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헤 셈프룬, 픽션에 진실 담은 '위대한 증언자'

한겨레 2021. 1. 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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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호르헤 셈프룬(1923~2011)
나치수용소·공산당활동 등 체험을
소설로 그려내 '기억의 투사' 명성
'전쟁은 끝났다' 등 영화 대본도 써
호르헤 셈프룬

소위 스타나 스타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탈리아 노동자 출신의 프랑스 가수이자 배우이면서 반전평화운동가이고 사회주의자인 이브 몽탕이 출연한 영화 가운데 특히 <전쟁은 끝났다>와 <제트>(Z) 그리고 <고백>을 좋아한다. 1969년에 제작된 <제트>는 한국에서 20년 뒤에야 상영되었는데 그때 같이 나온 시나리오를 보고(당시 <로메로>, <파리, 텍사스>, <부용진>, <졸업>, <아빠는 출장 중> 등이 개봉되면서 시나리오도 함께 발간되어 좋아했는데, 인터넷 시대라는 요즘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 작가가 호르헤 셈프룬(프랑스어 표기로는 조르주 상프룅)임을 처음 알았다. 당시 그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지만, 그 후 30여년이 더 지나 소위 정보의 물결이 흐른다는 지금, 인터넷 시대에도 우리에게 그는 여전히 낯설다. 홀로코스트 문학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소설 <오랜 여정>을 비롯해 그의 중요한 작품들은 아직 우리말로 소개되지 못했다. 머리가 좋다는 유대인을 동족인 양 좋아하고 이스라엘 국기가 거리에서 펄럭이는 나라에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가 유대인이 아니라 공산당원이어서 강제수용소에 들어간 탓일까? 그러나 그 뒤에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공산당을 이탈한 그야말로 스타 반공투사가 아닌가? 별로 유명하지 않아 쓰임새가 없는 것일까? 그가 2011년에 죽었을 때에도 “20세기의 위대한 증인” 등으로 추모한 수많은 외국 언론과 달리 국내에는 한 줄 기사도 없었다.

스탈린 독재 비판했다가 공산당 제명돼

유대인이 아니라 공산당원이자 레지스탕스여서 1943년 9월 게슈타포에 체포된 그는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어 1년여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고통은 그 전부터 시작된다. 1923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열두살 때 내전을 맞아 가족과 함께 프랑스를 거쳐 네덜란드로 도피했다가 네덜란드가 프랑코 정부를 승인하자 다시 프랑스로 간다. 그곳에서 잠깐 리세(대학 진학을 위한 중등학교)를 다닌 뒤 1941년 소르본에서 철학을 공부하지만, 이듬해부터 독일군에게 저항하는 것이 스페인 내전의 연장이라며 레지스탕스와 공산당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다가 바이마르 부근의 부헨발트 수용소에 끌려가 지옥 같은 16개월을 보낸다. 나치가 1937년에 정치적 반대자를 잡아가두어 노동을 강제하려고 세운 그곳에는 당시 5만명 이상의 수감자가 있었다. 수용소에서 풀려나 1945년부터 유네스코에서 통역관으로 일하다가 1953년부터 1964년까지는 페데리코 산체스라는 가명 등으로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에 자주 드나들며 공산당 조직 활동을 벌였으나, 스탈린 독재를 비판해 공산당에서 제명당한다. 뒤에 그는 당시 스탈린식 공산당 통치가 20세기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했다.

그렇게 마흔이 넘은 셈프룬은 자신이 가축 트럭에 실려 수용소로 끌려가며 겪은 닷새간을 소설로 쓴 첫 작품인 <오랜 여정>을 1963년에 발표한다. 수용소에 들어간 지 20년이 지나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쓴 것인데 영어판은 ‘가축 트럭’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소개된 프리모 레비 등의 작품과 달리, “나는 잊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살 수 없었을 것이다”라며 20년이 지나서야 겨우 수용소의 경험과 죽음에 대한 집착 없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나 사실 자체를 전할 수 없으므로 소설로 쓴다고 말했다. 스탈린주의의 경험을 다룬 <라몬 메르카데르의 두번째 죽음>도 마찬가지로 픽션이었다. 1977년에 낸 스페인어 소설인 <페데리코 산체스의 자서전>은 전후 11년간 스페인에서의 공산당 활동에 대한 회고를 스페인어로 쓴 작품이다. 그리고 1980년에 낸 <오, 얼마나 아름다운 일요일인가>는 다시 나치 수용소의 하루를 쓴 소설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연상시키지만 그 이상의 걸작이다.

