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파기'됐던 한일위안부합의, '위안부 배상' 판결에 3년만에 부활

손덕호 기자 입력 2021. 1. 9. 09:00 수정 2021. 1. 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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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위안부합의 후 민주당, "굴욕적 합의" 비판
文정부 화해·치유재단 해산…재협상 요구는 안 해
사문화됐던 합의를 3년만에 "공식 합의라는 점 상기"
한일관계 더 악화는 안 된다는 메시지

파기된 것과 다름 없었던 한일 위안부 합의가 3년만에 부활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한국 법원 판결이 8일 나온 뒤 일어난 일이다. 이 합의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파기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문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3년만에 "공식 합의"라는 표현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2월 24일 중국 청두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한일위안부합의, 2011년 헌재 결정이 계기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한일위안부합의를 체결했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부작위)은 위헌이라고 결정했고, 이후 한일간 최대 쟁점이 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합의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예산으로 재단(화해·치유재단)을 통해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기로 했다. 이를 전제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한국 정부도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이 합의에 따라 일본이 10억엔(약 100억원)을 출연해 2016년 7월 화해·치유재단이 출범했다. 한국 정부는 이 재단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에게는 1억원을, 사망자에게는 2000만원의 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합의는 즉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굴욕적 합의"라고 비판했다. 일부 위안부 피해자는 화해·치유재단을 통한 현금 수령을 거부했다. 대선을 앞둔 2017년 4월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효의 합의"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롭게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6년 3월 31일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日에 재협상 요구 않고 '사실상 파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일위안부합의는 사실상 파기됐다. 외교부는 장관 직속으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017년 12월 27일 한국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등의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튿날 입장문에서 "2015년 한일 양국 정부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사실상 합의를 백지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미국 뉴욕에서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화해·치유재단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다만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8년 11월 해산됐고, 이는 한일위안부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일본 정부가 낸 돈 가운데 60억원은 한국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가운데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선DB

◇"2015년 합의로 최종 해결" 日 발언 후 외교부 논평

그런데 한일위안부합의가 3년만에 다시 등장했다. 한국 법원이 8일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스가 내각 출범 후 개선될 조짐을 보이던 한일관계에 대형 악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이날 오후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외교부 논평은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이 이날 '위안부 판결'에 대해 "매우 유감"을 표하고, 위안부 문제는 "2015년 일한 합의로 최종적이고 또 불가역적인 해결이 일한 양 정부 사이에서 확인됐다"고 말한 뒤 나왔다.

외교부 제공

외교부는 불과 열흘 전인 지난달 29일에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이 '위안부 합의는 국가간의 약속이며, 한국이 이행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 중심 접근이 결여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국내외의 평가"라고 했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외교부가 위안부 판결을 두고 보인 반응에 대해 "정부가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의도는 없어 보인다"며 "한일위안부합의의 틀 속에서 이 문제를 다루려 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배상하라고 한 (법원 판결의) 틀과 위안부 합의의 틀이 그렇게 불일치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화해·치유재단 잔액 60억원을 활용해 문제를 풀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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