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바람..K방역, 미담 대신 시스템이 되어주소

한겨레 2021. 1. 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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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토요판] 이런 홀로
코로나19 두번째 해에 비는 소원
한여름 냉방시설 없던 선별진료소
추워지니 휴대용 핫팩도 부족해
언제까지 착한 사람들 갈아넣어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해야 하나
몸으로 제방 막은 '네덜란드 소년'
도와줄 이 없음을 직감한 게 아닐까
선의와 미담으로 구멍만 막는 대신
모두가 의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수고한 날 뒤 쉬는 날 오는 새해 되길
지난해 12월29일 오후 서울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검사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위는 사람과 물건을 가리지 않고 얼린다. 그러나 휴대용 핫팩은 손소독제와 볼펜을 녹이고, 정작 사람은 곱은 손을 주무르며 일하고 있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두고 보도된 코로나19 선별검사소의 상황이었다. 2020년 12월19일 <제이티비시>(JTBC) ‘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의료진 눈물마저 그대로 얼었다… 다시 찾은 선별검사소”.

야외에서 운영되는 선별검사소의 열악한 환경은 반년 전 여름의 폭염 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더울 땐 냉방시설이 없었고 추울 땐 난방시설이 없다. 지금은 휴대용 핫팩조차 사람 수대로 돌아가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임시선별검사소에 물품을 기부하기로 한 건, 이건 아니라는 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저기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손에 핫팩이라도 하나 쥘 수 있었으면 싶었다. 무엇이 어떻게 얼마나 아닌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그냥 그 마음이 앞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보건소 홈페이지 등을 검색해 선별진료소를 비롯한 방역시설들에 간식이나 방한용품을 기부하는 방법을 찾았다. 임시선별검사소처럼 야외에서 검사가 이뤄지는 시설들에서는 핫팩이나 한입에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유용하다고 했다. 옷에 붙일 수 있는 파스 모양 핫팩과 초코바, 어육소시지 같은 한입거리 간식을 골랐다. 핫팩은 무조건 오래가는 것, 간식은 맛있는 것, 둘 다 대용량으로.

다른 이들의 사례를 보니, 전담병원이나 보건소에 기부 물품을 보낼 때는 택배나 배송을 곧장 그리로 보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임시선별검사소에는 가급적 직접 물품을 가져가는 편을 권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름 그대로 야외에서 임시로 운영하는 시설이라서 위치나 운영시간이 바뀌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배송기사들 입장에서도 선별검사소에 들르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하루에도 수십 수백 곳을 방문하며 일하는 분들이니까.

커다란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놓은 물건들을 양손에 들고, 낑낑거리며 서강대역 광장에 있는 임시선별검사소에 간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검사소는 그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멀리서도 찾기 쉬웠다. 조금 더 다가가자, 그곳에는 크리스마스이브와 3차 대유행이 한 풍경 안에 있었다. 긴 줄 중간중간에 고글을 쓰고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서서 대기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직원들의 몸에 푸른색 방호복이 착 감겼다 풀어졌다.

지난해 12월29일 오전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의료진이 손을 녹이고 있다. 연합뉴스

물품을 전해드리는 순간은 짧았다. 일하시는 데 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두서없는 인사에 직원분이 ‘평소에 여길 자주 지나가시냐’고 물으셨다.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여기로 왔다는 대답에 갑자기 직원분의 고글이 뿌옇게 흐려졌다. 울보인 나는 얼른 꾸벅 인사를 하고 광장을 나왔다.

그날 오후 검사소 앞의 긴 줄 속에는 멋지게 차려입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나나 그들이나, 검사소를 벗어나면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바람막이도 못 되는 얇은 방호복을 입은 검사소 사람들에게 12월24일은 그저 3차 대유행 중의 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민들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염치라는 것은 어찌나 선명한 말이던지, 그게 깨어진 자리에 즐비한 파편도 오랫동안 날카롭게 마음을 찔렀다.

어릴 적 나는 미담을 싫어하는 어린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건 밤새도록 제 몸으로 제방 구멍을 막아 마을을 살렸다는 네덜란드 소년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그 소년처럼 되겠다는 포부보다는, 답답함이 앞섰다. 어휴, 곧바로 어른들을 불렀어야지. 커가며 그게 실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나는 종종 그 소년이 왜 우선 자기 손으로 누수를 막으려 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철없는 판단착오가 아니라, 도와줄 이가 없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은 아닐까. 적어도 자신보다는 그 문제를 잘 해결해주리라 믿는 어른이 있었다면, 당연히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 알렸을지 모른다.

사회가 있기에 그런 미담도 있는 것이겠지만, 반복되는 문제 앞에서 미담만을 자꾸 발굴하고 기리는 사회는 미덥지 않다. ‘큰일 좀 나도 괜찮아, 다음에도 착한 사람들이 나서줄 테니까’ 하는 것 같아서다. 사실 그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어려움 대개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책임을 다했으면 생기지 않았을 것들이다. 그리고 착한 사람이 희생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이야기는 얼렁뚱땅 감동을 얼버무리고 끝나버린다. 인과는 훌쩍 건너뛴 채로, 모두가 의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는다.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 이후 시민들에게 전해진 미담들의 주역은 시민들이었다. 희생과 봉사, 선의와 선심, 선행. 정부도 시민도 그 수많은 미담과 수많은 상찬을 그저 소비만 해온 것은 아닌지 돌이켜본다. 여전히 제방의 구멍은 메워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사람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착한 사람들 없이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아닐까. 고통이 길어질 때, 언제까지나 선의에 기대는 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착한 사람이 많다고 착한 사회가 되지는 않는다.

선별진료소 앞의 풍경을 곱씹게 됐던 이유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 어디에 항의를 하고 호소를 한들, 비상사태에 삶이 갈려나가는 사람들을 곧장 도울 길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아닐 줄은 몰랐다. 주머니를 헐어 방역에 소용될 물품들을 보내는 사람들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가 어떻게 잘못인지 따지기 전에 우선 손이라도 잠시 녹여주고 싶다고 앞섰던 그 마음,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안타까움일 것이라고.

회사에서는 지난 12월 중순부터 새해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휴업과 재택근무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볼 수 있을 때 미리미리 인사를 해두자는 것이다. 업무 메일 말미마다에도 서로의 평안을 빌어줄 때, 코로나 첫해 평안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지난달 나는 한 사람을 만나고 왔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감사하고 있어요. 그리고 걱정하고 있어요.’ 결국은 그 말을 직접 하고 싶어서 선별검사소까지 찾아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살기 위해 흩어진 때에도 흩어지지 못하고 언 손으로 일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

코로나 이듬해에 바라는 것은 부디, 수고한 날들 뒤에는 쉬는 날들도 오는 것. 그리하여 올해는 우리 모두 평범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 반드시 올해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 사회가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기를.

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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