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녹인 "미라클" 졸업식

입력 2021. 1. 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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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행사가 있죠?

◀ 차미연 앵커 ▶

바로 졸업식이죠, 조금 있으면 본격적인 졸업 시즌이 시작될텐데요.

◀ 김필국 앵커 ▶

네, 그런데 탈북 청소년들이 다니는 한 대안학교는 며칠 전에 졸업식을 했다고 합니다.

◀ 차미연 앵커 ▶

특별한 졸업작품도 전시했다는데요.

이상현 기자가 그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지난달 말, 서울 인사동에선 세밑을 맞아 좀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정부의 학력 인정을 최초로 받은 탈북 청소년 교육기관, 여명학교를 후원하기 위해 서울대 미대 동창회가 마련한 자선전시회로, 100여개의 미술작품들이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웠습니다.

[김미혜/서울대 미대 동창회 상임부회장(서양화가)] "가장 소외받고 문화적으로 힘든데가 어딘가 하다가 저희가 탈북자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 작품들 사이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벽화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명학교 건물을 중심으로 남산타워와 팔각정, 백화점, 아파트 등 학교 주변의 건물들이 듬성듬성 그려져 있는데요.

서울대 미대 출신 전문 화가의 도움으로 석회 벽화, 프레스코 기법을 이용해 여명학교 학생 18명이 두달간의 공동작업을 통해 탄생시킨 작품입니다.

[선우항/미술 지도 프레스코 화가] "이 프레스코 기법은 일반 작가들도 쉽게 접하지 못하는 특이한 기법인데다가 여명학교 학생들이 고구려벽화를 승계한다는 의미에서 좋을 것 같아서 지도를 하게 됐습니다."

다양한 미술체험을 해보지 못한 북한 출신 학생들이어서 그림 곳곳에 초보적인 솜씨가 드러나긴 했지만, 졸업식을 앞두고 작품작업에 참여한 여명학교 3학년생들에겐 특히 뜻깊은 '졸업작품'이 됐습니다.

전시회가 있은지 2주일이 흐른 지난 화요일.

서울 남산자락에 자리잡은 여명학교를 찾았습니다.

[이상현 기자/ 통일전망대] "잠시후 이곳 여명학교에선 17번째 졸업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코로나때문에 이번 졸업식은 좀 특별하게 이뤄진다는데요, 함께 들어가보시죠."

올해 졸업생은 모두 32명.

하지만 비좁은 졸업식장엔 졸업생 5명과 학교 관계자들만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집합 인원을 최소화한 것으로, 나머지 졸업생들은 각자의 교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졸업식에 참석하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그래도, 빛나는 졸업장을 받는 순간만큼은 모니터가 대신할 수 없는 법.

졸업생 대부분이 대학진학이나 취업에 성공한만큼 하나하나 호명될때마다 졸업식장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미래의 패션디자이너라고.." "여명의 댄싱퀸이자 성적퀸입니다." "키다리 아저씨죠. 키가 조인성이랑 똑같다고 합니다."

졸업 소감을 밝히는 시간.

한마디 한마디가 남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통일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이 된다고 저는 상상조차 못해보았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고 사랑받는 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인 북한을 떠났고 대부분 부모나 가족이 아직 북한에 있는 학생들.

언어와 문화, 환경이 달라 우리 사회에 정착하는데 주변 도움이 절실했던 학생들인만큼 유독 북받쳐오르는 감정은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2018년 입학한 날이 엇그제같은데 벌써 졸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눈물에 지난 1년간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선생님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집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3학년2반 담임 전형국입니다. 어 제가..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코로나19로 우여곡절 많았던 한해였던만큼 그간의 감정들을 표현한 선생님의 자작시 '그 시간'은 그래서 찡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학생들과 처음 한명씩 통화했던 그 시간 학교가 아닌 랜선으로 얼굴을 처음 본 그 시간, 그 시간을 저는 기억합니다.. 코로나로 멈춰버린 듯한 1년의 그 시간 마스크로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고 얼굴을 서로 마주보며 밥한끼조차 할 수 없었던 잔인했던 그 시간.. IT전문가가 되어 다시 만날 그 시간, 여행가이드가 되어 다시 만날 그 시간, 함께 꿈을 그렸던 그 시간, 그 시간이 다시 오기를 저는 기다립니다."

[전형국/여명학교 3학년 담임교사] "함께 하는 뭔가 같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게 아무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고 학생들한테도 미안한 마음도 저한테 많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유독 올해가 그런게 많이 느껴집니다 특별히."

정년퇴임을 한달여 앞둔 교장선생님은 10년 가까이 외쳐온 기적, 미라클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외쳤습니다.

[이흥훈/ 여명학교 교장]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 이곳에 와서 공부하는 것도 미라클(기적)인데 그 미라클이 미래의 미라클로 가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미라클이라는 구호를 만들었는데 저와 함께 어쩌면 마지막 힘차게 한번 구호 한번 외치겠습니다. 미라클..미라클!"

지난 16년간 33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여명학교는 이번에 17번째 졸업생, 통일시대의 자양분이 될 32명의 청년들을 우리 사회에 내놓게 됐습니다.

[이흥훈/여명학교 교장] "자리를 잘못 잡으면 사회에 상당히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그런 학생들인데, 우리 학생들이 사회에 굉장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여할 수 있는 학생들로 키운다는 것이 (우리의) 큰 역할이 아닌가 싶고.."

대학으로, 군대로, 회사로...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이 탈북청소년들은 통일 이후 남북의 연결고리로서 통합과정에서의 전문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게 성장해 나갈 것이며, 이들로 인해 통일 한반도의 미라클은 한층 더 또렷하게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052518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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