사건은 ‘입찰방해’ 관련으로 김학의씨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검찰 내부전산망인 킥스에서 긴급출국금지 한달 뒤 동부지검 내사사건 번호를 검색한 결과 존재하지 않는 사건번호로 나타났다.

◇동부지검장 官印 없는 것도 불법, 대검이 동부지검 회유 정황도

현행법상 긴급출국금지를 요청하려면 수사기관의 장(長)이 긴급출국금지 요청서를 작성해 법무부장관에게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긴급출금 요청서는 물론 승인서 모두 이규원 검사 명의만 있고 소속 지검장의 관인이 없었다. 이 검사는 파견검사 신분이라 ‘수사권’ 이 없기 때문에 내사사건 번호를 만들 권한도 없다.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동부지검의 고위 관계자는 “이 검사가 긴급출국금지를 요청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동부지검의 내사사건 번호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23일) 오전 대검쪽에서 ‘동부지검에서 추인한 것으로 해 달라' 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이 검사의 ‘가짜 내사번호’ 가 문제될 수 있음을 대검에서도 인지하고 동부지검에 정식 내사번호로 전산입력하는 식으로 무마하려 한 정황이다. 당시 전화한 대검 관계자는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으로 알려졌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우리가 내사한 사건도 아닌데 그런식으로 처리할 수 없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검사는 23일 새벽 동부지검 당직검사에게 “법무부·대검과 다 협의했다”며 “직원의 도움을 받아 임시번호를 만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당직검사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은 또다른 동부지검 관계자는 “이 검사가 당직검사와 협의해 내사번호를 만든 게 아니다. 당직검사도 이 검사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 검사로부터 조사단 업무에 관해 전혀 보고받거나 협의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이 검사가 동부지검 사건번호를 붙인 것 자체가 근거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검사는 동부지검 소속이 아니고, 그가 파견됐던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사무실이 동부지검 청사에 있었을 뿐이었다. 이후 이뤄진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동부지검 사건번호는 붙은 적이 없었다. 당시 김학의수사단 관계자는 “우리도 동부지검 청사에 사무실이 있었지만 원래 수사가 이뤄졌던 중앙지검 사건번호를 붙였다”고 했다.

제보자는 이 검사가 가짜 내사번호를 만들었다며 그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로 신고했다. 긴급출금 승인요청서 파일은 법무부 출입국심사과장⇒A씨 직속상관(6급)⇒A씨로 전송됐다. 그러나 수기(手記)로 적은 승인요청서 사건번호 필체는 이 검사의 서명 필체와 동일했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는 징역 7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다. 서울남부지법은 2011년 고발장을 접수하고도 전산에 입력하지 않고 가짜 사건번호를 적은 서류를 고발인에게 발송한 경찰관에 대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죄를 인정했다.

본지는 이와 관련 이 검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했으나 이 검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국금지의 유일한 증거, ‘맹탕’ 면담보고서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는 2018년 12월 26일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김학의씨의 ‘스폰서’ 사업가로 알려진 윤중천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면담하고 작성한 면담 보고서도 포함돼 있다. 이 보고서는 A4용지 세쪽 반 분량이었다.

윤중천씨에 대한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면담보고서. 윤씨 자필 서명이 없어 증거로 쓸 수 없는 이 보고서가 출국금지의 유일한 근거였다.

이 면담보고서에서 윤중천씨가 김학의씨의 ‘성접대’ 의혹을 부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만, 윤씨가 자신이 알고 지내던 김학의씨 외에 또다른 검찰 고위 간부에게 수천만원을 제공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성접대’ 의혹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김학의씨 사건 재판부도 진위 판단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본지는 법률적 문제 때문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또 ‘수천만원 제공’ 진술 역시 액수와 시점 등이 특정되지 않아 검찰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돈을 받은 시기가 2006년쯤이여서 뇌물죄 공소시효(10년)가 지나기도 했다. 김씨는 이후 검찰 수사에서 윤씨로부터 1억 3000여만원,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4300만원의 금품 및 향응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면담보고서에 언급된 부분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럼에도 해당 보고서가 김학의씨 긴급출금 요청사유로 ‘뇌물수수 등 관련 수사의뢰 예정’으로 적히는 방식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 면담보고서는 윤중천씨의 자필 서명도 없어 증거로 사용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윤씨는 나중에 ‘수천만원을 줬다’는 진술을 부인했다.

그런데도 이 면담보고서는 김 전 차관 긴급출국금지의 유일한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면서 과거사위는 긴급출국금지 후 뒤늦게 김학의씨를 수사의뢰하면서 언론에 “김 전 차관이 윤씨로부터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 및 향응을 받아 특가법위반(뇌물)혐의가 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고 했다.

☞김학의 사건은

김학의 사건은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2013년 그가 차관으로 임명되자 2006~2008년 윤씨의 원주 별장에서 촬영된 성접대 동영상이 폭로되면서 불거졌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김 전 차관의 성폭행 의혹에 대해 동영상속 여성이 피해자라고 특정할 수 없다며 2013년·2014년 무혐의 처분을 했다. 이 사건은 2018년 4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가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하면서 재점화됐다. 2019년 3월 18일 청와대에서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김 전 차관이 출국금지됐고 수사의뢰가 이뤄졌다. 1억 3000여만원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그는 1심에서 증거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성접대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처분됐다. 하지만 2심에선 사업가 최모씨로부터 받은 뇌물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