1994년에 발표한 <글이냐 삶이냐>는 지식인이자 활동가인 자신의 두 측면을 화해시킨 작품으로, 수용소의 고통을 안고 사는 문제와 그것을 문학으로 재현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강제수용소 경험의 본질적인 진실은 전할 수 없다”고 선언한 점으로 유명하다. 그것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셈프룬을 비판한 사람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직접 증언을 통해 생존자들의 체험을 기록한 9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 <쇼아>를 감독한 클로드 란즈만이었다. 그는 자신의 접근방식이 유일한 합법적 방법이고 예술과 상상력은 그러한 노력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셈프룬은 증언이 역사가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증언도 항상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며 역사가들도 경험의 본질을 전달하는 소설가만큼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호르헤 셈프룬이 시나리오를 쓴 <전쟁은 끝났다>(1966년) 영화 포스터.

이브 몽탕 출연한 영화 시나리오 다수

그사이 셈프룬은 프랑코 치하 스페인 좌파의 지하활동을 다룬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전쟁은 끝났다>(1966), 그리고 독재정부의 탄압을 다룬 그리스 감독 코스타가브라스의 <제트>(1969)와 <고백>(1970)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어 파시즘 시대의 프랑스 상류사회를 비판한 알랭 레네 감독의 <스타비스키>(1974), <전쟁은 끝났다>의 속편인 조지프 로시 감독의 <남쪽으로 가는 길>(1978) 등의 시나리오도 썼다. 이브 몽탕의 친구이자 평전 작가이기도 해서인지 셈프룬은 이브 몽탕이 출연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많이 썼다. 1984년에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 1988년에는 프랑코 이후 민주화된 스페인에서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당시 셈프룬은 하원의원도 아니고 집권당인 사회당 소속도 아니어서 펠리페 곤살레스 총리가 셈프룬을 임명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당시 논란이 많았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소유권 문제에 대해 중앙정부와 바르셀로나 지방정부에 적절하게 배분해서 잘 해결했지만, 이후 부통령 등과 갈등하다가 결국 문화부 장관을 사임했다.

1998년에는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 파리에서 보낸 1930년대 후반의 사춘기를 회상한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에서 자신의 문학 입문과 당시 파리에 살았던 헤밍웨이, 아렌트, 베냐민, 로르카, 시오랑 등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기록했다. 평생 수용소의 고통에 허덕인 74살의 노인이 수용소에 끌려가기 직전에 짧게 누린 십대 말 비참한 난민 시절을 찬란하게 회상한 이유는 그것이 그를 계속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셈프룬의 작품은 20세기 공포의 위대한 증언이 되었고, 그는 ‘기억의 투사’ ‘혁명가 프루스트’로 불리는 세계적인 명성을 확립하게 했다. <오랜 여정>에서처럼 그의 방법은 사건을 경험한 다음 기억으로 다시 떠올려 그 사건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로버트 보이어스는 <폭압과 망각: 1945년 이후의 정치소설>(1985)에서 정치소설의 윤리를 저항과 부정이라고 요약하면서, 저항의 대표적 사례로 셈프룬의 홀로코스트 소설을 들었다. 보이어스는 셈프룬의 저항을 ‘역사의 자연법칙’이라는 것에 반대하고자 하는 충동 또는 지배적인 시대정신에 대한 불복종이라고 보았다. 허구적 사실에 복종하는 것에 대해 전심전력으로 저항하기 위한 것이 그의 문학이라는 점은 셈프룬의 <오랜 여정>이 단순히 수용소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계급이 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하는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문학인 점에도 나타난다. 자신의 조국은 어떤 나라가 아니라 오직 언어뿐이고 이웃의 죽음을 함께하는 이타성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임을 보여주는 유일한 징표라고 한 셈프룬이야말로 나의 영원한 사표다.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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