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아던의 뉴질랜드, 다시 '세계의 실험실' 될까

이본영 2021. 1. 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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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기획][토요판] 기획
주목 받는 뉴질랜드 총리의 길
37살에 집권 저신다 아던 총리
높은 인기로 노동당 정권 재창출
코로나 등 결단과 통합의 승부수
새 의회는 최고의 다양성 확보
'공감의 정치'가 성공의 비결
국제정치에 신선한 영향 발휘
스트롱맨 정치 '치료제' 부각
'저신다 마니아' 열풍 이어져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지난해 11월6일 새 내각 출범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웰링턴/신화 연합뉴스

데이비드 시모어(38) 뉴질랜드 행동당 대표는 싸움닭 이미지를 풍기는 정치인이다. 지난해 여름 윈스턴 피터스(75) 당시 부총리 겸 뉴질랜드 제일당 대표와 벌인 치졸한 설전은 이런 이미지를 더 굳혔다. 시모어는 이민법을 두고 대립하던 상대의 나이까지 들먹이며 피터스를 놀렸다. 권투를 좋아하는 피터스는 트위터로 “당신은 나와 링에서 붙으면 10초면 끝난다”고 큰소리쳤다. 시모어는 “내가 당신과 링에 선다면 노인학대로 기소당한다”, “트위터를 하면서도 이리 혈압이 오르는 피터스와 몸싸움을 한다는 건 그에게 좋지 않다”고 응수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뉴질랜드 제일당이 한 석도 못 건지자 “올해 소원 넷 중 하나가 피터스를 의회에서 쫓아내는 것이었다”며 환호했다.

시모어는 저신다 아던(40) 총리에 대한 대표적 공격수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시모어가 지난달 말 현지 언론에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했다. 아던을 “최상의 지도자”, “크게 칭찬받을 만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시모어는 아던이 “대중의 분위기를 읽고 통합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데 아주 뛰어나다”고 했다.

세번의 위기, 세번의 결단

야당 대표한테 이런 평가를 받는 집권자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기 어렵다. 2017년 10월에 37살 나이로 뉴질랜드 정부를 떠맡은 아던의 집권 1기는 어땠기에 이토록 후한 평가를 받을까? 답은 “크라이스트처치, 화이트아일랜드, 코로나19라는 세번의 기회”에 대중과 공감하고 통합을 추구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시모어의 평가에 함축돼 있다.

아던과 뉴질랜드 정부는 우선 지구촌 모든 이들의 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다. 인구가 약 500만명인 뉴질랜드는 8일 현재 누적 확진자 2188명에 사망자는 25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인구 대비 감염·사망자 수가 최저다. 지역감염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아던이 코로나 대응을 계속 정치화한다”고 비난하던 시모어도 아던의 대표적 치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던에 대한 높은 평가는 그의 결단력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방역 성과는 무엇보다 지난해 3~5월 51일간 시행한 국경 차단 등 전격적이고 엄격한 봉쇄 조처에 힘입은 바 크다. 단호한 대책이 나오기까지 아던과 뉴질랜드 정부도 고민을 했다. 고용의 8%, 국내총생산(GDP)의 6%를 차지하는 관광업에 미칠 영향부터 걱정됐다. 하지만 경제보다 보건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초기부터 강하게’(go early, go hard) 나가자는 기조가 잡혔다. 아던은 지난달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애초 집단면역 형성 또는 제한적 통제라는 두가지 선택지만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학 담당 최고 고문이 감염 곡선 평탄화가 뉴질랜드에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는 그래프와 우리의 보건 역량을 보여주는 자료를 갖고 왔다”며 “결국 감염 곡선 평탄화는 우리에게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던은 바이러스의 완전한 퇴치가 불가능하더라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길을 택했다고 밝혔다. 총리를 비롯한 내각 구성원 급여를 20% 삭감하기도 했다.

코로나 대응은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아던의 노동당이 대승하는 결정적 토대가 됐다. 노동당은 70년 만에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을 뿐 아니라 1996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후 처음으로 단독 과반(120석 중 65석)을 차지했다. 지금 뉴질랜드는 서구에서 코로나 공포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국가가 됐다. 지난해 10월에는 3만 관중이 수도 웰링턴에서 뉴질랜드 팀과 오스트레일리아 팀의 럭비 경기를 관람했다. 아던은 평소처럼 바닷가 휴양지에서 여유로운 연말 휴가를 보냈다.

