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리는 치료와 사람 대접하는 요리는 서로 통하죠" [마이 라이프]

최현태 2021. 1. 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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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셰프' 임상진 SL안과병원 원장
우주에 관심 많아 공과대 원했지만
부모 뜻에 따라 의대로 진학하게 돼
컴퓨터·레이저 등 다루는 안과 택해
음식 유래·재료 모두 달라 파고들어
요리에 미치다보니 깊숙이 공부해
韓·中·日·양식 조리사 자격증도 따내
내세울 메뉴 없어 식당서 새로 배워
주방장의 손기술도 어깨 너머로 익혀
이젠 국제요리대회서 수상할 정도
1998년 국내 라식수술 원조로 명성
고령화시대 현대인 눈질환 많아져
시력 이상해지면 바로 검사 받아야
‘닥터셰프’ 임상진 원장이 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SL안과 진료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식·중식·양식·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모두 따낸 임 원장은 활발한 방송 활동과 책 출간을 통해 올바른 눈 건강 정보를 전달하고 눈 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소개하고 있다.
‘하얀 가운을 입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위생관념이 철저하다. 칼을 다룬다.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어떤 직업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누군가는 의사라고, 어떤 이는 요리사라고 답할 것이다. 두 직업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닮은 구석이 많다. 영어 단어 ‘트리트(treat)’에는 음식 등을 대접한다는 뜻도 담겨있고, 여기서 나온 ‘트리트먼트(treatment)’는 치료를 뜻한다.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고 요리사는 사람에게 대접한다. 이쯤 되면 ‘요리하는 의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낮에는 환자를 돌보고 밤에는 요리하는 ‘닥터셰프’ 임상진(56) 안과전문의에게 요리는 치료와 비슷하다. 맛있는 한 끼 요리는 사람의 영혼을 치유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진료와 요리 사이, ‘닥터셰프’로 사는 길

임 원장은 사실 우리나라 ‘라식수술의 원조’로 더 유명하다. 199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SL안과를 열 때만 해도 강남에 라식수술 전문병원은 두 곳밖에 없었다. 다른 병원들은 자리바꿈했지만 임 원장은 한번도 옮기지 않고 혼자서 같은 자리를 20년 넘게 지키다보니 원조 타이틀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안과전문의는 그에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우주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기에는 공대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의사를 존중해 의대에 진학했죠. 첨단 기계, 컴퓨터, 레이저를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니 안과더군요.” 지금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활약하는 꿈을 꾸는 그에게 컴퓨터는 ‘껌’이다. 조립하는 데 12분밖에 안 걸린단다. 2002년부터 대한안과의사회에서 이사와 부회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도 펼쳤는데 컴퓨터 실력을 발휘해 안과의사회 첫 홈페이지도 그가 직접 만들었다.

