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자연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뼈 위의 도시' [박윤정의 쁘리벳! 러시아]

최현태 2021. 1. 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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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상트페테르부르크
농노들의 희생 속 삼각주와 늪 위에 도시 건설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피의 구세주 성당
슬픈 역사 간직했지만 웅장한 아름다움
에르미타주 미술관, 세계 3대 박물관 꼽혀
눈을 뜬다. 개운하게 기지개를 켠다. 휴대전화를 더듬거리며 찾아보니 아직 이른 새벽 시간이다. 여행지에서 첫날밤이었는데 뒤척이지 않고 푹 잠을 청했다. 해가 오르지 않았지만 시차로 다시 잠자리에 들기에는 눈꺼풀이 가볍다. 어제 본 호텔 외관은 고풍스러운 옛 건물이었는데 객실은 다행스럽게도 현대적 시설이라 전혀 불편함이 없었나 보다. 잘 작동되고 있는 히터 덕분에 가운만 걸치고 커피를 내린다. 커튼을 걷어 보니 아직 어둠이 거리에 스며들어 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가로등 불빛이 옅어지겠지. 아침 수영을 할까. 산책을 할까. 고민하다 새벽녘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거리로 나선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호텔은 넵스키대로에서 성 이삭 성당으로 가는 중간 길에 위치한다. 조용한 대로를 따라 깨어나지 않은 도시를 걷는다. 고풍스러운 가로등을 따라 큰길이 쭉 뻗어 있다. 조금
걸으니 여느 고층빌딩과는 다른 웅장한 금빛 둥근 지붕이 저 멀리서 보인다. 제정시대 교회의 막강한 권력을 상징하듯 성 이삭 성당이 서있다. 굳게 닫힌 성당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나중에 다시 들르기로 하고 넓고 한적한 길을 따라 되돌아온다. 가로등 빛 대신 출근하는 차량 헤드라이트가 거리를 메운다.

여유로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여행일정을 시작한다. 학창시절 레닌그라드라 부르던 도시는 소련이 해체되고 19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라 다시 불리게 되었단다. 삼각주와 늪지대 위에 도시를 세우며 희생된 수십만 명의 ‘뼈 위에 세워진 도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포위당한 채 40만명이 아사당하며 지켜내 ‘영웅 도시’라 불린 상트페테르부르크. 오늘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름에서 오는 묵직한 느낌을 창가에 비친 아름다운 네바 강물에 조금씩 흘려보내며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로 향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 풍경들.
네바강 주위 상트페테르부르크 풍경. 레닌그라드라 부르던 도시는 소련이 해체되고 19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라 다시 불리게 된다.
표트르 1세는 수비 목적으로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를 짓기 시작하며 도시건설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도시계획은 춥고 일조량도 적은 이곳에서 어떻게 세워졌을까. 가혹한 자연과 고된 노동으로 사망한 수많은 사람들이 묻힌 습지의 끔찍한 역사와는 달리 요새는 네바 강물을 배경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멀리서도 인상적인 높은 종탑은 과거 수비대의 주둔지로 귀족과 정치범의 수용소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러시아 표트르 1세부터 알렉산드르 3세까지 황제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
요새를 벗어나 카잔 대성당으로 이동한다. 넵스키대로에 있는 러시아정교회 대성당이다. 카잔의 성모에게 봉헌된 우아한 건축물로 공산주의 시대에는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성당을 지나 20여 분을 걸으니 수로를 따라 시선을 이끄는 피의 구세주 성당이 보인다. 그리스도 부활을 의미하는 동방정교회 기념관으로 공식 명칭은 그리스도 부활 성당이다. 수로 위에서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관광객들이 수로 아래 배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현란한 모자이크 프레스코로 장식된 아름다운 성당은 알렉산더 2세 암살 기도가 있었던 곳으로 이곳에서 암살당한 그의 피를 가리켜 ‘피의 사원’이라고도 부른다. 최대 수용인원이 1600명이나 되는 러시아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며 박물관이다. 러시아 관광 책자에 실리는 인상적인 러시아 스타일의 초안이 된 이 사원은 모스크바 성 바실 성당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와 대성당. 표트르 1세가 수비 목적으로 짓기 시작하여 도시건설 기반을 마련하였다. 멀리서도 인상적인 높은 종탑은 과거 수비대의 주둔지로 귀족과 정치범의 수용소로 이용되기도 했고 현재는 러시아 표트르 1세부터 알렉산드르 3세까지 황제의 시신이 매장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의 아름다움은 스쳐 지나치는 건물 색채에서도 피어난다. 역사 지구와 관련한 이 모든 기념물들은 1990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내딛는 걸음 따라 역사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넘겨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앙 광장을 지나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 향한다. 나폴레옹 군대에 승리한 것을 표시하는 알렉산더 기둥이 보인다. 드디어 에르미타주이다. 영국 대영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에 손꼽히는 상트페테크부르그 에르미타주박물관! 드디어 설렘을 안고 들어선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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