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북한에선 국군포로 가족..탈북 후 꽃피운 사랑

KBS 2021. 1. 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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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 국군포로 가족은 이른바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차별과 감시 속에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네, 북한에서 탄광 노동을 하면서 힙겹게 살다가 탈북한 국군포로 가족이 있습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봤죠?

[답변]

네. 충남 아산에서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이수진 씨 이야기인데요.

북한에서 워낙 감시를 받고 살다 보니까 한국 생활 정착도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앵커]

그런데 북한 탄광에서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를 한국에서 만났다고요?

[답변]

네. 운명적인 사랑으로 북한 생활 트라우마를 극복한 탈북민 부부의 특별한 사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아담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마을. 이곳에 남다른 손길로 입소문이 난 미용사가 있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2006년 함경북도 온성에서 남한으로 온 이수진 씨입니다.

[이수진/탈북민 : "저 2016년도부턴가 했어요. 원래 만들고 이런 걸 좋아해요. 누군가의 머리 만져주고 이런 걸 되게 좋아하는데, 나도 이거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배우기 시작하고 한 거예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미용실을 개업했지만, 지금은 수진 씨만 찾는 단골손님이 많은데요.

[손미옥/손님 : "저희 만난 지 5년 좀 넘었어요. 굉장히 꼼꼼하고요. 세심하고 한분 한분한테 그 사람한테 맞게 물어봐 가면서 개성에 맞게 잘해주시는 거 같아요."]

수진 씨에게 머리 손질은 하나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드디어 완성된 머리를 확인하는 순간.

["잘 나왔네. (그죠.) 밑에만 해도 괜찮네. (제가 원하던 스타일로 잘 나온 거 같아요.)"]

쉬는 동안에도 미용사에게 필요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한국 생활 16년 차에 접어든 수진 씨.

개인 미용실을 운영할 정도로 안정적인 삶을 꾸렸지만 여전히 이방인 같은 기분은 지울 수 없다고 합니다.

수진 씨는 북한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국군포로의 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수진/탈북민 : "할아버지가 국군 포로다 보니까 아버지도 많이 고생했고 엄마도 맘고생 많이 했고 온 집안이 모든 게 다 감시였거든요. 집에 오는 사람이 다 스파이였어요. (가족이) 다 감시 대상이었고 그렇게 살았어요."]

부산 출생인 할아버지는 19살의 나이로 6.25 전쟁에 국군으로 참전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포로로 붙잡히면서 온갖 고초를 겪어야만 했는데요.

가족들 역시 탄광으로 끌려가 고된 노동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이수진/탈북민 : "할아버지 탄광에서 일했으니까 아빠도 똑같이 탄광에서 일했죠. 나도 탄광에서 일했고 북한에선 부모가 탄광이면 자녀도 탄광이에요."]

결국 2004년 할아버지가 일흔이 넘은 나이로 탈북을 했고 2년 뒤 북한에 남아 있던 가족들도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차별과 감시를 견뎌내야 했던 생활 습관 때문에 한국 생활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수진/탈북민 : "모든 사람을 다 믿지 못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거랑 행동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혼자 생각해서 나만의 드라마를 써서 벽을 치고 조금 저한테 어떤 거 같으면 공격하고 그런 것 때문에 한국 와서 7년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여보 나왔어. (어 왔어?)"]

힘들 때마다 묵묵히 옆을 지켜준 고마운 남편입니다.

[이광철/이수진씨 남편 : "작은 거라도 도와주려고 하다 보니까 바닥이라도 쓸어 주는 거거든요."]

사소한 일이라도 아내에게 도움이 되고픈 광철 씨!

그런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수진 씨가 솜씨를 발휘합니다.

["머리를 좀 길렀으면 좋겠는데. 내가 신랑 머리 파마해 주는 게 최대 목표다. 파마 한번 해보자. 길러서. (남편 분께서 사장님 소원 이뤄드릴 수 있을까요?)"]

영업을 마친 수진 씨 부부가 집으로 향합니다.

퇴근길에도 꼭 붙어 있는 두 사람을 보니 괜히 제가 다 샘이 났습니다.

수진 씨가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옆에서 남편이 그 누구보다 큰 도움이 됐다는데요.

그런데 이 부부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두 사람.

볶고, 조리고 하다 보니 맛깔나는 저녁상이 차려졌습니다.

[이광철/이수진씨 남편 : "북한에 있을 때 탄광 일할 때 만났는데 여잔데 몇십 킬로씩 등에다 지고 다니니까 그거 보고 뭔가 맘이 갔던 거 같아요."]

이들은 2001년 처음 북한 상화탄광에서 직장 동료로 만나 친해졌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광철 씨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수진/탈북민 : "없어지고 나서 옆에 없으니까 그때부터 생각나더라고요 찾게 되더라고요 아 이 사람 있었을 때 참 좋았었는데 이런 생각을 2년 가까이 한 거 같아요."]

수진 씨는 광철 씨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소식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나중에 탈북을 했다는 소문만 돌 뿐이었는데요.

그렇게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혀가다가 두 사람은 고향 사람을 통해 한국에서 극적으로 재회합니다.

먼저 정착한 광철 씨의 아낌없는 도움을 받은 수진 씨!

북한에서 느끼지 못했던 애정의 감정을 갖게 됐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다는데요.

[이수진/탈북민 : "나가서 스트레스받고 오면 이 사람한테 퍼붓고 해도 도망 안 가고 항상 옆에 붙어 있더라고요. 나는 그게 감사하다고 생각 안 했거든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성격이 안 좋다는 걸 느끼고 나서 그걸 받아 주고 산 사람이 정말 고맙더라고요."]

든든하게 함께 해주는 남편 때문일까요?

수진 씬 북한에서의 아픈 기억을 잊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행복한 가정을 가꿔가고 있습니다.

[이수진/탈북민 : "둘 다 부모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산 사람들이라 우리 자녀들한테만큼은 부모의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 근데 그게 참 어려운 거 같아요. 내가 바라는 건 그거예요."]

코로나에, 한파에, 힘겨운 세상살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탈북민 부부의 운명적인 사랑에 코끝이 찡해지는 하루였습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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