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벌레 한마리에 강의실이 '발칵' 뒤집힌 사연

2021. 1. 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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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박상현 코드미디어 디렉터]
오래전에 읽은 글이라 글쓴이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의 학자가 프랑스에서 연구하면서 느낀 불만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그 불만은 프랑스의 도서관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머물 때만 해도 프랑스 도서관들은 아주 불편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한다.

우선 도서관들이 지나치게 일찍 문을 닫았고(저녁 6시), 대출해서 집으로 가져갈 수 없는 책들이 많았으며, 복사도 쉽게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폐쇄형 서가를 운영했단다. 원하는 책을 카탈로그에서 찾아서 번호와 함께 사서에게 전해 주면 사서가 그 책을 찾아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어서 몹시 불편했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이런 폐쇄형 서가 시스템이 있었고, 지금도 (유명한 뉴욕 공공도서관을 비롯해) 많은 도서관에서 폐쇄형 서가를 운영한다.

그런데 그 학자는 단순히 프랑스 도서관이 불편함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책과 도서관을 바라보는 프랑스 혹은 유럽의 시스템이 미국과 얼마나 다른지를 설명하려 했다. 미국에서 책을 빌려주는 공공도서관 시스템을 만든 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던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었다. 즉, 미국에서 공공도서관은 그 탄생부터 사람들에게 책, 즉 지식을 퍼뜨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유럽의 도서관도 같은 기능을 하지만 그 출발은 전혀 달랐다는 게 글쓴이의 주장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것처럼, 유럽의 도서관은 수도원에 그 근간이 있고, 도서관을 관리하는 수사들은 책을 '지키는' 임무를 지니고 있었지,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여기에 대해서는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에서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따라서 유럽의 도서관 사서는 기본적으로 책을 독자들로부터 지키는 사람이라는 마인드가 강하다는 게 글쓴이의 주장이었다.

미술품 보존가의 이중 임무

미술품 보존가 김은진의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를 보면 도서관 사서들의 고민이 훨씬 더 증폭되어 드러난다. 저자의 직업명이나 책의 제목만 보면 이 직업은 미술품 '보존'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책과 마찬가지로 미술작품은 관객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고서와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내용만 지켜지면 충분하고 여러 개의 카피(copy)가 존재하는 책과 달리, 미술품은 그 물리적인 특성이 내용과 분리될 수 없다. 미술품 보존가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술품은 보여져야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것 자체가 미술품의 수명을 줄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의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시절,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 관한 건축사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다. 라이트는 근대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부세회)를 아주 좋아했고,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이를 반영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학기말 페이퍼를 쓰면서 학교 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우키요에 판화를 직접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판화들은 라이트가 직접 소장하던 작품을 기증한 것이라 그 가치가 매우 컸고, 특별한 전시행사가 없으면 꺼내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큐레이터에게 작품을 꺼내서 보여 달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의 권리는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큐레이터와 함께 작은 방에서 몇 개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큐레이터는 내가 도착하기 전에 작품들을 책상 위에 꺼내 놓았는데, 20년도 훌쩍 넘은 그날의 기억은 작품에 대한 느낌이 아니라, 내 옆에 서서 혹시라도 작품이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던 큐레이터의 모습이다. 갓 태어난 첫아이를 안은 부부도 그만큼 쩔쩔매지는 않는다.

그게 미술관에서 작품을 다루는 사람들의 고민이다. 보존만이 임무라면 일은 쉽다. 완벽한 보관 환경을 만든 수장고에 넣어 두고서는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미술작품은 땅에 묻어 두는 타임캡슐이 아니다. 보존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시에 있는데, 공개된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손상을 피할 수 없다. 이 상충하는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미술품 보존가들이다. 저자의 설명은 이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또 다른 미술품 보존가인 김겸(<시간을 복원하는 남자>의 저자)은 "예술작품은 수 백 년의 제한된 수명 동안에 잠깐 우리를 만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직업도 오래 하다 보면 철학적인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겠지만, 작품을 망가뜨리는 가장 거대한 힘인 시간과 대결해야 하는 보존가들이 철학적 고민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의실에 들어온 무당벌레

짐작하겠지만 미술품 보존가는 과학지식과 분리할 수 없는 직업이다. 일반인이 소화하기 힘든 전문지식이 나오면 부담스럽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과학지식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굳이 읽고 싶지도 않을 거라는 모순이 있다. 김은진은 과학지식을 처음부터 내놓지 않고 읽는 사람이 내용에 푹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 설명도 아주 쉽고 섬세하다. 어쩌면 저자의 성격일 수도 있겠고, 그 직업 특유의 조심성일 것도 같은데, 가령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관한 대목에서 그러한 면이 잘 드러난다.

"500년 동안 벽화에 쌓인 촛농과 그을음을 최대한 닦아 내고, 그동안 무분별하게 칠해진 각종 접착제와 덧칠도 제거하려고 했다. '제거했다'가 아니라 '제거하려고 했다'라고 한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그림에 등장한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김은진은 '제거했다'와 '제거하려고 했다'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미술품의 복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한다. 나처럼 글을 빨리 쓰면서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저자가 내용 뿐 아니라 전달 방식에도 신경을 쓴 게 보여서 그렇다.

이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는 매 장이 흥미롭다. 작품에 침을 뱉어서 먼지를 닦아 내는 복원가, 캔버스가 물에 젖으면 그림이 오히려 수축한다는 사실, 캔버스 뒤에 천을 붙이는 배접이 만들어 내는 '명화의 느낌' 같은 이야기들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을 만큼 재미있다. 그중에는 미술사를 전공한 나도 전혀 몰랐던 내용들이 많다(가령 미술관에서 벌레가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그 옛날 수업 중에 교탁에서 무당벌레를 발견한 교수가 깜짝 놀라 수업을 멈추고 관리자를 불렀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었다. 그 강의실은 미술관 지하에 있었고, 이 책에 따르면 미술관에서 벌레가 발견되는 일은 심각한 사태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책의 프롤로그에 끌렸다. 저자는 20여 년 전 시스틴 성당에서 복원 중이던 미켈란젤로의 벽화를 보면서 미술품 복원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나 역시 1990년대 배낭여행 중에 그곳에 처음 갔을 때 복원 중이던 벽화를 봤고, 그 여행이 미술사를 전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에 있었던 또 다른 여행자가 살아온 다른 인생을 들여다보는 느낌. 책과 예술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김은진 지음) ⓒ생각의힘

[박상현 코드미디어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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