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 듯 '핵잠수함·미사일' 꺼낸 김정은.. 실현 가능성 있나 [박수찬의 軍]
가상 적국 영토를 핵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뒤, 전술핵이나 재래식 전략무기 등 국가 수뇌부에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군 전력 확충에 나선다는 것이다.
북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북한은 9일 공개된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발표한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서울에서 미 워싱턴에 이르는 태평양 전역을 핵으로 공격할 의도를 드러냈다.
핵추진잠수함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군사정찰위성과 무인정찰기, 극초음속 활공무기 전투부 등을 언급하며 자체 방위력 강화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한반도 정세를 뒤바꿀 ‘게임 체인저’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노골화한 셈이다.
◆‘궁극의 전략무기’ 핵잠수함 보유 의지
핵추진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만이 제대로 운용중인, 전략무기의 최고봉이다.
북한이 이를 보유하겠다고 한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5대 강대국과 동등한 지위에 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후발주자였던 프랑스는 전략핵추진잠수함을 먼저 띄워 핵 억제력 강화를 꾀했다. 북한도 프랑스의 전례를 참고하되, 재래식 잠수함에서 북극성 SLBM을 운용해 나름대로 기술 검증을 실시하는 방식을 채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연구가 끝나 최종심사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건조를 위한 기술은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군 출신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대외협력국장은 “우여곡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북한은 5000~6000t급 핵추진잠수함을 3~4년 후에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수량을 기준으로 보면, 구소련이 1950년대 건조한 K-19 잠수함이 후보가 될 수 있다. SLBM 3발을 탑재한 K-19는 구소련의 1세대 전략핵추진잠수함으로 사고가 잦아 ‘히로시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북한이 시범 개조했다는 중형잠수함의 컨셉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중국의 1세대 전략핵추진잠수함인 시아급(6500t급)도 거론된다.
문제는 건조 과정이다. 핵추진잠수함에 쓰이는 부품은 4만 종류가 넘는다. 이를 자체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로 장비나 부품 반입이 쉽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다만 북극성-4형으로도 동해에서 미 본토를 타격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1만㎞급 SLBM인 북극성-5형이 추가로 등장해 핵추진잠수함에 탑재될 가능성도 있다.
다탄두(MIRV) 미사일과 고체추진 ICBM은 예견된 카드였다. 핵실험에 성공한 국가들은 다음 단계로 미사일 1발에 2개 이상이 탄두를 장착하고, 발사시간을 줄이는 고체추진 엔진 개발에 착수한다.
주목할 부분은 김 위원장의 ‘신형’ 언급이다. 원래대로라면 화성-16형으로 불려야 한다. 그런데 그때도 지금도 화성-16형이라는 말은 없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다탄두 ICBM 연구를 하고 있으나, 2017년 11월 발사된 화성-15형 수준의 완성도는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등장한 것은 시제품이라서 화성-16형이라고 북한이 표현하지 않은 것”이라며 “설계해서 조잡하게 만든 것이다. 실제 MIRV로 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체추진 ICBM은 북한이 예전부터 연구하던 것이다. 2019년 12월 8일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 위성발사장(동창리 발사장)에서 ‘중대 시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신형 고체연료 엔진 시험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풀업 기동과정에서 KN-23의 추정 속도는 마하 6~7. 극초음속 활공체 성능과 유사하다. 러시아 등의 극초음속 활공체는 ICBM에 탑재하지만 북한은 기술적 한계 등을 감안해 전술탄도미사일서부터 시작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밝힌 전력증강 계획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전술핵과 다탄두를 비롯한 핵 무력 및 감시정찰 능력 확보는 단순한 핵보유국 수준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억제력을 갖추겠다는 선언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중인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의식한 모습도 보인다. 경항모와 핵 전력을 제외하면, 감시정찰이나 포병 전력 등은 한국군의 국방중기계획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가 전작권 전환 때문에 여러 가지 무기를 도입하는데, 북한이 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변수는 북한이 김 위원장의 선언을 실현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다. 핵무기부터 미사일, 잠수함에 이르는 무기들을 확보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한국 공군 타우러스(TAURUS) 공대지미사일 1발 가격은 20억원, 육군 현무-3 순항미사일 1발 가격은 40억원이다. 해병대 스파이크 대전차미사일도 1발 가격이 3억원 정도다. 모두 고가의 무기들이다.
한국보다 경제력이 훨씬 뒤진 북한이 방사포부터 ICBM에 이르는 유도무기를 계획대로 개발, 생산하기는 어렵다. 기술개발과 양산에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데, 사회주의 국가라 인건비 등이 저렴하다 해도 비용 부담은 피할 수 없다.
북한이 경제적,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실제 성과를 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국가, 구유고 연방 등에 공작원을 보내 군사과학기술을 대량으로 빼돌렸다. 러시아의 SLBM 관련 기술도 소련 붕괴를 전후로 넘어갔다.
지금도 상당수의 민군 겸용 기술들이 북한에 유입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투자를 하면서 연구를 지속해왔다면, 단기간 내 개발 성과가 드러날 수도 있다.
‘선택과 집중’ 원리에 따라 특정 분야에 인력과 예산을 집중한다면, 최소한의 억제력 확보에 필요한 수량을 생산해 배치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의 향후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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