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람] 논객 진중권, 그는 왜 '대중의 오류'와 싸워왔나

윤춘호(논설위원) 기자 2021. 1. 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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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한 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빚을 졌다. 108석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사람의 말을 받아 적느라 바빴던 언론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때 유시민, 이외수, 조국, 공지영의 말을 언론이 전하는데 분주했지만 지난해 진중권 정도는 아니었다. 이 사람이 SNS를 통해 몇 줄의 글을 쓰면 언론들은 퍼 나르고 실어 나르기 바빴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한 중견 언론인이 이런 한탄을 했을까.

"…진중권은 기자들의 게으름과 타락을 부추겼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진보 진영을 디스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그는 언론사 인용 건수 면에서 독보적인 메신저로 자리매김했다. 군소 메신저가 저마다 '진중권 밈'을 시도하지만 족탈불급이다. 매일매일 SNS 상에 올리는 그의 코멘트가 어김없이 기사화되는 전대미문, 전인미답의 현상과 경지가 연출되고 있다. 새해에는 언론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진중권 중독'을 디톡싱해야 한다."
<고승일 연합뉴스 논설실장 , 관훈저널 2020년 겨울호 중>

극렬 문재인 지지자들이 두려워 언론이 감히 말을 못하고 야당이 최약체인 상황에서 자신이 그 빈 틈을 채운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자신의 말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클릭 수를 확보한 언론의 상업주의도 한 몫 했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언론이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자기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며 언론이 자기 탓을 하기 전에 반성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의 말을 주로 인용 보도한 보수 언론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들이 도와준다는 데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일종의 협업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정합니다. 내가 부당하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글을 안 쓰면 그만입니다. 한겨레 신문 같은 진보 언론은 제 말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진중권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사회 현상이 있다면 오히려 이 현상을 전혀 언급 안하는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권력이 무서워 언론이 할 말을 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은 언론에게는 모욕적인 말이다. 언론이 할 말을 못했다는 말은 절반 정도 맞는 말이다. 매일처럼 비판을 넘어 저주와 조롱을 쏟아내는 언론이 어디 한 두 군데인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진중권처럼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진중권처럼 날카롭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은 용기 없음에 못지 않게 능력 없음을 반성해야 한다.

한국일보, 중앙일보의 지면에 이 사람의 글이 일주일에 한 번씩 대문짝 만하게 실렸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글을 밑줄 쳐 가며 읽었다. 보수층은 진중권의 글에서 여권 공격의 근거와 논리를 세우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거를 찾으려 했고 진보층은 자신들의 약한 곳을 아프게 짚는 그의 글을 읽으며 신음을 내뱉어야 했다. 그의 글에서 반성의 계기와 성찰의 방법을 찾는 이도 있었는데 어쨌든 그의 글은 나올 때마다 화제였다.

2. 그와 인터뷰 일정을 잡는 과정은 인내가 필요했다. 두세 번 문자를 보내야 겨우 답이 왔고 그나마도 늦었고 내용은 짧았다. 문자 메시지를 통해 더디게 만날 장소와 일정을 잡는 동안 거의 매일 그의 인터뷰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렸다. 마치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서서 그와의 인터뷰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매체는 달라도 그가 하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느라 그가 애쓴다고 생각했다.

이번 인터뷰는 카메라 기자가 동행하기로 했고 그 역시 사전에 이를 양해했다. 약속 시간 30분 전쯤 그의 집 앞에 도착했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그를 만났다. 취재팀을 본 그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이렇게 거창한(?) 취재팀이 올 줄 몰랐다는 것이다. 자기 집에는 이만한 사람들과 장비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며 영상 취재를 거절했다. 카메라 기자가 철수하고 그의 집안에 들어갔다. 17평이라는데 실제보다 작아 보였다. 식탁을 겸한 작은 탁자 옆에 의자를 놓으니 한 사람 지나다닐 공간도 빠듯했다. 주방은 밥 해먹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그는 주로 주변 편의점에서 김밥과 콜라로 식사를 해결한다고 했다.