아던 총리가 크라이스트처치 총격 테러 이틀 뒤인 2019년 3월17일 수도 웰링턴에 있는 모스크를 방문해 무슬림 여성을 안아주고 있다. 웰링턴/AP 연합뉴스

코로나 대응이 아던의 명성을 확고히 해줬다면, 앞서 국내외에 그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킨 것은 2019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극우 테러다. 무슬림 51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역사상 최악의 테러에 아던은 현장으로 달려가 스카프를 쓰고 피해자들을 껴안았다. 반이슬람 정서 확산에 서구 일각에서 히잡 금지론까지 나오는 터에 이런 행보는 파격으로, 또 그만큼의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졌다. “뉴질랜드의 모든 슬픔과 함께 왔다”, “당신들 편에 서려고 왔다”는 말과 행동은 총리와 정부가 불안에 떠는 공동체와 한편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곧 의회에 나와서도 아랍어 인사를 건네며 무슬림 공동체를 위로했다. 유명해지고 싶어 테러 현장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한 가해자에 대해서는 그 이름조차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단지 “범죄자”나 “테러범”이라고만 표현했다. 명성을 갈망하는 자에게 명성을 선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019년 12월 오스트레일리아 관광객 등 21명이 숨진 화이트아일랜드 화산 폭발도 아던의 강점을 드러내줬다. 그는 구조 인력을 포옹하고 위로해주면서 따뜻한 리더십으로 잘 대처했다는 평을 받았다.

아던의 인기를 높인 장면들에 대해 계산된 연출이라는 시각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직관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했다. 크라이스트처치 사건 때는 무슬림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친구한테 스카프를 빌려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고 한다.

토크니즘은 없다

약자나 소수자의 지위를 보여주는 지표는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게 내각, 의회, 기업 임원 등 고위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이게 얼마나 약자 집단 전체의 상황을 반영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상징성 때문에 약자와 소수자 집단에 속한 몇몇을 끼워 넣고 생색을 내는 ‘토크니즘’(tokenism)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뉴질랜드 정부는 아던의 영향 아래 토크니즘과 완전히 결별했다. 지난해 10월 선거로 구성된 의회는 다양성이 역대 최고 수준이다. 120명 중 여성이 57명(48%)이다. 성소수자는 전체의 10%인 12명이 의회에 진출했다. 내각 성원 20명 중 8명이 여성, 5명이 마오리족이다. 부총리 그랜트 로버트슨은 동성애자다. 최초의 아프리카, 스리랑카, 라틴아메리카 출신 의원이 등장했다. 의회와 내각에서 여성 비중은 인구 비례에 거의 부합한다. 여성 비중은 2017년 선거 결과 38%로 당시 역대 최고였는데, 이번에 10%포인트 더 증가했다.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밖 태평양 도서 출신은 인구 비중보다 높은 비율의 의원을 배출했다.

다양성 제고를 이끈 것은 여당인 노동당이다. 노동당 의원 65명 중 35명이 여성이다. 뉴질랜드의 새 의회는 이 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다양성이 가장 높은 의회로 평가받는다. 아던은 조각 내용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다양성을 갖춘 내각”이라며 “오로지 직무에 가장 뛰어난 사람을 고르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아던 총리가 크라이스트처치 테러 일주일 뒤 부근 공원에서 열린 금요기도회에 참석했다가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AP 연합뉴스

권력은 공감에서 나온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현실에 대한 비정한 표현이면서도, 강제와 압력이 사람과 조직을 움직이게 만드는 기본적 힘임을 수사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몇년간 맹위를 떨쳐온 도널드 트럼프(미국), 시진핑(중국),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터키), 나렌드라 모디(인도), 자이르 보우소나루(브라질), 로드리고 두테르테(필리핀), 빅토르 오르반(헝가리) 등 스트롱맨들은 힘과 강제가 국내외적 권력의 원천이자 실현 수단임을 강조해온 이들이다.

아던이 집권 후 보여준 모습은 스트롱맨들의 권력관과 배치된다. 그는 자신의 핵심적 행동 기준을 공감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입장과 고통에 공감하고, 그에 맞춰 움직인다는 뜻이다. 지난해 나온 평전에서도 아던은 친절과 공감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 방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우리가 왜 거기에 있는지를 망각하는 꼴”이라며 “세계는 그렇게나 많은 낯 두꺼운 정치인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또 “정치적 리더십에서 공격성이나 힘을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친절이나 공감 같은 것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본래 낙천적이라는 그는 앞니를 훤히 드러내고 웃는 모습인 경우가 많지만 재난 현장에서는 마치 자신이 직접 피해자인 양 슬퍼하며 운다. 내놓는 메시지 또한 고통에 빠진 이들과 한편임을 호소력 있게 강조한다.

