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 확진자의 생활치료센터 격리기.. "누구나 걸릴 수 있다"

익명 기고자 2021. 1. 9.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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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일정기간 머무는 생활치료센터는 2인 1실로 운영됐다. / 익명 기고자 제공

가족들에게는 오전에 음성 판정 문자메시지가 왔으나, 내 결과는 오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거주지 보건소에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양성이라고 알려줬다. 양성이면 문자 안내가 아니라 담당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다.

감염자가 여러명 나왔다는 행사에서 나는 내내 마스크를 착용했기에 음성일 거라 자신했다. 또 감염 같은 건 부주의한 사람들한테만 일어나는 일이며, 나는 매사 주의수준이 높으니 이런 불상사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바이러스 앞에서는 누구든 특별하지 않다.

내가 며칠새 거쳐 간 시·군·구의 보건소에서 쉴새없이 전화가 왔다. 먼저 인적사항을 묻고, 휴대전화 통신사, 사용하는 신용카드번호, 이용 차량번호 등을 물었다. 이런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었으나 일단 크게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죄인의 심정으로 묻는 대로 다 얘기를 하게 된다.

대기업 연수원 2인 1실에 배정

거주지역 보건소에서 다시 전화가 와 다급하게 바로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해야 하니 준비를 서두르라고 했다. 옷가지들을 가방에 넣고 있는데 집에 방역팀이 도착해 소독하고 갔다. 그 후 집 앞으로 가니 앰뷸런스가 도착해 있다. 세계대전을 그린 어느 영화 속 군용트럭에 올라탄 어떤 병사처럼 잔뜩 긴장하고 기다리니 어느덧 어느 대기업 직원 연수원에 도착했다. 지금에 와서 여유를 갖고 돌이켜보면, 각 보건소 담당자들의 전화는 친절했고, 생활치료센터로 격리되는 과정은 제법 체계적이었다. 또 평소에 보이지 않는 국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방을 배정받고 올라갔다. 2인 1실이었다.

내가 있던 생활치료센터의 시설은 상당히 좋았다. 한 기업이 새롭게 연수원을 지은 곳인데 직원들이 사용해보기도 전에 생활치료센터로 먼저 내놓았다고 한다. 정부에서 비용을 지불하겠지만 이에 응한 기업도 칭찬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기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모르는 룸메이트가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동병상련이기 때문에 거리감은 금세 없어졌다.

개인별로 침대가 있고, 세면도구, 생필품이 충분하게 제공됐다. 컵라면도 1인당 6개들이 1박스를 받았다. 이것저것 준비해 들어갔지만 사실 옷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 그렇게 열흘간의 생활치료센터 생활이 시작됐다.

첫날은 별생각이 다 났다. 감염 원인을 제공한 곳과 사람에 대한 원망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면 곧 사라졌다. 그러면서 좀 더 근원적인 생각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왜 내가 코로나19에 걸렸을까. 단지 재수가 없었다고만 할 수 있을까. 무언가 보이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반성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소식을 알게 된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걱정이 고맙기도 하고, 소문이 제대로 났나 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인들의 걱정에 대해 아무 이상이 없고 아프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의연한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나는 아무런 증상이 없긴 했다. 함께 방을 쓴 분은 미열도 있고, 근육통도 있었다.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게 사실이었다.

생활치료시설 격리자에게 하루 세끼 제공되는 도시락은 양도 많고 질도 괜찮았다. / 익명 기고자 제공

자가격리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마음의 걱정이 여러가지였다. 가장 큰 첫 번째는 나를 만난 가족과 지인들이 나에게서 감염되었는지 여부이다. 특히 어르신들을 감염시켰는지가 가장 불안했다. 크리스마스라고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댁을 찾아 점심과 저녁식사를 함께하고 왔고, 또 장모님과도 식사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장모님 검진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불안감이 상당했다. 다행히 그간 만난 모든 사람이 음성이었다. 감사의 마음이 몰려왔다.

두 번째 걱정은 나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음성임에도 불구하고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만난 사람들을 상세하게 말할수록 피해자는 늘어갔다. 일일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야 하는데 너무 미안하니 연락도 잘 못하게 된다.

세 번째 걱정은 내가 완치돼 사회로 복귀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보는 걸 꺼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나를 보균자로 인식해 불쾌하게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치자에 대해, 치료센터 퇴소자에 대해, 그리고 이후 전파력이 없다는 점 등에 대해 사람들의 거부감이 없어지도록 안내도 강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데만 집중돼 있는 것 같다. 확진 및 완치자 규모도 커졌으니 이들이 일반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데도 당국에서 신경을 쓰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마지막은 나 자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인데, 사실 위의 3가지에 비하면 걱정거리도 아니었다. 그만큼 지금 코로나19에 걸린다는 것은 건강문제보다 그 외의 발생하는 상황이 더욱 부담되는 분위기이다.

생활치료센터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나름의 일과가 있다. 오전 7시 30분이면 아침식사가 문 앞에 놓여 있으니 갖고 들어가 식사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오전 9시가 되면 체온, 산소포화도, 심박수, 혈압 등을 측정해 기록해야 한다. 정오에는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 2시에는 하루 동안의 쓰레기를 문 앞에 내놔야 하고, 오후 3시엔 새로운 쓰레기통을 들여놓아야 한다. 오후 5시엔 다시 체온 등을 측정해 어플에 기록한다. 오후 6시에는 저녁식사 도시락을 문 열고 갖고 들어가라는 방송이 나온다. 식사에 신경을 많이 써주는 것 같았다. 비록 도시락 스타일이었지만 상당히 괜찮았다. 간식도 많이 나왔다. 남을 만큼 양도 많았다.

센터별로, 지역별로 퇴소 기준이 다른 것 같았다. 입소 10일이 되면 검사를 하지 않고 퇴소시키는 곳들도 있었다. 열흘이 지나면 전파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검사하면 양성도 제법 나오는데 전파력은 없는 양성이라고 한다. 내가 있던 곳은 좀 까다로웠다. 8일차, 9일차에 연속 음성이 나와야 열흘째 나갈 수 있게 했다. 다행히 음성 결과가 나왔다. 아무런 노력 없는 결과였지만 기쁨은 대단했다. 국가시험에서 어렵게 합격한 느낌이었다. 양성이 나오더라도 11일 또는 12일째 퇴소를 하게 해준다고 한다. 기준이 통일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퇴소자들에게 생활치료센터 생활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나 개선점 등의 의견을 받는 절차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여러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충분히 질문하지 못하고,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해 아쉬운 점이 있다. 고생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잘 묻지 못했다. 그래도 헌신적으로 도움을 준 의료진과 센터 근무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익명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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