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 대나무 고장 담양, 그윽한 커피향으로 물들다

박영래 기자 2021. 1. 9. 0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언론인 출신 담양커피농장 임영주 대표, 고향 4년 전 귀향
농촌마을 생기 불어넣고 일자리 제공 '커피타운' 큰그림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커피나무에 둘러싸인 담양커피농장 임영주 대표. /© News1 박영래 기자

(담양=뉴스1) 박영래 기자 =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 뭘 하며 살까'이다. 그래서 귀농이나 귀촌을 고민하는 이들 역시 오랜 기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안되면 그냥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35년 동안 언론사 기자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남 담양군 금성면으로 귀향한 임영주 담양커피농장 영농조합법인 대표(65)의 선택은 그래서 '커피'였다. 고향에서 직접 재배해 볶아낸 커피로 그윽한 인생2막을 열어가고 있다.

◇500평 비닐하우스온실에 커피 2000그루 재배

금성면 석현리에 자리한 5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온실 안에는 2000여 그루의 커피나무가 초록색을 뽐내고 있다.

커피의 대명사인 아라비카종이 대부분이고 그중에서도 품종이 나누어진 9개 품종을 시험재배 중이다. 커피나무 사이사이에는 열대과일도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북쪽에서 남하한 찬공기로 낮기온이 영하권을 맴도는 강추위 속에서도 커피 잎에는 생기가 넘쳤다.

일부 나무에서는 붉게 익어가는 커피열매가 눈에 띈다. 아열대 작물인 커피나무가 한겨울에 연녹색의 새잎을 피우는 모습도 보인다.

"1년 묵은 쌀보다는 올해 갓 수확한 햅쌀의 밥맛이 훨씬 더 좋지 않던가요? 커피도 직접 농사를 지어 신선한 맛을 선보이고 싶었죠."

커피향을 맡아보는 담양커피농장 임영주 대표. /© News1 박영래 기자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아열대 식물인 커피를 직접 재배해 '신선한' 커피를 공급하고 싶다는 도전정신의 발로였다. 이왕이면 우리나라에 없는 작물을 블루오션으로 찾아보자는 생각이 커피농사였다.

기호에 따라서는 숙성된 커피 맛이 더 깊을 수도 있지만 바로 수확해 갓 볶은 커피를 임 대표는 선택했고, 귀농 4년차인 그의 현재까지 발걸음은 성공적이다.

◇3년여 동안 서울과 담양 오가며 차분히 귀향 준비

기자생활을 마무리하고 귀향 아이템을 '커피'로 정한 그는 서둘지 않고 차분하게 준비했다.

국내 커피 재배에 관한 교재조차 없었고 전문가도 부족했던터라 그는 스스로 외국서적을 읽고 인터넷을 뒤지면서 커피 재배법을 공부했다.

정보가 빈약했지만 그는 3년여 동안 서울과 담양을 오가면서 비닐하우스를 마련하고 커피를 심고 가꿨다.

특히 커피농사 하나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점에 착안해 그는 농촌융복합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 이른바 생산과 가공, 체험관광 등을 연계한 6차산업을 구상하고 세부방안도 마련했다.

임 대표는 "그래서 준비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여기에 상담을 오는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준비기간을 넉넉히 두라'고 조언하곤 한다"고 말했다.

드디어 2017년 그는 주민등록을 담양으로 옮겼다.

◇마시는 커피서 커피식물학·커피인문학 강연까지

국내 커피 수입량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직접 커피를 재배하는 담양커피농장에는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커피열매를 직접 수확하고 볶고, 마셔보는 커피 체험농장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커피의 제조과정도 공부할 수 있었다.

담양커피농장 임영주 대표. /© News1 박영래 기자

커피가 뭔지를 공부하고 직접 만들어서 먹어보는 이른바 '올댓커피'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임 대표는 "버튼 하나만 눌러서 먹는 커피가 아니라 커피식물학, 커피인문학 강연까지 들어보고, 열매 수확 등 직접 체험해보는 공간으로 조성했다"고 소개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난생처음 보는 커피나무다.

"여태 커피나무 한번 못 봤지만 여기서 직접 보고 체험까지 하니 좋은 경험을 하게 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커피농장을 찾은 이들이 작성한 방명록이 벌써 10권이 넘는다고 임 대표는 말했다.

특히 그가 설명하는 커피 제조 과정 등은 새삼스러울 정도다.

붉게 익은 커피 열매를 수확해 열매의 과피를 벗기면 씨앗인 파치먼트가 나온다. 이어 씨앗을 덮고 있는 껍질을 또 한번 탈곡을 하면 그 속에서 나오는 게 생두다. 그리고 그 생두를 볶아서 활용하는 게 커피다.

우리가 모르는 커피나무의 잎도 녹차처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잎에는 항산화성분이 많다. 몸에 좋은 성분도 많다. 이 잎을 녹찻잎처럼 덖어서(볶아서) 녹차처럼 우려서 복용해도 좋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커피 꽃도 차로 마신다고 한다. 하얀 커피 꽃잎에서는 재스민향이 나온다. 하지만 꽃을 따면 열매가 맺지 않기 때문에 커피 꽃잎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하단다.

커피 열매를 감싸고 있는 껍질의 당도는 19∼21브릭스로 높아 잼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당도가 높아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콤한 잼이 된다.

임 대표는 "과육을 그대로 말리면 이걸 스페인어로 '카스카라'(과실의 껍질 의미)라고 부르는데 옛 잉카제국에서는 이를 식용으로, 때론 약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주민들과 함께하는 '커피타운' 조성 꿈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담양커피농장 역시 계획한 여러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가 귀향하면서 정한 목표는 '마을과 상생하면서 노후를 즐겁게 살자'였다.

담양커피농장 임영주 대표가 온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 News1 박영래 기자

그래서 많은 비용을 들여 바로 옆 방앗간 건물도 사들여 이걸 활용해 커피카페나 커피박물관 등등을 계획했다.

커피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커피타운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단계별 총 9차 계획을 세워놨지만 현재는 2차 계획만 진행된 상황이다.

특히 커피농장 뒤쪽은 영산강과 맞닿아 있고 마을숲도 있다. 이와 연계해 전시장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커뮤니티공간이자 영화관도 만들 예정이다.

"큰 목표를 세워놨는데 아직 갈길이 멀다. 하지만 차분히 하나하나 만들어가야죠."

쇠락하는 농촌마을에 생명을 불어넣고, 주민들에게 희망도 주고 일거리도 주는 커피타운. 임 대표가 그리는 인생2막의 큰그림이다.

yr200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