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건희 등을 위한 대통령 '특혜' 사면
대통령의 특별사면(특사)이 도마 위에 또 올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1일 “두 전직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혀 큰 파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은 그동안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이 전두환(왼쪽 사진)·노태우 등 내란·군사반란 책임자들을 사면한 일이었다. 당시 김대중 등 3명의 주요 대통령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에 이들에 대한 사면을 공약했고, 김대중 후보 당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이 공약을 이행했다. 그러나 특별사면 뒤에도 제1책임자인 전두환씨는 단 한 번도 내란과 군사반란, 광주 시민 학살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7년 낸 <전두환 회고록>에서 계엄군의 헬기 기관총 사격을 부정했다가 다시 기소돼 2020년 11월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기득권층에 대한 특혜적인 사면은 늘 논란거리였다. 이건희(삼성·오른쪽 사진), 정몽구(현대차), 최태원(에스케이), 김승연(한화), 조양호(한진), 박용성(두산) 등 재벌 총수들이 특사 혜택을 봤다. 또 김영삼 대통령 아들 김현철, 김대중 대통령의 세 아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이광재,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최시중·천신일 등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도 특별사면을 받았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자 2493명 가운데 일반인은 37명(1.5%)뿐이었다. 98.5%(2456명)는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경영인, 선거 후보자 등이었다.
특별사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대통령이 대상자를 마음대로 선정한다는 점이다. 물론 특별사면도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 법무부 장관의 상신,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치게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형식적 절차일 뿐이라 3권 분립이나 법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에 위반된다는 비판이 많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외적으로만 사용해야 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이 남용돼왔다. 대상이나 조건 등을 제한해야 하고, 사면심사위에 좀더 실질적 권한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특별사면이 너무 잦고 많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승만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모두 83차례 걸쳐 22만6483명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반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일반사면은 7차례에 그쳤다.
미국의 경우, 1989년 이후 대통령의 사면 건수는 최소 64건(버락 오바마)~최다 396건(빌 클린턴)이었고, 신청된 사면에 대한 대통령의 허용률은 3.4%(오바마)~19.8%(클린턴)에 불과했다. 근대 특별사면 제도의 뿌리인 영국에선, 왕이나 총리에 의한 자의적인 사면은 사실상 폐지됐다. 영국에서 모든 사면은 법무장관이나 형사사건재심위원회 등의 청원에 따라 개별적, 예외적으로만 이뤄진다.
국내에서도 사면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왔다. 2007년 11월 사면심사위원회 설치를 규정한 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더 이상의 개선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특별사면에도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대량살상 범죄나 인권유린 범죄, 반헌법 범죄 등 기본 가치에 반한 범죄는 사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범죄, 부정부패 범죄, 성범죄 등도 마찬가지다. 유죄 선고 뒤 일정 수준의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은 특별사면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예를 들어 가석방처럼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마쳐야 사면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일반사면처럼 국회 동의나 심의를 받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법학)는 “대규모로 사면하는 경우는 반드시 일반사면처럼 국회 동의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대통령의 특별사면 제도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의 기소나 법원의 판결에도 잘못이 있으므로 이를 바로잡기 위한 특별 사면 제도는 필요하다. 또 지나치게 형사 처벌이 많은 한국 사회를 좀더 탈범죄화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사면권을 제한하는 사면법 개정에 대해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은 “민주당의 기본 원칙은 특별사면권을 남용하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면을 자제하는 쪽을 선택했다. 법을 개정하는 문제도 논의해왔으나,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참고 문헌
신규하, ‘대통령의 사면권 통제에 관한 연구’, 2016
김재윤, ‘정치적 특별사면과 사법정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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