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英'검은수요일'이 주는 시사점

김유성 2021. 1. 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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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정치적 이유로 영국 정부 파운드화 고평가 유도
소로스, 英 파운드화 하락 예상 '공매도' 공격
고평가된 자산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패닉이 올 정도의 폭락이 있는 날에는 ‘검은’이라는 형용사가 붙곤 합니다. 1987년 10월 원인 불상의 뉴욕증시 폭락사태 때를 뜻하는 ‘검은 월요일(블랙먼데이)’처럼 말이지요.

‘검은 수요일’도 있습니다. 1992년 9월 16일 영국 정부가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을 비롯한 국제적인 공매도 세력이 굴복해 백기를 든 날입니다. 이들은 영국의 파운드화가 ‘억지로’ 고평가 돼 있다는 점을 간파했고, 파운드화 공매도 나섰습니다.

파운드화 가치를 방어하던 영국은 이내 항복을 했고 소로스는 약 1조원 가량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집니다.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
독일 통일로 커진 ‘인플레이션’ 우려

사태의 촉발점은 1990년 독일 통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독은 낙후된 동독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이중 하나가 동독 마르크화를 서독 마르크화를 일대일로 바꿔준 것입니다. 이 조치가 동독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은 됐지만 독일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합니다. 동독 마르크화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꿔주면서 통화량이 늘어난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독일인들은 한가지 트라우마가 있는데 바로 경제 대공황 시절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경험입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때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독일인들은 몸서리 칠 정도의 악몽으로 갖고 있죠.

이 인플레이션이 왜 독일인에 트라우마가 됐는가. 바로 이 때를 틈타서 히틀러가 집권을 했거든요. 결국 희대의 살인마가 독일인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이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어요.

독일 혼란기에 정권을 잡았던 히틀러
독일은 이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초강수를 씁니다. 바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죠. 금리를 올리면서 물가 안정에 올인합니다. 인플레이션을 누르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봅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가장 힘있는 통화인 마르크화의 금리가 쭉쭉 올라가다보니 다른 유럽 나라들이 난리를 칩니다.

당시 독일은 유럽 국가들끼리 환율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한 조직인 ERM(유럽환율메커니즘)에 가입해 있었어요. 일종의 준고정환율제 조직입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공동체) 출범에 앞서 각 국가간 환차이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공동체였죠.

문제는 이 ERM 가입국 사이에서 터집니다. 달러, 엔화 다음으로 힘있는 통화인 마르크화의 금리가 올라가니까, 유럽내 주변국 통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 여파를 영국도 받게 됩니다.

사실 영국은 1990년께 ERM에 가입돼 있지 않았습니다. 향후 통합 유럽의 정치·경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존 메이저 당시 영국 총리가 취임하면서 ERM에 가입는데, 이게 악수(惡手) 가 됩니다.

취약했던 영국경제, 파운드화 가치 지키기엔 역부족

1990년대 초반의 영국은 1980년대 대처 총리 시기를 지나면서 조금씩 영국병에서 쾌유하는 듯 했습니다.

독일은 경제는 금리 인상에 버틸만큼 탄탄했지만, 영국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들은 독일 주도의 유럽경제질서에 견제하려고 ERM에 올라탔는데, 독일발 연쇄 환율 충격파를 파운드화도 받았던 거에요.

조지 소로스는 이를 주목했습니다. 영국의 경제 상황과 비교했을 때 영국의 파운드화는 고평가 돼 있다. 당연히 평가 절하를 해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그 대영제국 시절 유럽을 주름잡던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를 않았던 것이죠.

소로스 회장은 영국 파운드화가 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왜냐, 얘네들은 독일처럼 금리를 쉽게 못 올린다고 봤으니까요. 그리고 공격을 합니다. 일반인이라면 그냥 파는 정도이겠지만 소로스 회장과 같은 헤지펀드 사람들은 공매도를 겁니다.

그리고 TV 매체에 나옵니다. 파운드화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하루 아침에 1000억달러어치의 파운드화가 투매 물량으로 쏟아집니다.

영국 정부도 처음에는 파운드화 방어를 하려고 물량 일부를 받았다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내 영국 정부는 ERM 탈퇴하겠다고 선언하고 파운드화 평가 절하를 합니다. 소로스의 공격이 통했던 것입니다.

고평가된 가치는 언젠가 제자리로 간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불균형 상태인 무언가’ 특히 자산은 항시 균형을 향해 간다는 점입니다. 소로스는 파운드화 가치가 영국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과평가 돼 있다고 봤습니다. 언젠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봤습니다.

그는 이를 확신했고 파운드화 공매도를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맞아 떨어졌고 소로스는 이틀 사이 막대한 수익을 얻습니다.

이처럼 투자에 있어 중요한 것은 불균형 상태를 감지하는 데 있습니다. 이를 선행적으로 대응하고 수익으로까지 연결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볼까요. 코스피는 3000을 넘나들고, 미국 증시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합니다. 물론 증시는 앞서 간다고 하지만, 지금의 우리 경제 펀더멘털은 그 주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 될까요? 우리나라 대표 모바일 메신저 업체 시가총액 30조원을 넘었는데, 그 기업의 그만큼을 충족할 만큼 이익을 내고 있나요?

어떻게 보면 주식 등 최근의 자산 시장의 추세는 불안해보이기도 합니다. 전세계 어디에선가 제2, 제3의 소로스들이 새로운 베팅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김유성 (kys4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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