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뉴스] 세월에 묻힌 아동학대, 슬픔과 분노의 기록

류호 2021. 1. 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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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먹고살기 어렵다며 버리거나 학대
안아키·개 목줄 학대·백골 시신 등 엽기적 사건도
복지·종교시설·어린이집서 아동학대 비일비재
5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는 꽃이 놓여 있다. 뉴스1

정인이 사건(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아동학대 방지 운동인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가 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아동학대 예방 조치들이 강화되고 있지만, 세상을 경악하게 하는 아동학대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960·70년대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아이를 버리거나 기예단에 팔아넘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964년 8월에는 버스 암표 판매를 시킨 13세 아들에게 벌이가 적다는 이유로 학대해온 부모가 경찰에 입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2년 2월에는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아버지가 가족 모두 같이 죽자며 아들 6세 이모군을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4층에서 밀어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군은 27일 만에 어머니 품에 안기게 됩니다.

1972년 5월 2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어른의 망각, 행락미아'란 제목의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2년 5월 2일자 한국일보에는 '어른의 망각… 행락미아'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요. 같은 해 4월 23일에는 하루에만 199명의 미아가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54%가 7세 이하 어린이였죠. 미아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서울 창경원이었고요. 그런데 미아를 찾은 부모 대부분이 아이의 책임으로 돌리며 나무라기만 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들어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는데요. 1985년 7월 서울시가 처음으로 '아동권익보호신고센터'를 설치합니다. 타인은 물론 부모나 친권자라도 어린이를 학대하거나 범죄에 이용한 경우 본인과 목격자의 신고만 있으면 시가 경찰의 협조를 받아 조사한 뒤 사안이 중대하거나 반복적일 경우 경찰에 고발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설립 1년 동안 신고 건수는 28건에 불과했습니다. 신고 센터가 영등포구에서 동작구로 이사를 갔는데 바뀐 전화 번호를 제대로 알리지 않아 접수된 사건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이사 이후 사실상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센터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죠.


1991년 심주희양 사건으로 대규모 수사 들어간 경찰

1991년 10월 14일자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심주희양 사건 관련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대 들어 경찰은 아동학대에 대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입니다. 1991년 서커스단에서 온갖 학대를 받다가 탈출한 '심주희양 사건'이 발단이 됐습니다. 5세 때 서커스단에 팔려온 심양은 7년 동안 온갖 폭력과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심양은 4년 뒤인 1995년에 친모를 만났고, 당시 감동적인 모녀 상봉 장면을 많은 국민이 TV로 지켜봤죠.

하지만 심양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6년 뒤인 2001년 심양의 근황을 방송했는데요. 친모는 딸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렀고, 심양 앞으로 나온 상금과 보상금을 모두 챙겼습니다. 친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한 심양은 집을 나와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숨어 지냈고, 시청자들은 방송을 통해 심양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다시 지켜보게 됐죠.

심씨는 당시 방송에서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나에게 이럴 수 있을까. 차라리 서커스단에 있을 때가 더 편했다"고 고백해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1998년 8월 28일자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김신애양 사건 관련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몇 년 전, 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방치해 학대 논란이 된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 이른바 '안아키 운동'은 1990년대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나서 대책 마련을 지시한 '김신애양 사건' 입니다.

1999년 8월에는 소아암에 걸린 딸을 기도로 치료하겠다며 병원에 보내지 않고 방치한 김신애양 사건이 드러났는데요. 김양이 걸린 소아암은 완치율이 80% 정도로 제때 치료만 잘 받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었다는 게 의학계의 대체적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김양 부모는 병원의 치료 없이 기도로 딸을 완치시키겠다며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고집했습니다. 이 사건 역시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알려졌는데, 김양은 당시 방송 제작진에게 "치료를 받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김양의 통곡에도 기도를 하겠다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죠. 촬영 당시 9세였던 김양의 몸무게는 20㎏이었는데, 종양의 무게만 5㎏에 달했습니다. 김양은 투병 생활을 하다가 3년 뒤인 2002년 5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자녀를 죽음으로 내몬 사건들도 끊이지 않았죠. 2003년 10월에는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딸에게 독극물을 먹여 사망하게 한 '둘째 딸 독극물 살인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당시 A씨는 경남 지역의 한 실내 수영장에 두 딸과 조카 세 명을 데리고 찾았는데요.

A씨는 당시 9세였던 둘째 딸 B양을 탈의실로 부른 뒤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먹였습니다. A씨는 딸에게 음료수를 주면서 "이거 너만 먹어야 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B양은 음료수를 먹은 뒤 수영장으로 돌아갔고 수영을 하는 도중 숨졌습니다. A씨는 B양이 숨지기 하루 전 딸 명의로 보험에 가입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씨는 2007년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도가니 사건으로 유명한 장애 아동 학대 사건

2011년 9월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 포스터.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은 복지·종교시설에서도 잔인한 아동학대 사건은 벌어집니다. 2005년에는 '도가니 사건'으로 유명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면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조명됐고, 수사도 급물살을 타게 됐죠.

도가니 사건은 광주시 광산구에 위치한 청각장애인 교육시설인 인화학교에서 2000년부터 5년 동안 교직원이 장애 학생들에게 자행한 아동학대 사건입니다.