공감의 정치는 뉴질랜드 원주민이자 대표적 소외 집단인 마오리족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아던은 2018년 4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만날 때 마오리족 전통 외투를 걸쳤다. 영연방 ‘백인 정권’의 지도자가 아니라 평등한 뉴질랜드 전체 시민을 대표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른 행사에서도 마오리족 의상을 종종 걸친다. 총리로 재임 중이던 2018년 6월 낳은 딸 이름에는 마오리어로 사랑을 뜻하는 ‘아로하’를 넣었다.

아던 총리가 2020년 2월, 영국 왕조와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 사이의 와이탕기조약(1840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해 원주민들과 함께 노를 젓고 있다. 와이탕기/EPA 연합뉴스

자신과 자기 나라, 거창하고 강한 것에만 집착하는 스트롱맨들과 아던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일화는 이어진다. 2018년 12월, 아던은 뉴질랜드로 배낭여행을 왔다가 피살된 20대 영국 여성의 가족에게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울먹였다. “당신들의 딸은 안전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미안하다”며 “손님을 환대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너무 아프고 부끄럽다”고 했다. 힘 대 힘, 협박 대 협박의 대결이 난무하던 냉전시대의 한 주역인 마오쩌둥은 핵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최악에 또 최악이 이어져 인류의 절반이 죽어도 나머지 절반은 남을 것이며, 제국주의는 쑥대밭이 되고 전세계는 사회주의화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승리의 과정에서 인류의 절반이 사라질 수도 있지 않냐고 말하는 지도자, 외국인 한명의 죽음에도 울먹이는 지도자의 차이는 20세기와 21세기 리더십의 차이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일까?

아던이 위기의 현장에서 보여준 언행과 표방하는 정치관은 국제적으로 새로운 지도자상을 제시하면서 평화 분위기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카프를 쓰고 무슬림 여성을 껴안은 모습은 아랍어와 영어로 ‘평화’라는 글자와 함께 두바이의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의 외관 전체를 빛이 되어 장식했다. 미국 언론 등은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하며 아던에게 ‘안티 트럼프’라는 별칭을 붙였다. 코로나 대응에서도 ‘국제적 공감’은 이어진다. 인구의 3배를 접종할 수 있는 코로나 백신을 확보한 뉴질랜드 정부는 토켈라우·쿡아일랜드·니우에·사모아·통가·투발루 등 남태평양의 뉴질랜드 자치령이나 독립국가에 백신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빈국들의 백신 확보를 위해 1천만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아던은 공감과 힘은 동전의 앞뒷면일 수 있다고 말한다. “공감력이 있으면서도 강할 수 있다”, “공감하는 지도자가 되려면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라이스트처치 테러범에게 아주 매몰찬 모습을 보이고, 테러 뒤 곧장 자동소총 금지법을 통과시키고, 테러범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악용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적 운동을 주도한 것은 그의 부드러운 동시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아더니즘’의 뿌리

아던은 뉴질랜드 사상 세번째 여성 총리이자 가장 젊은 여성 총리다. 그래도 나이에 비해 총리가 되기 전 정치 경력은 풍부한 편이다. 소도시 경찰관인 아버지와 학교 급식 일을 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아던은 17살 때 노동당에 가입했을 정도로 일찍 정치에 눈을 떴다. 뉴질랜드의 두번째 여성 총리였던 헬렌 클라크 밑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영국으로 건너가 토니 블레어 총리의 보좌관을 약 2년간 했다. 2008년 귀국해 출마한 선거에서 지역구에서는 떨어졌지만 비례대표로 최연소 의원이 됐다. 2011년에도 지역구에서 낙선했으나 비례대표로 연임에 성공했다. 2014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의회에 남은 그는 2017년 보궐선거에서 지역구 의원 자리를 차지하고 그 여세로 노동당 부대표가 됐다.