조촐한 듯해도 군더더기 없는, 진중권에 딱 맞는 장소로 보였다.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그는 의례적인 우호의 표정 같은 것조차 지어 보이지 않았다. 커피를 권하며 손님 대접을 하긴 했지만 가벼운 웃음도 보이지 않았고 다소 사무적이었다. 적의 같은 것은 아닌데 그가 몸으로 상대방을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그의 경계 태세는 3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날 때쯤에야 조금 풀리는가 싶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무장을 완전히 해제하지는 않았다. 이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이런 마음의 무장을 풀 사람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전쟁을 치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기엔 충분하다는 공간에서 그는 루비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산다. 일상적으로 전화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은 5명 정도, 음악인으로 유명한 누나들과는 몇 년 째 얼굴을 안 보고 지낸다. 독일 유학 중에 만난 부인과는 떨어져 산 지 20년이 지났고 하나 있는 아들은 독일 유학 중이다. 개척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 됐고 어머니는 몇 년 째 요양원에서 투병 중이다.

'해방된 개인'으로 자유롭게, 그러나 외롭게 살고 있다. 가족에도 매여 있지 않고 친구에도 매여 있지 않고 조직에도 매여 있지 않다. 굳이 연대를 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에 굳이 누가 더 힘을 더해 줄 것을 바라지도 않고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조국 사태 국면에서 정의당을 탈당한 이후 그는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는 스스로 서있는 사람이자 스스로인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요하지 않다. 남들의 칭찬에 우쭐대지 않는다고 했고 남들의 비판에 상처받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정의당 김종철 대표를 만났을 때 진중권 복당을 추진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때 김종철 표정이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는 표정이었다. 정의당에 굳이 진중권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이 사람의 고독은 자의 반 타의 반일 수 있겠다.

3. 2012년 tvn의 SNL 프로그램에 그를 패러디한 '모두까기 인형 진중건'이라는 코너가 방송된 적이 있다. 토론의 달인으로 그가 모든 사람을 제압하는 것을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다. 방송 예능의 소재가 될 만큼 그는 토론의 달인이었다. 그가 토론의 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에게 영합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 사태 때, 황우석 사태 당시 그는 대중과의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국뽕' 감정에 젖어 있는 대중에게 찬물을 퍼붓고 재를 뿌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광기에 빠져 있을 때 그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들에게 '미쳤다'라고 소리쳤을 뿐만 아니라 촌스럽고 어리석다며 그 광기를 조롱하고 야유하곤 했다. 그의 말 못지 않게 태도가 사람들의 화를 더 돋우었다.

이 사람은 불화하는 사람이다. 친구와 불화하고 세상과 불화하고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이다. 독일 유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지 못한 것도 지도 교수와의 불화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대중과 불화하고 대중에게 반항하는 사람이다. 황우석 사태 때는 황빠에게 저항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박빠에게 노무현 정부 때는 노빠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사람은 대중들의 광기를 보면 이를 그냥 넘기지 못한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 사람은 미친 사람들에게 '당신들 미쳤다'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늘 대중과 불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은 기본적으로 매혹적인 존재입니다. 촛불 혁명 때, 광우병 시위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현장에서 방송도 하고 그랬습니다. 다만 대중이 틀렸을 때 제 할 말을 하는 것이지요. 프리드리히 쉴러는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이 들어야 될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게 '먹물'들의 임무입니다."

대중을 위로하는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중에게 애써 눈을 맞추려는 글도 없다. 그의 글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기 어렵다. 좋게 말하면 깐깐한 지식인의 자존심 같은 게 강한 것이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엘리트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미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쉽게 설명해주는 몇 권의 책이 그나마 그가 일반 독자들에게 베푼 친절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친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우파들이 미쳐 날뛸 때는 야유와 조롱이면 됐다. 그것으로 극우 논객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의 독설의 희생양이 된 이인화에 대한 그의 평을 들어보자. 이 오만함을 보라.
"난 이인화가 내 적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머리 열 개쯤 모아 직렬 접속을 해와도 마찬가지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중

젊은 시절 그의 야유와 조롱, 풍자와 해학에는 여유가 있다. 혀를 내밀며 용용 죽겠지라며 약 올리며 날 잡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잡아봐라 이 돌대가리들아라고 야유한다. 이인화, 조갑제, 박 홍, 이문열 등이 그의 놀림감이 된 사람들이다.

