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의 창작력에 '항복'

배순탁 입력 2021. 1. 9. 09:36 수정 2021. 3. 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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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설명에 따르면 "곡 쓰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라고 한다.

혹여 쉽게 감 잡을 수 없다면 테일러 스위프트가 메인스트림 팝 스타로 세상을 호령한 시절의 화려한 히트곡, 예를 들어 '아이 뉴 유 워 트러블(I Knew You Were Trouble)' '블랭크 스페이스(Blank Space)' '셰이크 잇 오프(Shake It Off)' 등과 직접 비교해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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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로어〉에 바쳤던 수사는 이번에도 유효하다. 잔잔하지만 찬란하게 빛나며 흐르는 강물 같은 음악이 여기에 있다.
ⓒAP Photo테일러 스위프트가 2019년 7월 ‘아마존 뮤직 프라임데이’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별 생각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첫 곡 ‘윌로(Willow)’의 전주가 나오자마자 이렇게 되뇐 기억이 생생하다. “항복이다. 항복.” 내가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기실 뻔하다. 불과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테일러 스위프트의 8집 〈포클로어(Folklore)〉가 발매되자마자 쏟아졌던 격찬 세례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9집 〈에버모어(Evermore)〉는 아직 그 불씨가 채 꺼지지도 않은 시점에 공개한 신보가 되는 셈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설명에 따르면 “곡 쓰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창작력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바탕을 다음처럼 비유했다. “〈포클로어〉가 일종의 숲이었다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다음 두 가지였어요. 숲을 등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그 숲의 더 깊은 곳으로 여행을 하거나.”

〈포클로어〉 이전까지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앨범이란 특정 시기를 마무리하고 떠나는 의식에 가까웠다. 〈에버모어〉는 다르다. 그는 떠나지 않고 회귀했다. 그러고는 동료들과 함께 곡을 쏟아냈다. 장담할 수 있다. 수록된 총 15곡 중 만족스럽지 않은 순간이라고는 없다. 〈포클로어〉와 비교해도 하등 뒤질 게 없는, 아니 도리어 더욱 근사한 곡이 여럿이다.

전체적인 결은 〈포클로어〉와 대동소이하다. 심플한 작법을 기초로 인디록, 챔버뮤직, 포크 등을 두루 아우른다. 혹시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싶어 부기한다. 챔버뮤직은 보컬 하모니와 관악, 스트링, 피아노 등을 활용해 멜로디와 사운드 텍스처를 풍성하게 가져가는 장르를 뜻한다. 혹여 쉽게 감 잡을 수 없다면 테일러 스위프트가 메인스트림 팝 스타로 세상을 호령한 시절의 화려한 히트곡, 예를 들어 ‘아이 뉴 유 워 트러블(I Knew You Were Trouble)’ ‘블랭크 스페이스(Blank Space)’ ‘셰이크 잇 오프(Shake It Off)’ 등과 직접 비교해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베스트 트랙으로는 ‘노 보디, 노 크라임(No Body, No Crime)’을 꼽고 싶다. 해석하면 ‘시체가 없으면 범죄도 없다’는 뜻이다. 줄거리는 대강 다음과 같다.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다. 둘 사이에 부정한 관계가 끼어든다. 결국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그 남편을 곡 속 내레이터가 살해한다’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 여기에서 아내의 역할을 맡은 게 바로 피처링으로 참여한 인디록 밴드 하임의 멤버 에스티 하임이다. 곡 분위기는 살인사건을 다룬 주제만 놓고 보면 꽤 강렬할 듯싶지만 기실 정반대다. 한 음 한 음 또렷한 발음을 통해 듣는 이에게 묘한 긴장감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지만 결코 오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오버하지 않기. 바로 〈포클로어〉와 〈에버모어〉를 모두 관통하는 가장 큰 핵심이다.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끌어올리기

비단 하임만이 아니다. 더 내셔널(The National)의 멤버, 본 이베어, 잭 안토노프 등이 아우르는 영역은 이번에도 역시 ‘인디’다. 이런 측면에서 어쩌면 〈에버모어〉는 테일러 스위프트 스스로가 자신의 새로운 선택이 단발성 충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팠던 욕구의 소산이지 않을까. 이후 앨범은 마지막에 위치한 ‘에버모어’에 이르기까지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감동을 자연스럽게 쭉 끌어올린다. 뭐랄까. 듣는 이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보다는 은은한 여운을 주는 음악인 셈이다. 따라서 〈포클로어〉에 바쳤던 수사는 이번에도 유효하다. 잔잔하지만 찬란하게 빛나며 흐르는 강물 같은 음악이 여기에 있다. 과연, ‘Evermore’라는 타이틀을 붙일 자격 있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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