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 편에서"..국세청 세무조사 바로잡는 기재부 세제실의 승부수

세종=박성우 기자 2021. 1.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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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지난 2017년 6월부터 7월까지 A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당초 조사대상 사업연도는 2015년 한 해였다. 하지만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하면서 2011~2014년 사업연도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관은 납세자에게 사전통지를 하지 않았다. 납세자에게는 자료 제출을 독촉하기도 했다. 결국 A업체는 약 3억7000만원의 소득세가 부과됐다.

하지만 감사원은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세금탈루 증거자료가 확인돼, 조사가 필요한 경우 등이 아니면 조사 진행 중 범위를 확대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또 조사범위 확대를 위해서는 조사 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감사원은 "세무조사권을 남용하고 납세자의 권익을 부당하게 침해했다"며 담당 조사관에게 경징계 이상의 징계 처분을 하라고 요구했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0년 세법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 배경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기재부

지난 5일 발표한 ‘2021년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국세청의 ‘묻지마식 세무조사’를 막기 위한 조치들이 포함됐다. 세무조사 전 사전통지에 ‘과세기간’을 추가하고, 추징시에는 추징액 관련법과 계산근거를 제시하도록했다. A업체처럼 세무조사 기간 중 포착된 과거 자료로 세금을 추징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국세청에서는 ‘세무조사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는 불만도 나왔다. 그러나 기재부는 세무조사에 절차적 규율을 강화해서 납세자에는 방어권을 보장하고 국세청 조사관에 의한 세무조사권 남용을 방지하겠다는 의도에서 시행령 개정안을 관철시켰다.

◇사전통지·조사관 교체에서 녹음까지… "납세자 권익조치 지속 발굴"

이번 세법개정은 국세청과 각 부처, 세제발전심의위원회, 경제·사회단체 등을 통해 개정건의가 접수되면서 반영된 것이다. 그동안 세무조사 관련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면서, 납세자의 알권리와 방어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여러 세제개편 의견창구로 전달돼왔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지난 3년간 세법개정을 통해 국세청 세무조사의 절차적 규율을 강화하는 제도개선을 추진했다. 이같은 작업은 ‘조세전문가’로 꼽히는 임재현 기재부 세제실장 주도 아래 이뤄졌다.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임 실장의 오랜 철학이다.

행정고시 제34회인 임 실장은 동래세무서 등 일선 현장을 경험한 이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세제실로 전출해, 세제 관료의 길로 들어섰다. 2013년에는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을 맡기도 하면서, 국세청 등 과세관청에 대한 납세자등의 이의 신청 사건을 직접 다뤄본 경험도 있다. 국세청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아는 인물이다. 이러한 공로로 임 실장은 지난해 12월 한국납세자연합회로부터 ‘납세자권익상’을 수상하기로 했다.

세제실은 지난 2019 세법 개정에서도 납세자보호관(고위공무원급)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세무 공무원의 교체·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국세기본법 시행령(63조) 개정했다.시행령에 따르면 납세자보호관은 세무조사권 남용 행위를 발견하면 납세자보호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소규모 사업자(업종별 매출액 1조5000억~6억원 이내)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에는 납세자보호관 입회를 허용하기로 했다.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세무조사를 악용하는 사례를 근절하고, 납세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다.

/조선DB

임 실장은 지난 2018년 조세총괄정책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도 세무조사 과정에서 납세자, 조사공무원의 녹음권을 인정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을 추진했다. 세무 공무원과 납세자가 세무조사 과정을 녹음할 수 있게 하되, 세무공무원이 녹음할 때에는 납세자에 사전통지하게 하고, 납세자가 요청하면 녹음파일 등을 교부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고 해외 유사 사례도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기재부 세제실과 국세청은 법안을 두고 날 선 신경전을 벌였고, 기재부가 ‘국세청 길들이기’에 나선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법 개정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납세자 권익보호를 위한 조치들인데, 국회 벽을 넘지 못해 아쉽다"며 "세무조사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개선건의를 받고 있고 지속적으로 개선안을 발굴하고 있다"고 했다.

◇국세청 세무조사 10건 중 3건은 무혐의…"책임성 강화해야"

일각에서는 세법 개정이 국세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특히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다는 평가를 듣는 기재부 세제실과 국세청의 관계가 크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세금 제도를 설계하는 일은 세제실, 세제를 운용하는 것은 국세청의 몫으로 나눠져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국세청이 더욱 우월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정부 안팎에서는 "세제실이 상위 부처인데, 국세청에게 힘에서 밀린다"는 인식이 많다.

세제실은 세무조사와 관련해 앞으로도 납세자의 권익보호와 방어권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9회계연도 결산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세청 범칙조사 건수는 313건으로 이 중 238건(76%)을 고발⋅통고 처분했다. 최근 5년간 조세범칙 처분율(고발⋅통고처분/범칙조사)이 70%대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남발되는 세무조사가 많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무혐의로 처리되는 건의 비중이 높아지면 납세자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무혐의 처분을 받는 건이 최소화 되도록 (국세청이)조세범칙대상자 선정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세청에선 "현실을 모르고 하는 조치"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세자 권익보호라는 취지는 매우 공감한다"면서도 "다만 세무조사 위축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녹음권 등 일부 정책들의 경우,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과 교수는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경제계의 검찰로 불릴 만큼, 개인과 기업에는 무서울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세청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세제실이 납세자 입장에서 조세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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