유시민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 대해 '탄탄한 철학에 기초한 냉혹한 풍자'라며 이렇게 평했다.
"'이 책은 전체주의 질서를 꿈꾸는 좌우의 극단주의에 대한 진짜 자유주의자의 인정머리 없이 냉혹한 철학적 정치적 공격이다. 진중권은 파시스트 냄새를 맡는데 가히 '영웅적인 천분'을 지니고 있는데 텍스트를 해체해서 배를 잡게 만드는 '건강한 풍자'의 밑바탕에 놓인 탄탄한 철학적 경험적 기초를 읽는 재미도 해학적 문장 자체가 주는 즐거움 못지 않다."

4. 몸 속의 DNA 자체가 좌파인 이 사람이 진보를 잡는 사냥꾼이 되었다. 나는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인데 그들이 변했다고 했다. 한 때 자기 편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집단적 착란 상태에 빠졌다는 게 이 사람의 진단이다.

"지금은 하나의 세상에 두 개의 사실이 있는 세상입니다. 가짜 표창장을 진짜라고 믿는 대중의 착란 상태를 집권 세력이 구조적, 조직적으로 유지하고 있어요. 법원 판단이 나오니까 그것에 승복하고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당 대표부터 법원을 비판하고 사법쿠데타라고 하잖아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허구의 세계에 대중을 가둬 놓고 있어요."

우파의 광기와 좌파의 광기는 대중 독재의 위험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없지 않다.

"예전의 황빠 노빠는 일시적인 팬덤 현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문빠는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수단인 동시에 지배 기구가 되어 있습니다. 청와대 청원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 들고, 떼를 지어 몰려 다니면서 조직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행태를 보입니다. 공당마저도 이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탭니다."

할 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내뱉는다. 권력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용기내어 입 열지 못하는 이 사회가 한탄스러울 뿐


조국에서 시작된 그의 비판의 칼날은 공지영과 유시민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까지 거침이 없다. 그의 비판의 칼날 앞에 누구도 예외가 없다. 오히려 힘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리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의 비판의 수위는 더 강하고 매섭다. 권한이 크면 당연히 책임도 커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혹독했다. 비전도 없고 철학도 없다고 했다. 허수아비라고 했고 이 땅에 대통령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하자 그는 정색하며 발끈했다.

"그게 전형적인 진영 논립니다. 이명박을 이메가라고 하고 박근혜를 닭근혜라고 비난하는 것은 되고 왜 문재인을 공격하는 것은 안 됩니까. 노무현 때는 대통령 씹는 것이 국민 스포츠라고 했습니다. 왜 문재인만 안됩니까. 시장 상인이 경기가 엉망이라는 한 마디 했다고 대깨문들이 몰려가서 행패를 부리는 게 말이 됩니까. 정권 핵심부에 있는 NL출신 운동권의 이상한 지도자 문화가 들어와서 생긴 일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보수의 집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집권 세력이 잘못하면 권력은 당연히 야당에게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개혁된 보수가 집권하는 것이 왜 안되느냐고 했다. 지금의 집권 세력이 반성하고 혁신할 가능성을 묻자 지금 여당은 비주류가 존재하지 않아 그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의 마음이 어디에 기울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보수의 집권 가능성이 예전에는 4:6이었지만 이제는 5:5로 높아졌다고 했다. 이렇게 된 데는 자신의 기여가 적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진중권은 과거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언어를 너무 정치적으로 쓴다. 자극적인 말로 제목을 뽑고 모든 것을 정치화 한다. 많은 사람들의 태도가 검사 같다. 지나치게 공격적이다, 저 사람을 까서 유죄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이다" (2013년 예스24 채널)

지금 당신의 모습이 그 때 당신이 가장 혐오한다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 말은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것을 지적한 말입니다. 지금 저는 유죄인데 무죄라고 주장하고 거짓말하는 조국 같은 사람에게 책임을 묻자는 겁니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게 아닙니다. 맥락이 다른 겁니다."

