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사면론 묘수일까 자충수일까

정용인 기자 2021. 1. 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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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당대표 임기 두달 앞두고 전격 제기…하필이면 왜, 지금일까

이적수. 바둑용어다. 바둑에서 이적수는 둘이다. 이적수(利敵手)와 이적수(耳赤手). 한글발음은 같지만, 뜻은 정반대다.

이적수(利敵手)는 상대방에게 유리한 결과를 두는 수다. 자충수가 대표적이다. 이적수(耳赤手)는 상대방의 귀가 빨갛게 변하는 수다. 형세가 불리할 때 역전의 발판이 되는 묘수다.

연말연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꺼내들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어떤 이적수였을까.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월 7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인사회에 화상으로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국회 사진기자단


현재까지 굴러가는 형세만 놓고 보면 이적수(利敵手)로 보인다.

사면 발언을 내놓자 야권의 두 유력주자 유승민과 원희룡은 환영논평을 냈다. 그러나 야권의 본류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1월 3일 민주당 비상 최고위원회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의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자 일제히 비난 공세에 돌입했다.

이것만 보면 실패다. 자충수다.

실제 자중지란이 벌어졌다. 여권 중진들의 비판 발언이 이어졌다.

당 초선의원들도 사면 발언의 진의를 두고 흔들렸다. 집단행동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당대표의 리더십이 휘청거렸다.

SNS에는 지금도 사면론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며 이낙연 당대표를 공격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민주당사에서는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농성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쯤이면 궁금하다. 이낙연 대표의 진의는 무엇일까.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사면론을 꺼내들었나.

이 대표는 물러서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말 연합뉴스 등 통신사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사면론을 꺼내든 데 이어 1월 1일 현충원 방문 후 다시 “적절한 시기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의 ‘유도질문’에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소신발언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발언의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인다. 당장 서울·부산시장 재보궐뿐 아니라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제부터 대권주자로서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 ‘사면주장’ 이번이 처음 아니다

타이밍이나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데는 기자가 접촉한 대부분의 전문가가 일치한 반응이다.

“거둬들이기에는 너무 멀리 나갔다. 사면을 꺼냈으니 본인 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이제는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오랜 정치권 취재 경험을 가진 허만섭 국민대 교양대 교수의 말이다. 의문은 이것이다.

‘당대표 이낙연’의 메시지 실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세난 해결을 위한 호텔객실 주거용 전환’(11월 18일), ‘윤석열 국정조사 추진’(11월 25일)과 같은 과거 발언의 기억이 소환될 수밖에 없다. 리더십은 민심을 읽고 큰 방향에서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대표가 상황을 제대로 읽는 게 맞을까. 허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과거 실수하고는 결이 다르다. 호텔 발언 등은 단발성 문제지만 사면문제는 조금 더 길게 봐야 한다. 당장은 실패 같기도 하고 손해를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드디어 본래의 이낙연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그 시작이었다라고 평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면은 이 대표의 소신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내놓은 발언이 아니다.

총리시절, 기자는 타사 기자들과 함께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정치입문 계기나 총리 업무 수행, 남북관계에 대한 전망 등을 이야기한 끝에 그는 비보도 전제로 자신의 정세전망을 꺼내놓았다.

“두 전직 대통령과 관련, 형이 확정된다면 대통령의 선택은 사면이 되지 않을까. 국민통합 차원에서도 사면은 필요한 일이다. 적절한 시점이 되면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다.”

말하자면 최근 그의 발언은 오랜 소신이었다.

“청와대와 상의가 없었다는 것은 도저히 동의가 안 된다. 최소한 의중은 전했을 것이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그 역시 ‘대권주자 이낙연’이 “사면을 꺼내든 것이 타이밍이나 방법이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손해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손해 볼 일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첫 발언 이전 지난해 12월 28일 대통령과 이 대표의 단독면담이 있었다는 보도를 주목했다.

“두 사람만 아는 일일 테니까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 자리에서 아마도 이낙연이 사면문제를 언급하긴 했을 것이다. 이 대표가 사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대통령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지만, 이 대표의 캐릭터로 볼 때 만약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예를 들어 (대통령의 사면건의에) ‘그 문제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식의 약한 언급이라도 있었다면 사면론을 꺼내들 수 있었을까.”

그는 “사면론은 결정적일 때마다 누군가 끄집어내 공격하는 데 쓰이겠지만 실제 대선레이스가 본격화되는 올해 연말쯤이 되면 잦아들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여권에서 후보는 이낙연과 이재명의 양강 구도인데, 후보 경선에서 만약 이낙연이 이재명에게 진다면 이것 때문에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낙연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정치분석가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사면론 카드를 이낙연 대표가 단독으로 결정해 치고 나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라며 “타이밍이 옳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의 삶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는데 전직 대통령 사면문제를 새해 메시지로 꺼내든 것은 좋지 않았다.”

유 대표는 지금 시점에서 사면논의가 문제 있다고 보는 이유를 두가지 꼽았다.

