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칼라 블레이 들어봤나"..90년대 음악애호가들의 단골멘트

오수현 2021. 1. 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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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作 앨범 'sextet' 수록곡 Lawns
'사자 머리' 女피아니스트 칼라 블레이가 건내는 위로
독학으로 익힌 재즈..기성 뮤지션과 차별화된 따뜻한 감성

※꿀잠뮤직은 잠들기전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듣기에 좋은 음악을 추천해 드리는 코너입니다. 매주 한 곡씩 꿀잠 부르는 음악을 골라드리겠습니다.

[꿀잠뮤직] 재즈피아니스트 칼라 블레이(Carla Bley)의 음악은 1990년대 음악 좀 들을 줄 아는지 가늠하는 잣대였다. 미국 명문 재즈스쿨 버클리음대 유학 1세대인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60)이 1994년 MBC 라디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미국의 선진 음악(?)을 소개하며 블레이의 음반을 틀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블레이의 곡은 1987년 앨범 'Sextet(6중주)'에 담긴 명곡 'Lawns'였다. 한국말로 변역하면 '잔디밭' 정도이려나.

칼라 블레이의 `sextet` 앨범 커버
이후 이 곡은 음악 좀 듣는다는 뮤지션들이 라디오 음악 방송에 나와서 '이 곡 잘 모르셨죠' 하는 느낌으로 소개하는 대표곡이 됐다. 1996년 이문세에게서 별밤지기 바통을 이어받은 가수 이적은 아예 이 곡을 별밤 시그널음악으로 사용했고, 연세대 재학생 2명으로 구성된 그룹 전람회도 엘리트밴드(그땐 이런 표현을 썼다!)답게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곡을 소개했다(여담이지만 5년여 전 업무관계로 만난 전람회 출신 경영컨설턴트 서동욱 씨가 음악 얘기를 나누다가 내게 "칼라 블레이의 'Lawns' 혹시 들어봤어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당연하죠"라고 반갑게 답했다).

블레이의 음악은 다소 난해한 정통 재즈와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리처드 클레이더만 계열의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 음악에 열광하던 한국인들의 감성에 착 감기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지리스닝 음악의 특유의 적나라한 감수성하곤 거리가 있었다. 너무 대중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대중적 감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느낌이랄까.

재즈의 난해한 즉흥 연주에 부담을 느껴 선뜻 재즈 음반에 손이 가지 않던 당시 우리나라의 소위 '음악 좀 듣는' 분들은 블레이의 'Sextet' 음반에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블레이가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아니다. 피아노보다는 주로 오르간을 연주한다. 연주자라기보다는 작곡가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그의 즉흥 연주는 현란하기보다는 푸근하다. 멜로디 라인은 섬세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1936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블레이는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 피아노 선생님이자 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던 아버지에게 8세까지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였다. 이후 블레이는 철저하게 독학으로 음악을 익혔다. 17세 때 뉴욕으로 건너와 '버드랜드'라는 재즈 클럽에서 일하며 다양한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를 접했다. 이때 접한 음악이 블레이 음악의 원천이 됐다.

칼라 블레이와 이혼 직후인 1965년 폴 블레이의 모습
버드랜드에서 젊은 재즈피아니스트 폴 블레이와의 만남은 칼라 블레이가 재즈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계기가 됐다. 폴 블레이는 칼라 블레이의 곡에 관심을 보였고, 그녀의 곡들을 자신의 음반에 실었다. 둘은 1957년 결혼했다. 1964년 칼라 블레이는 폴 블레이와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이후 결혼을 두 번 더 했지만 성(姓)은 계속해서 첫 번째 남편의 성인 '블레이'를 쓰고 있다. 재즈계 거장이 된 폴 블레이는 이혼 이후에도 칼라 블레이의 곡을 틈틈이 녹음하면서 음악 동료로서 친밀한 관계는 계속 이어갔다.
연주 중인 칼라 블레이
블레이의 외모는 뭐랄까. 음…. 아무튼 음악을 들으며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공테이프에 녹음된 블레이의 'Lawns'에 푹 빠져 지내다가 1990년대 음악 애호가들의 성지 강남역 타워레코드에서 발견한 그의 음반 커버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자 갈기 같은 머리숲이 눈을 덮고 있었고, 전위예술을 하는 무용가처럼 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이 강렬했다.

블레이는 84세 나이에도 여전히 연주를 계속하고 있다. 2018년엔 현 남편인 기타리스트 스티브 스왈로와 함께 한국을 찾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위로가 필요한 늦은 밤, 침대에 편안히 누워 블레이의 'Lawns'에 귀를 기울여보자. 유튜브에서 그녀의 이름과 곡 제목을 나오면 여러 연주가 뜨는데, 처음에는 sextet 앨범에 실린 원곡을 듣길 권한다. 그다음엔 그녀와 스티브 스왈로의 라이브 공연 연주를 듣는 것으로.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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