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국' 인텔과 동맹 가능할까..삼성은 '꽃놀이패'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황정수 2021. 1. 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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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칩 아웃소싱 생산업체로
대만 TSMC와 삼성전자 거론
경제전문 블룸버그통신 8일 보도
"TSMC, 삼성전자와 일부 칩 아웃소싱 협의 중"
오는 21일 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
"인텔 초미세공정 진입 늦다"는 지적에
5nm 양산 중인 삼성전자 TSMC 고려
CPU 아닌 GPU 외주 줄 것이란 관측 우세
인텔 10nm가 TSMC 7~5nm와 수준 비슷
대규모 물량을 외부에 맡기진 않을 전망
사진=한경DB


2019년 4월 16일 'Anyoung haseyo(안녕하세요)'라고 제목을 붙인 한 장의 사진이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강타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반도체 제국' 인텔의 라자 코두리 수석 부사장. 그는 점퍼에 운동화 차림으로 삼성전자 반도체의 발상지인 경기 용인 기흥사업장 조형물 앞에서 찍은 사진을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2019년 4월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을 방문한 라자 코두리 인텔 수석부사장의 모습. 라자 코두리 트위터 캡처


코두리 부사장은 미국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 전문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 AMD에서 GPU사업을 총괄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2017년 11월 인텔로 옮겨 인텔의 외장 그래픽카드 Xe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올린 사진 한 장에 반도체업계에선 다양한 관측이 쏟아졌다. 마침 코두리 부사장의 방문일은 삼성전자가 5nm(나노미터) 파운드리공정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날이다. 파운드리는 외부 업체의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사업이다. 이것과 연결지어 인텔이 CPU보다는 중요성이 떨어지는 GPU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맡길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

파운드리가 아니라 '메모리반도체 협력'을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코두리 부사장이 개발 중인 인텔의 그래픽카드에 들어가는 GDDR5 D램 조달을 위해 삼성전자를 방문했다는 얘기였다.

이후 약 1년 9개월이 지났지만 삼성전자와 인텔 간의 새로운 협력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코두리 수석부사장과 삼성전자와 인연은 이어지고 있다. 코두리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개최한 '삼성 SAFE 2020' 온라인 포럼에 연사로 나섰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와 인텔의 협업 가능성을 언급한 기사가 또 나왔다. 경제 전문 글로벌 통신사 블룸버그는 8일(미국 동부 시간) "인텔이 TSMC, 삼성과 몇몇 칩 생산 아웃소싱과 관련해 협의하고 있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했다. 인텔이 일부 제품의 생산을 TSMC 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맡길 것이란 애기다. 블룸버그 TSMC가 인텔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4nm, 5nm 라인을 준비하고 있다고 적었다. 삼성전자와는 초기 협의 단계(Talks with Samsung, whose foundry capabilities trail TSMC's, are at a more preliminary stage)라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보다는 TSMC와의 계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인텔이 '50년 자체생산' 고집 꺾을까

인텔은 자체적으로 칩을 설계하고 생산하고 판매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TSMC,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쉽게 말하면 OEM)업체에 주문을 줄 필요가 없다. 자체 생산 시설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인텔은 50년 넘는 역사에서 외주생산을 거의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인텔의 '외주 생산'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것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술력이 TSMC나 삼성전자보다 못하다"는 비판 때문이다.

인텔은 현재 회로선폭(전자가 흐르는 트랜지스트 게이터의 폭) 10nm 공정에서 제품을 양산 중이다. 선폭이 좁을수록 더 작고 효율성이 높은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현재 7nm, 5nm 공정에서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칩을 생산한다. 인텔의 주력 제품인 CPU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미국 AMD가 TSMC 7nm 이하 공정의 주요 고객이다. 시장에선 "AMD는 7nm 공정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인텔은 10nm 공정에서 나온다"며 인텔 제품을 깎아내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로버트 스완 인텔 CEO. 한경DB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인텔이 일부 반도체 생산 물량을 외주줄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7월 인텔은 2020년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전화 실적설명회)에서 "7nm 공정 개발이 부진해 외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인텔의 고백에 '기술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9% 급락했다. 