“첫째로 국민동의가 굉장히 중요하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당선자 신분이었던 DJ가 YS에게 건의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어떻게 보면 두사람 다 군사정권의 피해자다. 피해자는 사면카드를 꺼내들 자격이 있다고 본다. 사면이 설혹 마음에 안 들어도 당신들이 피해자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수혜자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국민적 동의를 받지 않을 경우 큰 후폭풍에 직면할 수 있다. 탄핵직전 사임한 닉슨 대통령의 뒤를 이은 포드가 닉슨을 전격 사면했지만 포드는 이후 선거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대통령의 ‘절대 반지’인 사면권을 행사할 때 국민적 동의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로 통합. 통합을 거론하기 전에 지금까지 국민을 분열시킨 것은 누구냐라는 질문이 선행돼야 한다고 유 대표는 지적한다.

“조국 사태 이후 강 대 강 국면을 이끌어온 것은 이 정부다. 그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이 선행돼야 했다. 진정한 통합의 의제라면 팬데믹 시대에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양극화와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새로 만들어낼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런 문제들을 방치하고 통합을 이야기한다면 과연 진정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까.”

“총선 180석이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국민이 180석을 몰아준 것을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하는데 커다란 오해다.”

그는 지난 총선 직후부터 ‘180석의 의미에 대한 오해’를 경고해왔다고 밝혔다.

“그 의미를 두고 크게 세가지 해석이 나왔던 것 같다. 하나는 한국사회 유권자의 구조적 변화라면 반대편 극단에서는 코로나 국면에서 억지로 이긴 사기라는 시각이었다. 나는 중간 입장이다. 여러 나라에서 선거결과에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을 보면 정반대로 튀기도 한다. 선거결과는 정부 여당이 코로나 정국에서 정략에 빠지지 않고 뭔가 위기대응을 하고 있다는 평가에 따른 것이다.”

그걸 커다란 대세의 반영으로 해석하면 현재 상황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신 교수의 지적이다.

“대세가 아닌 것이다. 여러가지 여론조사나 크고 작은 이후 선거결과로 보면 유동성, 휘발성이 강한 구도로 봐야 한다. 그런 맥락에 여당이 압승했는데, 그 이후로 검찰개혁 등을 보면 잘했냐 못했냐를 떠나 정부 여당의 어젠더가 국민에게 어떤 것으로 비췄냐를 봐야 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정책 사안에 따라 가시도와 체감도를 나눠봐야 하는데 총선 후 여권은 ‘가시도는 높지만 체감도는 낮은’ 정치개혁과 같은 이슈에 올인하는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이나 권력구조 개편은 정치엘리트의 핵심지지층에게는 역사적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즉 체감도의 측면에서 보면 낮은 이슈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대응이나 복지정책, 노동현장 지원 등에서도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이것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여권이 좁은 의미의 정치논리에 매몰된 집단으로 국민에게 보이는 반면, 김종인 체제의 대응은 여권으로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라든지 진보 쪽에서 제기되는 핵심 경제 민생복지 의제를 보수 쪽에서는 자기식으로 변형시켜 가지고 가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에서 10대 정책을 내놓았을 때 1순위가 기본소득이었다. 정책 내용을 떠나 전체적으로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야권은 나라살림과 민생을 돌본다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한편, 여권은 반대로 실제로는 많은 일을 하지만 정치문제에 골몰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사면이 어떻게 비치게 될까.”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리던 1월 7일 오후 국회 회의실 앞에서 정의당 의원들이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이낙연 대표에게 호소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180석 의미’에 대한 착각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사면건의’는 거의 주변과 논의 없이 이 대표가 독자적으로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 대표가 십자가를 진 것으로 본다.” 남평오 연대와 공생 사무총장의 말이다. 시민단체 연대와 공생은 사실상의 이낙연 대선캠프로 알려져 있는 단체다.

“우리 시각은 이렇다. 정치적 계산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안철수가 출마 선언을 하면서 서울시장 보궐을 앞두고 중도층의 이탈을 막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사법의 정치화가 정치의 사법화를 불러왔고, 당내에서도 검찰총장 탄핵이 제기되는 등 당내 위기감이 절박해졌다. 검찰총장 탄핵으로 간다면 자칫 당이 국민으로부터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까 당의 노선전환을 위한 카드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야당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당내에서 불만 목소리가 나오는 등 이낙연이 고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결에서 전진을 위한 통합으로 나가기 위한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허만섭 교수는 “보통은 당 지지자들의 지지를 얻어 후보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정당 지지자들의 선택은 전략적이다”라고 말한다. 본선에서 이길 사람을 후보로 뽑는다는 것이다. 강성 친문만의 지지만 얻어가지고는 당 후보가 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으리라는 것이다.

사면논의는 다시 소환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9일 형이 확정되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월 14일 형이 확정된다. 1월 14일 이후 문재인 대통령도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정작 당대표 이낙연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선거에 출마할 인사의 임기는 선거 1년 전까지다. 이 대표의 당대표 임기는 3월 8일까지다. 남은 두달, 이낙연당대표는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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