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 발언은 윤리특위 제소하면서..중대 의혹은 탈당으로 끝?

장나래 2021. 1. 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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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BAR_장나래의 국회TMI
'이해충돌' 박덕흠, '탈세 의혹' 전봉민 이어
'성폭행 의혹' 김병욱도 국민의힘 탈당
국민의힘을 탈당한 무소속 김병욱 의원이 지난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턴 비서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유튜브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고 밝힌 뒤 인사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탈당합니다. 결백을 밝힌 후 돌아오겠습니다”(지난 7일, 김병욱 당시 국민의힘 의원)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국민의힘 당적을 내려놓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에 누가 되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했습니다”(지난달 22일, 전봉민 당시 국민의힘 의원) “저는 오늘 국민의힘을 떠나려 합니다. 당에는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도록 당적을 내려놓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스스로 했습니다”(지난해 9월23일, 박덕흠 당시 국민의힘 의원)

이번에도 어김없이 의혹의 끝은 탈당으로 귀결됐다. 김병욱 당시 국민의힘 의원의 탈당 이유도 앞선 의원들과 같이 ‘당에 부담이 될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선언 시점도 이전 사례를 따라 배운 듯 똑같았다. 김 의원이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인 2018년 10월 경북 안동의 한 호텔에서 다른 의원실 인턴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인 지난 7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긴급 대책 회의를 소집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회의를 20분 앞두고 두 문장짜리 탈당선언문을 언론에 배포하며 돌연 탈당을 선언했다. 기자회견도 없었다. 뒤이어 비대위 긴급회의도 취소됐다. 당원이 아니어서 검증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다. 결국 이번에도 진상조사위 구성이나 징계 논의를 시작도 해보기 전에, 당 차원의 조치는 끝이 났다.

보름만에 다시 나타난 ‘탈당 꼼수’…이번에 특히 움직임 빨랐던 이유?

‘일감 몰아주기’와 증여세 탈루 의혹에다 부친이 돈으로 기자를 회유하려던 사실이 드러난 전봉민 의원 역시 당에서 진상조사를 예고한 당일, 탈당을 선언해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해충돌 의혹이 불거진 뒤 한 달을 넘게 버틴 박덕흠 의원도 당 차원의 긴급진상조사 특위가 만들어진 지 하루 만에 탈당을 선언했다. 당은 악재를 차단해 책임에서 벗어나고, 당사자도 진상 규명과 징계를 모두 피하면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탈당 꼼수’가 불과 보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당의 움직임이 빨랐다. 박덕흠 의원은 처음 의혹이 불거진 지 한 달 넘어서야 당에서 진상조사 특위를 예고했고, 전봉민 의원은 사흘 뒤 진상조사를 거론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하루 만에 당 회의를 소집했다. 전 광역단체장들의 성범죄로 치르게 된 보궐선거를 석 달 앞둔 상황에서 성 관련 의혹이 터져서다. 비대위원들 사이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한시 빨리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당내에서는 김 의원이 탈당을 결심하는 데 지도부의 압박이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4·7보궐선거를 민주당 소속 전임 서울·부산시장의 성범죄로 비롯된 ‘성추행 재보선’으로 규정하며 대여공세를 펴고 있는 국민의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8일 의원총회에서 “최근 우리 (당) 의원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저희가 윤리위를 열고 조처를 하려니 탈당했다. 선거를 앞둔 엄중한 시기다. 선거 없는 때라도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백일하에 드러난다는 점을 잊지 마시고 각별히 유념하길 바란다”고 경고하며 내부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당 차원 진상조사하라” 정치권 국민의힘에 비판…국회 차원 노력은?

정치권에서는 이번에도 일제히 비판을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8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국민의힘에서 비대위 회의를 소집했다가 탈당을 이유로 회의를 취소했다. 아무런 결과 없이 회의를 취소했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탈당이 절대 면죄부가 아니다. 진상조사에 적극 착수하고 일부라도 문제 있다면 고발 조치해야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비판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도 “참담하다. 잇따른 남성정치인들의 성폭행 의혹과 사건에 어디까지 실망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며 “의혹만 생기면 탈당으로 ‘꼬리자르기’하는 정치인과 정당의 행태에 허탈하기 그지 없다. 탈당했다고 다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을 겨냥해서만 책임을 물을 뿐, 국회법에 규정되어있는 윤리특별위원회 등 여야가 함께 할 수 있는 국회 차원의 노력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었다. 현재까지 김 의원은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되지 않은 상태다.

제헌국회 이래 70여년간 윤리특위 징계 6건뿐

탈당한 무소속 의원에 대해 징계가 가능한 건 윤리특위가 국회 내에 유일하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21대 국회 들어 위원장 선출을 위한 첫 회의만 열었을 뿐 징계 논의는 한 차례도 없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4년 동안 단 한 건의 징계도 이뤄지지 않았다. 참여연대가 8일 발표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문제점과 개선방안 이슈리포트’를 보면, 1948년 제헌국회부터 21대 국회(지난달 31일 기준)까지 모두 360건의 징계안이 발의됐지만 실제 가결된 징계안은 6건으로 1.7%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1년, 강용석 당시 무소속 의원이 성희롱 발언으로 제소된 제명안이 부결되고 30일간 출석 정지를 받은 게 마지막 가결이었다.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회 본회의에서 징계 여부를 물은 자체도 29건(8%)에 불과했다. 277건은 폐기됐다.

어차피 안 열릴 윤리특위에 왜 자꾸 제소하나

그런데 이처럼 유명무실한 윤리특위에도 21대 국회 들어서만 모두 8건의 징계안이 제출됐다. 왜 ‘잠자고 있는’ 특위에 징계안은 계속 회부되는 걸까? 민주당에서는 김용민·윤호중·장경태·황희·윤미향·윤영찬 의원 등 6명이, 국민의힘에선 유상범과 박덕흠 의원 등 2명이 회부됐다. 정작 탈세·성폭행 의혹 등 중대한 사안에 연루된 전봉민·김병욱 의원은 징계안조차 제출되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제소된 김용민 의원은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 과정에서 울산시장 선거 수사와 관련해 허위사실을 주장해 김기현 의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국민의힘 의원들로부터 제소당했고, 장경태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개소리’라고 표현했다는 이유로 제소됐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 명단을 공개했다가 여당 의원들에 의해 제소당했다. 각 당은 의안과에 징계안을 제출하는 장면을 언론에 공개하며 상대를 비판하는데 혈안을 올렸지만, 윤리특위에 징계안 심사를 위한 회의를 소집해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윤리특위 제소를 정치적 공격의 수단으로 삼아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 징계안이 심사될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알면서 정치적인 제스처로 제소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 쪽은 “21대 국회의 경우 개원도 하기 전부터 이해충돌, 윤리 문제가 논란이 되는 등 갈수록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징계해야 할 국회 윤리특위의 의원 징계안에 대한 심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며 “여야가 정치적으로 이용만 할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예방과 징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문제는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대안으로 △별도 의회윤리법 제정 △이해충돌 회피를 위한 사전 정보공개 대상 확대 △국민 윤리심사청구제도 도입 △외부인사도 참여하는 독립적·상설 징계심사 윤리위원회 구성 △징계안 심사 기간 제한 등을 제안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바로가기 : 탈당하면 끝? 전봉민에게서 박덕흠이 보인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757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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