이 사람에겐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아직도 선명하게 나뉘는 모양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정파와 사파라는 말을 곧잘 썼는데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보는 것에 익숙한 듯싶다. 자신이 사파에 끼일 리는 절대 없다는 자신감이 확고해 보였다. 정의를 당신이 독점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미처 던지지 못했다.

그가 좀 더 여유 있게 싸울 수는 없을까. 살기에 가까운 저주 대신에 우아한 해학과 풍자를 무기로 '타락한' 좌파 지식인과 대중들에 맞설 수는 없을까.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아프잖아요. 아팠고. 지금까지는 진지하고 심각한 맥락이라 웃고 그럴 기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말이 꼬이고 웃기게 나오니 곧 그 사람들도 갖고 놀 수 있는 시간이 올 거 같기는 합니다. 풍자에 대한 욕망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있긴 있을 텐데 당장 생각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누구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은 말이 되지만 모든 사람의 사표는 자기 자신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를 사표로 삼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했다. 이 말에 이어 그를 가장 격렬히 비난하는 문재인 지지자들을 일컫는 이른바 대깨문들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다.

"대깨문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개인의 인성이 파괴되는 겁니다. 군중화(群衆化)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없어지는 겁니다. 자기들은 그 안에서 신날지 모르지만 남들은 그런 나를 존중해주지 않거든요.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해야 되는데, 집단에서 떨어져서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거기에 무슨 숭고한 대의가 있다고 자신의 인성을 포기하느냐 말이에요. 오로지 집단 속에서만 살아 있을 수 있는 한심한 인간이 되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배려했으면 좋겠고 자기 자신은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5. 유시민은 동지이자 선배였다.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지금은 적이 되었다.

-유시민은 여전히 진 교수에 대한 애정도 있는 거 같고 약간의 미안함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진 교수 말에는 유시민에게 감정이 실린 거 같습니다. 그 사람이 밉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예전에 친하게 지내긴 했지만 사적 관계가 없기 때문에 사감을 가질 이유가 없어요. 다만 공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은 공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유시민은 진보의 담론을 주도하는 인물입니다. 지성계의 담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저쪽에서 선동을 담당하는 사람이 유시민과 김어준입니다. 사람들은 김어준은 그냥 광대로 생각해요. 그래서 유시민이 더 중요하고 위험한 사람입니다."

유시민이 한 마디 할 때마다 진중권은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감정을 실린 언사로 유시민을 저격했다. 마치 유시민이라는 타겟이 나타나길 고대하는 저격수 같은 느낌이었다.

"여권의 대표적 선동가인 이 사람을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마다 지적을 해주는 것입니다. 원 샷, 원 킬이라고 할까요."

-유시민을 잡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제가 잡았다라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망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그를 잡았다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유시민 스스로 방어를 할 스탠스가 안돼 있는 겁니다. 유시민 본인이 잘 알 거예요. 어쨌든 유시민은 이제 거의 무력화 됐다고 봅니다."


한때는 괜찮았는데 권력을 맛보고 권력을 잡으니 그렇게 된 거 같다며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맞는 거 같다고 했다. 유시민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통쾌하다는 표정으로 자주, 크게 웃었다. 그에게 유시민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지 않았다.

6. 이 사람 자체가 정당이다. 그러니 그에게 정치할 생각이 없느냐는 말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단 한 명의 의원도, 단 한 명의 당원도 없는 정당이지만 그 어느 정당보다 강력하다. 108석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이 못하는 일을 이 사람 한 명이 해냈고 막강한 여당이 이 사람 글 몇 줄에 쩔쩔 맸다. 국회의원 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저한테 이제 국회의원 한 번 해야 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 들으면 웃겨요. 내가 진중권인데 그깟 국회의원 돼 봐야 뭐 합니까. 논객은 논객으로 잘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국회의원이란 직업은 자신에게 수지 맞는 일도 아니라고 했다. 독일에 있는 아이에게도 돈을 보내야 하고 요양원 계신 어머님도 돌봐야 해서 자기는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세비로는 감당이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수입이 의원 세비보다 더 많다는 뜻이냐고 했더니 당연히 그렇단다. 책 읽는 사람이 줄어서 인세는 줄었지만 강연 시장이 활성화 돼 수입은 예전에 못지 않다고 했다.