이처럼 철저한 ‘이과생’이던 그가 어느 날 요리에 미치더니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조리사 자격증 4개를 모두 따냈다. 또 국제요리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난다 긴다 하는 유명 셰프들과 컬래버 디너를 선보일 정도로 요리 솜씨가 셰프 뺨치는 경지까지 올랐다. 그는 어쩌다 요리에 푹 빠졌을까. “음식 유래나 재료 숙성과정 등을 놓고 전문가들의 말이 다 달라요. 심지어는 정반대로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정확한 것을 원하는 이과생의 본능이라고 할까, 어떤 것이 정답인지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도 검색하기 시작했죠. 일본 요리만화 ‘초밥왕’부터 전문 서적까지 깊숙하게 음식의 세계를 7년 정도 파고들고 보니 ‘그말은 맞고 이말은 틀리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이 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이대로 가다가는 반쪽짜리 음식평론가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회의가 들었다. 지식은 많지만 실제로 요리를 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평가하기보다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과감하게 그를 요리의 세계로 뛰어 들게 만들었다.
임상진 원장이 요리하는 모습
# 셰프보다 더 많은 요리자격증
막상 요리를 배우려 했지만 독학으로는 불가능했다. 학원을 찾아봤으나 대부분 성탄절 상차리기나 파스타 만들기 등 ‘신부수업’ 위주였다. “아는 셰프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조리사 자격증을 먼저 따라고 하더군요.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에서 조리학과를 전공해야 조리사 응시 자격이 있는 줄 알았는데 중학생도 응시한다고 해요. 전혀 몰랐던 거죠. 그길로 한식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종로의 요리학원 야간반에 등록했답니다. 낮에는 진료하고 저녁에는 매일 프라이팬, 칼 등 조리도구가 담긴 가방을 둘러매고 학원으로 향했죠.”
하지만 의욕과 달리 시험은 매우 어려웠고 첫 시험에서 ‘시원하게’ 낙방했다. 합격률이 30% 미만이었는데 얕잡아본 탓이다. 몇 차례 더 떨어지고 1년 만에 어렵게 국가공인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얻었다. 그러나 친한 셰프들은 겨우 조리사 자격증 하나 취득하고 요리를 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핀잔을 줬다. 이에 다른 요리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한식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중식은 영상으로 독학해 한번에 붙었고 다시 한 달 만에 양식까지 패스했다. ‘조리사 자격증 3관왕’이 됐지만 대단하다는 칭찬은 들려오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일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 한식 시험은 전국에서 한 달에 100회 이상 진행되지만 일식은 한 해에 두세 번, 그것도 두세 도시에서만 시험 기회가 주어져 바늘구멍을 통과할 정도로 어려웠다. 임 원장은 전남 목포까지 가서 시험을 봤는데 놀랍게도 단 한번에 합격했다. 그의 조리사 자격증 취득 날짜를 보면 한식, 중식, 양식, 일식이 거의 한 달 간격이다. 몸속에 타고난 요리 DNA가 있었나 보다.
그러나 정작 요리는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다 끝났다고 여겼죠. 그런데 학교 졸업했다고 다 배운 게 아니더군요. 자격증이 요리의 맛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잖아요. 이제부터 냉정한 평가가 내려질 텐데 뭔가 내세울 만한 메뉴가 없어 어디 가서 요리 배웠다고 말하기 조심스러울 정도였죠.” 이에 그가 선택한 것은 식당이다. 대학병원 인턴의 자세로 돌아가 시간 날 때마다 지인들의 식당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병원을 일주일씩 비우고 식당에서 설거지하며 주방장의 손기술을 어깨너머로 익혔죠.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바뀌며 재료를 다루는 손기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됐답니다. 보통 말하는 ‘손맛’이란 바로 이 손기술이랍니다.”
# 눈 건강 관리에 요리를 접목하다

2015년쯤 중식의 대가 이연복 셰프의 등장으로 쿡방, 먹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셰프들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무작정 찾아가 관계자를 설득해 회비를 내고 셰프단체의 멤버로 가입했다. 처음에는 의사가 무슨 요리를 하느냐고 색안경을 끼고 봤다. “최고의 음식과 숙박을 제공하는 ‘호텔(hotel)’과 병원을 뜻하는 ‘호스피털(hospital)’은 사실 어원이 같아요. 의료시설이 제대로 없던 시절 여행자들은 먹고 자는 곳에서 치료도 받았죠. 호텔에 치료의 개념이 더해진 것이 병원이랍니다. 셰프와 의사는 실제 공통점이 아주 많아요. 셰프는 칼과 불을 다루고 의사도 칼과 불을 다루죠. 여기서 불은 레이저랍니다. 하하.”