노동당의 위기는 인기를 높여가던 아던에게 도약의 발판이 됐다. 2017년 총선을 불과 7주 앞두고 최악의 지지율에 고민하던 노동당은 아던을 역대 최연소 당대표로 내세우며 참신함을 강조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노동당은 득표율에서 여당인 뉴질랜드 국민당에 36.9% 대 44.5%로 뒤졌지만 뉴질랜드 제일당 및 녹색당을 규합해 아던을 수반으로 연립정부를 만들었다. 아던의 성공 스토리와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은 뉴질랜드 국내외에서 ‘저신다 마니아’, ‘아더니즘’, ‘저신다 효과’, ‘트럼프 해독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아던은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로 규정한다. 국제사회주의청년연맹 의장 경력도 있다. 그의 성장과 인기에는 진보적 가치와 원칙에 대한 일관성이 한몫을 했다. 모르몬교 집안 출신인 그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2005년 이 교파를 떠났다. 2017년 <뉴질랜드 헤럴드> 인터뷰에서 “다른 측면에서는 관용과 친절함에 매우 집중하는 종교가 지닌 차별적 면과 타협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듬해에는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동성애자 행진에 참가했다. 그의 원칙적이고 비타협적인 면모는 2011년 뉴질랜드를 방문한 블레어 전 영국 총리한테 행사장에서 “당신이 지금 아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크 문제에 어떻게 다르게 대처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진 데서도 알아볼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거짓 정보를 근거로 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들러리를 선 블레어 전 총리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블레어 전 총리는 한때 자신의 보좌관이던 아던이 던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아던은 2018년에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내 생애 안에는 뉴질랜드에서 군주제가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며, 영국 왕실을 받드는 영연방 국가 지도자로서 다소 과감한 발언을 했다.

아던 총리(가운데 뒷모습 보이는 이)가 2018년 9월 생후 3개월 된 딸을 데리고 유엔총회에 참석해 있다. 아던 총리의 오른쪽 옆이 동거인 클라크 게이퍼드다. 뉴욕/EPA 연합뉴스

보통 사람으로서의 뿌리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총리도 한 명의 보통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도 아던식 정치의 특색이다. 총리 재임 중 동거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6주간 출산휴가를 썼다. 정부 수반이 재직 중 출산한 것은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에 이어 두번째다. 그는 방송 진행자인 아이 아빠가 바쁜 자신을 위해 육아에서 더 큰 몫을 맡기도 하고, 양가 할머니들도 육아에 ‘동원’한다고 했다. “난 엄마이지 슈퍼우먼이 아니다”라고 했다.

실현되지 않은 공약…외화내빈 논란도

뉴질랜드 정부는 2019년 시민들의 행복을 최우선하겠다며 국내총생산 대신 아동 빈곤 해결,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한 환경, 디지털 역량 강화 등 웰빙을 목표로 국가 정책 수립과 예산 배분을 하겠다고 밝혔다. 웰빙이나 행복을 국내총생산을 대체하는 경제 정책 목표로 삼겠다는 선언은 부탄이 원조로, 서구에서 이를 표방한 것은 뉴질랜드가 처음이다. 주거 문제의 획기적 개선, 임금 인상, 자본소득세 도입도 집권 1기 아던의 핵심 공약이었다. 특히 아동 빈곤과 폭등하는 집값 등 주거 문제는 뉴질랜드가 다른 복지국가들에 견줘 뒤처지는 분야로 꼽힌다. 아던은 뉴질랜드의 주택 문제를 “자본주의의 분명한 실패 사례”로 규정하기도 했다.

사실 뉴질랜드는 손꼽히는 복지국가이지만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북유럽 나라들에 그 대표성을 ‘양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뉴질랜드는 ‘세계의 사회적 실험실’로 불린 나라였다. 8시간 노동제 추진(1840년), 원주민 몫 의석 할당(1857년), 세계 최초 여성 투표권(1893년), 노령연금(1898년) 등 선구적 정책을 펼쳤다. 20세기 전반기에는 가장 광범위하고 철저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로 평가됐다.

노동당의 집권과 아던의 높은 인기는 ‘사회적 실험실’이라는 뉴질랜드의 별칭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도 낳았다. 그러나 집권 1기 아던 정부는 연정에 참여한 보수 정당의 반대와 중산층의 미지근한 반응 등의 이유로 진보적 공약을 현실화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10년간 저가 주택 10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은 지난해 8월까지 602채 건설에 그치면서 용두사미가 돼가고 있다.

그래서 아던은 위기에는 강하지만 구조적 변화를 이끄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는 불만도 나온다. 영국 노동당 정부를 이끈 블레어 전 총리의 ‘제3의 길’의 복사판이 될 것이라는 혹평마저 있다. 자신을 “실용적 이상주의자”라고 말하는 아던에게서 ‘이상’은 옅어지고 ‘개인기’만 남는다면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그의 매력에만 집중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노동당이 사실상 단독 집권한 지금 국면은 이 젊은 지도자가 국내외적으로 긍정적 영향력을 계속 발산하면서 롱런할 수 있을지를 가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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