정치 관련 유튜브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럴 생각은 없단다. 그런 짓은 사파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다. 정파의 당당함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로 들렸다. 몇 년 전까지 정치 관련 강연이나 저술로 번 돈은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정치로 돈을 벌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유튜브를 하게 되면 정치가 아닌 미학이나 철학을 주제로 할 것이라고 했다. 책의 시대가 지났으니 동영상을 통해 소수의 사람에게라도 자신의 지식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싸움에 학문적 재능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걱정은 내가 하면 되지 당신이 왜 그런 것을 걱정 하느냐며 묻는 사람에게 가볍게 면박을 줬다.

"제가 정치적 발언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드시나 봅니다. (웃음) 지난해 제가 쓴 <감각의 역사>가 학술원과 교육부가 주는 우수 학술 도서로 선정되었어요. 미학 관련 논문도 두 편 썼어요. 지금도 철학사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지금까지 미학 저술 20권, 정치 비평 3권, 공저 18권, 번역서가 7권이다. 대략 50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미학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것은 이 사람이 1994년에 낸 <미학 오디세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50만 권이 넘게 팔렸다. 그의 이름을 알렸을 뿐 아니라 미학이라는 말을 알린 책이다. 갓 석사 과정을 마친 30대 초반 청년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놀라운 작품이다. 유학 비용을 마련하려고 쓴 책인데 이 책은 1990년대 100대 책 중의 한 권으로 선정되었다.

1998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쓸 때가 그의 전성기이다. 이 책의 저자 소개는 지금 읽어도 참신하고 생기발랄하다.
"1963년 세포분열로 태어난 빨간 바이러스….교회 주일학교에 침투해 유아들 사이에서 적색 소조 활동을 펴는 등 일생을 세계 적화의 한 길을 걸어왔다. 왜 꼬와?"
이에 비하면 최근 나온 신간의 저자 소개는 밋밋하다 못해 지루하다.
"우리 시대의 미학자이자 논객.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독일 자유 베를린 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1990년대 후반 진중권은 글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쏟아내고 있었다. 쏟아지는 글을 주체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은 분노를 앞세워 글을 쥐어 짜내는 느낌이다. 이름 석 자로 통하는 글쟁이답게 그의 거의 모든 책 표지에는 그의 이름 석자가 큼직하게 박혀있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앞세워 책을 팔겠다는 마케팅 전략이겠으나 내용보다는 포장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 같아 진중권스럽지 않다.

이 사람이 1994년 <미학 오디세이>라는 책을 들고 나왔을 때 이름만 낯설었을 뿐 이미 완성된 작가였다. 어디에서 어떤 수련을 겪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이미 데뷔작이 대표작인 된 사람이다. 그 이후로 27년이 흐른 뒤 투지 하나만은 여전하지만 몸의 움직임은 확연히 예전과 다르다. 경쾌한 발놀림과 빠른 몸놀림은 찾아볼 수 없다. 육중한 주먹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임기응변 능력 무엇보다 상대방을 알아도 너무 잘 알아서 상대방의 급소가 어디인지를 귀신처럼 알아내는 것이 이 선수에게 남은 능력이다. 그것만으로 당분간은 이 바닥에서 버틸 수 있을 거 같 같긴 하지만 최근 나온 책을 보면 그 마저도 전성기는 지난 느낌이 든다.