셰프들과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면서 이질감을 극복해 나갔고 요리에 대한 열정은 셰프들을 움직여 다양한 대형 요리 이벤트를 함께 열게 됐다. 한 달에 한 차례 일요일 밤 10시에 열던 ‘힐링셰프’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셰프들이 각자의 요리 실력을 뽐내고 모의 요리대회를 하는 작은 행사였어요. 입소문이 나면서 나중에는 일반인까지 요리에 참여하고 봉사활동도 펼치는 행사로 커졌답니다. 2020년에는 여러 내부 사정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중단됐는데, 코로나19가 물러가고 하루빨리 힐링셰프가 재개되는 모습을 꿈꿔 봅니다.”
다양한 행사를 거치면서 임 원장의 요리 솜씨는 점점 늘었고 급기야 2016년 국제중국요리페스티벌 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또 팀을 이뤄 출전한 2018년 사단법인 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주최 국제 마스터셰프 요리대회에서도 대상을 받는 등 요리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요리에서 얻은 경험을 이제 자신의 주업인 눈 건강관리에 쏟아붓고 있다. 바로 2019년 출간한 두 권의 책 ‘눈이 먹는 건강’을 통해서다. 1권은 눈 건강 관련 상식을 ○×로 쉽게 풀었고 2권에서는 눈 건강에 좋은 식재료와 영양소를 소개했다. 특히 차인욱 한식연구가와 함께 건강한 눈을 위한 맛있는 요리 50가지를 엄선해 채소, 곡류, 생선, 해산물,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과일, 견과류 등 식재료별로 일목요연하게 레시피를 정리했다. 읽기 쉽게 글자도 큼직큼직하다. 그는 집에서 쉽게 해먹을 수 있는 눈에 좋은 요리로 연어 우유 달걀찜, 참치마요 무스비, 소고기 편채 등을 꼽았다. “사실 전에도 책을 7권 냈는데 모두 너무 어렵고 글씨도 작은 라식 얘기예요. 라식 책은 이제 그만 써도 되겠더군요. 잘못된 눈 관련 건강상식이 너무 많이 범람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고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눈이 먹는 건강’의 목표예요. 특히 눈에 좋은 음식을 제대로 정리한 책은 없기에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냈답니다.” 임 원장은 조만간 책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를 통해 연재할 계획이다.
# 레시피에 담는 눈 건강 식재료들
현대인의 눈 질환은 평균 수명 연장과 맞물려 위협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증세가 별로 없어 방치하기 십상이다. 과거에는 노인성 실명 질환이 75세 전후로 생겼고 평균 수명도 비슷한 나이여서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평균 수명이 90살이 넘고 실명 질환 발생 시기는 조금 더 앞당겨지면서 노년에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마흔 살을 넘으면서 성인 눈 질환이 시작됩니다. 백내장, 녹내장을 예방하려면 정기적으로 2년에 한 차례씩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특히 성인 실명질환 1위인 황반변성은 한번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어요. 조기 발견해서 치료하지 않으면 실명합니다. 실명 질환을 노안인 줄 알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 들면서 시력이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곧바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임 원장은 노년에는 몸의 모든 영양소가 젊을 때보다 반 이상 떨어지기 때문에 적절한 음식으로 영양소를 채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요리행사 때마다 눈 건강에 좋은 식재료를 반드시 넣는다. 대부분 안토시아닌, 아스타잔틴, 루테올린 등 항산화물질이 다량 함유된 식재료들로 눈 피로 해소와 조기 노안 방지 등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안토시아닌은 블루베리 등 베리류, 아스타잔틴은 연어와 갑각류에 많아요. 최근에는 루테올린이 눈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제약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제품을 쏟아내고 있답니다. 보통 일본 깻잎으로 알려진 차조기(소엽)에 풍부합니다. 항산화 물질은 디지털 기기로 혹사 받는 직장인과 젊은 층에도 꼭 필요해요. 노년에는 망막질환이 가장 큰 문제인데 루테인과 지아잔틴이 큰 도움이 됩니다. 녹황색 채소와 국화꽃차에 많이 함유돼 있으니 이런 식재료들을 자주 섭취하면 눈 건강을 오랫동안 잘 지킬 수 있답니다.”

글·사진=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임상진 원장은 1965년 서울 출생 ●서울고·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의학석사, 박사 ●대한안과의사회 부회장 ●SL안과 대표원장 ●조리사 커뮤니티 힐링셰프 상임고문 ●사단법인 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이사 ●2016년 국제중국요리페스티벌 요리경연대회 대상 ●2016년 WACS 코리아 푸드트렌드페어 금상 ●2018년 농협중앙회 주최 치즈요리대회 대상 ●2018년 한국중찬문화교류협회 주최 국제 마스터셰프 요리대회 대상(탁터셰프팀) ●2018년 국제마스터셰프대회 서울시장상 ●한식, 양식, 중식, 일식 국가공인 조리사자격증 취득 ●르꼬르동블루 이탈리아 요리과정·프랑스와인 마스터과정 수료 ●프랑스 보르도 와인협회 와인감정사 자격인증 ●프랑스 브르고뉴 와인협회 와인감정사 자격인증 ●이탈리아 VinItalia 와인협회 와인과정 마스터 수료 ●MBC 아침방송 ‘기분좋은날’ 의학패널 및 요리연구가로 출연 ●SBS, KBS, TV조선, 채널A, jTBC 눈 건강 및 눈 건강 요리 자문과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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