인화학교 전 행정실장 C씨는 행정실에서 장애가 있는 학생의 손발을 끈으로 묶고 성폭행을 했고, C씨는 자신의 범행을 목격한 학생을 사무실로 끌고 가 깨진 음료수 병으로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C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형량이 너무 적다는 비판을 받았죠.

광주시와 시 교육청은 6년 뒤인 2011년 인화학교를 운영했던 사회복지법인 우석에 대한 법인 운영 허가를 취소하기로 했고, 인화학교를 폐쇄 조치했습니다. 광주시는 지난해 10월 옛 인화학교 부지에 장애인 수련 시설 건립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죠.

2005년 6월 27일자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수경사 아동학대 사건.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은 해에 '수경사 아동 학대 사건'도 알려졌습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수경사라는 사찰에서 버려진 아이들 13명을 거둬 기르는 두 승려의 소식이 미담 사례로 소개됐죠.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한다며 어두운 방 안에 감금하고,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채 방치했죠. 심지어 50도에 가까운 물로 아이들을 목욕시키거나 이유식을 먹어야 할 아이에게 국에 만 밥을 먹이는 등 비상식적 육아 방식들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생일 전날 학대로 사망한 성민군

2015년 1월 14일자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관련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사건 역시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죠. 2007년 5월에는 울산시 북구 현대어린이집에 다니던 생후 23개월의 이성민군이 아동학대를 받다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군이 숨진 날은 그의 생일 전날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들에게 "성민이가 전염병이 있으니 안아주지도 말고 곁에 두지도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원장 부부의 이군 폭행은 폭행 장면을 목격한 이군 형의 진술로 자세히 전해졌는데요.

이군 형의 진술에 따르면 원장 남편이 이군의 두 팔을 잡고 양팔을 벌리게 하면 원장은 이군의 복부를 차고 머리와 양 볼을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또 인형으로 이군을 유인해 빙빙 돌렸고, 교구로 이용되는 철제 수막대로 이군을 폭행했죠.

이군은 소장 파열에 의한 복막염으로 사망했는데, 폭행으로 장이 끊어진 이군이 울며 복통을 호소했지만 원장 부부는 이군을 마트로 데려가 또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군 형의 진술 능력이 떨어지고 법의학자들의 진술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장 부부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 1월 16일 인천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송도국제도시 주민연합회'의 회원들이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8년 뒤인 2015년에도 일어났죠.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학부모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2015년 1월, 인천 연수구 송도동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습적인 폭행을 휘둘러 사회에 큰 충격을 줬죠.

당시 폭행 장면은 어린이집 내 폐쇄회로(CC)TV에 담겼습니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는다며 발로 아이들의 배를 찼고, 아이가 그 충격으로 날아가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또 버섯을 먹지 않고 토해낸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뺨을 때리는 등 아이들을 무참하게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인천시는 한 달 뒤인 같은 해 2월 구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했죠. 당시 어린이집 내 CCTV 설치 의무화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개 목줄에 묶인 채 방치된 현준이 사건

2015년 1월 22일자 한국일보 지면에 실린 '진돗개교 아동 살인 사건'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엽기적인 아동학대 범죄도 많았는데요. 2017년 7월에는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3살 아이에게 개 목줄을 채워 질식해 숨지게 한 '대구 현준이 사건'이 벌어졌죠. 친부와 계모는 현준이가 집 안을 어질러 보기 싫다는 이유로 상습적으로 폭행했고, 목에 반려견용 목줄을 채워 작은방 침대에 묶어 가뒀습니다.

아이는 사흘 동안 개 목줄에 묶인 채 방치됐는데, 침대에서 내려오던 중 목줄에 걸려 질식해 숨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7개월 무렵부터 필수 예방 접종과 영유아 건강검진을 한 차례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망 한 달 전부터는 하루 한 끼만 먹었고, 사망 당시 몸무게는 약 10㎏으로 현준이 나이의 남아 표준 체중(약 15㎏)에 한참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법원이 가해자인 친부의 상속권을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현준군의 친모는 친부와 계모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친부에게 아이의 유산인 손해배상청구권 중 절반의 몫이 인정된다며 친모의 청구를 절반만 인정했습니다.

2016년 3월에는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통해 '진돗개교 3세 아동 살인 사건'이 밝혀졌습니다. 2014년 2월 진돗개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 진돗개를 사랑하는 모임(진사모)에서 생활하던 친모가 당시 세 살이던 자녀를 살해한 뒤 암매장한 사건입니다.

2016년 2월 4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부천 백골 중학생 시신 사건 기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은 시기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통해 '부천 백골 중학생 시신 사건'이라고 불린 사건도 드러났습니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서울신학대 겸임교수인 이모 전 성결교회 목사와 계모 백모씨가 중학생인 자신의 작은딸 이모양을 지속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입니다. 이씨와 계모는 딸의 시신을 1년 가까이 자신의 집에 방치했죠.

이양의 시신이 이불에 덮인 채 백골 상태로 부패돼 백골 시신 사건이란 이름이 붙게 됐습니다. 당시 학교 측이 이양의 신변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논란이 됐는데요. 학교는 이양의 장기 결석에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가출했다"는 부모의 이야기만 듣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죠.

지난해 6월에는 충남 천안시 한 아파트에서 9세 아이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있다가 심정지 상태로 의식을 잃어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이틀 뒤에 사망했죠. 범인은 아이 부친의 동거인으로, 부친과 범인은 사실혼 관계였습니다. 당시에는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으로 불렸습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solu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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