-최근 나온 <보수를 말하다>는 책은 진중권의 책 치고 엉성하고 헐렁해 보였습니다.
"사실 제가 보수에 애정도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보수 밖에서 보수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렇게 정치하게 분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그 책은 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8. 잘 알려진 것처럼 경비행기 조종이 취미다. 2006년 2인승 초경량 비행기를 구입했고 150시간 이상의 비행 시간 기록을 갖고 있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애기를 몰고 하늘로 치솟곤 했다. 자기가 모는 비행기를 타고 전세계를 일주하는 게 그의 꿈이다. 자동차 면허도 없는 이 사람이 비행기 조종 면허를 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륙할 때 출력을 높이면 속도가 빨라지면서 엔진소리가 커지고 진동이 심해지다가 어느 순간 진동이 사라지면서 비행기가 공중에 뜹니다. 그 때 이 세상에서 벗어났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이 좋습니다."

하늘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렇게 작은 세상에서 뭘 그렇게 아등바등하고 사는가 싶단다. 그렇게 높이 날아야만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그가 받는 스트레스가 크고 깊었다는 뜻으로도 그의 말은 들린다.

세상에 대한 격렬한 관심의 반대 쪽에는 세상과 거의 단절하다시피 하고 사는 진중권이 있다. 새벽 다섯 시까지 작업하고 아침 열 시나 열 한 시쯤 일어나 혼자 편의점에서 김밥에 컵라면으로 한 끼를 때운다. 스스로 눈에 뜨이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고 했다. 고2 때부터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꾸려고 반항도 좀 했고 폭행과 흡연으로 정학을 세 번이나 당했다.

꽤 오래 전 SBS 구내식당에서 혼자 아침을 먹는 진중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혼자 밥 먹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몇 마디 짧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때 이 사람이 착하고 유순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척교회를 하던 목사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목사님 아들답다고 생각했다.

진중권은 이제 페이스북 포스팅을 마치겠다고 했다. 정경심 교수의 1심 유죄 판결로 사실이 사실의 자리로 돌아왔으니 이제 자기 역할은 끝났다는 것이다. 싸움을 시작할 때는 완벽한 고립감과 두려움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에 만족한다고 했다.

"이 사회가 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그릇된 프레임에 맞설 수 있는 올바른 프레임을 깔아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법원 판결을 비롯해서 상당 부분 정상화되고 있잖아요. 그 과정에 제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할 일이었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빠지면 누군가 그 빈자리를 채울 거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한 발 물러나겠다는 뜻으로 들렸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중권은 이제부터 프레임 밖에서 타락한 진보 진영의 프레임을 폭로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쓴 글들을 모아 곧 책으로 낼 생각인데 제목이 <그들은 어떻게 통치하는가>란다. 다시 말하면 물러 서는 게 아니라 더 큰 싸움을 하겠다는 말이다. 더 크게 정치를 하겠다는 말로도 들렸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논객으로 살면서 그 역시 크고 작은 무수한 펀치를 허용했고 관중들의 야유와 조롱에 시달렸다. 그는 끄떡 없다고 말하지만 그에게는 피로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연초 jtbc 토론에서 무기력한 그를 보면서 이 사람이 내일모레면 예순 살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했다. 환청처럼 들리는 야유에 잠 설치는 일이 이 사람에게 과연 없었을까.

"사실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부정맥도 있습니다. 체중도 많이 줄었습니다. 오늘도 4시간 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취미 삼아 디지털 피아노를 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뇌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시작한 것이고 최근 시작한 스페인어 공부 역시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한 방법이란다. 목소리는 다소 흥분한 듯 성급하게 들렸고 중간중간 톤이 높아졌다.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 풀어지긴 했지만 그의 표정에서 여유나 안정감을 찾기는 힘들었다. 혹시 감시 당하는 느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쫓기는 사람의 불안함 같은 것이 있었다.


조국 사태 국면에서 진중권은 386은 세대로서 실패했다며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파시스트를, 변절한 진보주의자를, 진보를 가장한 모리배의 냄새를 맡는데 '영웅적인 천분'을 타고난 이 사람은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데도 뛰어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당분간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는 인세만으로 살수 있다면 사람들 만나지 않고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도 어렵다는 비트켄슈타인을 더 공부해서 쉬운 언어로 그와 사사건건 불화했던 대중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을 기대하긴 일러 보였다.            

윤춘호(논설위원) 기자spring8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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