석 달 뒤인 지난해 10월에도 로버트 스완 인텔 CEO는 "2023년 인텔의 7nm 공정 또는 외부 공정 또는 두 공정의 조합으로 제품을 공급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엔 행동주의 헤지펀드로부터 기술력에 대한 지적을 받는 굴욕도 겪었다. 인텔 지분 0.5%를 보유한 헤지펀드 서드포인트의 댄 러브 CEO는 "인텔이 수차례 실책을 범하면서 삼성과 TSMC 등의 추격을 허용했다"며 "핵심인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에서도 AMD에 상당히 잠식당했다"고 지적했다. 또 '전략적인 대안'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오는 21일 2020년 4분기 실적발표와 컨퍼런스콜을 앞두고 있다. 이 때 스완 CEO가 파운드리업체를 이용해 칩을 생산하는 방안을 공개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를 앞두고 블룸버그가 "인텔이 TSMC, 삼성전자에 일부 칩 아웃소싱을 주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하자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텔과 TSMC, 삼성전자는 기사와 관련한 언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10nm는 TSMC, 삼성 7nm 공정에 비해 떨어지지 않아

그렇다면 인텔은 정말 TSMC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같은 파운드리업체에 칩 외주 생산을 맡길까.

우선 인텔의 기술력에 대한 비판, 즉 삼성전자나 TSMC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것에 대해 '실상은 다르다'는 주장도 상당하다. 삼성전자, TSMC가 내세우는 7nm, 5nm 같은 공정 이름이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인텔과 삼성전자, TSMC가 동일한 공정에서 생산한 반도체 칩의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비교해 인텔의 기술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한 IT 전문매체는 지난해 7월 "세 회사가 동일하게 '10nm'라고 이름 붙인 공정에서 생산한 칩을 비교했을 때 인텔이 생산한 칩에선 1제곱밀리미터 당 트랜지스터가 1억개, TSMC는 5200만개, 삼성전자는 5100만개였다"고 보도했다. 즉, 인텔의 10nm는 TSMC나 삼성전자의 7nm, 5nm와 견줘서 기술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텔, 삼성전자, TSMC의 반도체 공정 기술로드맵. 미래에셋대우


공정 앞에 붙는 숫자가 인텔에 비해 TSMC나 삼성전자가 좀 더 관대하다는 것은 파운드리업계에서도 나오는 얘기다. 물론 허무맹랑하게 붙이는 숫자는 아니지만 '이전 공정보다 생산 기술이 진보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마케팅용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텔의 외주생산 가능성은 꽤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단 인텔의 주력 제품인 CPU가 아닌 GPU 등이 대상이 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실제 최근 나오는 보도들은 인텔이 외주생산을 검토하는 칩에 대해 'CPU'라고 뚜렷하게 적시하지 않는다. 

로버트 스완 인텔 CEO 입장에서도 비(非) 핵심칩의 외주 생산은 나쁘지 않은 카드가 될 수 있다. 스완 CEO는 '엔지니어'가 아닌 'CFO(재무책임자)' 출신이다. 그만큼 경영 효율성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외주 생산 카드를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위기상황'임을 내세워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대해서도 "인텔도 외주를 줬다"며 방어할 수 있다. 

 인텔 외주생산은 삼성의 '꽃놀이패'

인텔의 외주생산 물량은 GPU가 됐든 CPU가 됐든, 현재까진 TSMC가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물론 퀄컴의 최신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스냅드래곤 888'을 삼성전자가 수주했던 것처럼 '반전'이 나올 수 있다. 인텔이 TSMC와 삼성전자에 모델별로 물량을 나눠 맡길 가능성도 크다.

삼성전자 실적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물량을 따낸다면 그만큼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TSMC를 기술력으로 이겼다'는 훈장도 갖게 된다.

만약 인텔 물량을 놓치더라도 '큰 타격'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인텔이 자사 생산시설을 놔두고 외부업체에 '대규모 물량'을 맡기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파운드리 생산능력의 한계다. 지금도 TSMC, 삼성전자 같은 '최상위권' 파운드리 업체들은 쏟아지는 주문을 생산능력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능력을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 연간 생산량이 40대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항공사진. 삼성전자 제공

이 때문에 TSMC가 인텔 물량을 받으면, TSMC는 인텔 물량만큼 다른 고객의 주문을 빼야할 수도 있다. TSMC에서 '팽'당한 고객은 대안을 찾아야하는 데 고려할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10nm 이하 초미세공정을 소화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 TSMC 두 곳 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주 여부가 올해와 내년 실적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텔은 외주를 줄 수 있는 반도체 제품의 양산 시점을 2023년으로 꼽고 있다. 2021~2022년은 양산을 준비하는 기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수주 자체가 주가에 긍정적인 뉴스가 될 수는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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