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 다시 찍는다면 더 달콤해질 수 있을까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와 한국 케이크의 현주소
건축 전공자로 책에 치여 살다가 몇 년 전 책장을 대폭 정리했다. 총 세 칸 반짜리 책장에 담을 수 있는 만큼만 유지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수많은 책이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2003년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만화책이 있다. 요시나가 후미의 ‘서양골동양과자점’이다. 한국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년)의 원작이다.
부잣집 도련님 진혁(주지훈)은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케이크 가게 ‘앤티크’를 개업한다. 독특하게도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 앤티크에 학창 시절 진혁을 좋아했던 ‘마성의 게이’ 선우(김재욱)가 파티셰(patissier·제과사)로, 전직 권투 선수 기범(유아인)이 견습생, 진혁의 보디가드 수영(최지호)이 웨이터로 합류한다. 앤티크가 동네의 별로 자리 잡으며 온갖 인간 군상이 들락날락하는 가운데, 진혁이 기억 못 하는 어린 시절 유괴 사건의 실마리가 스며든다.
케이크 가게가 배경이지만 영화는 전혀 달콤하지 않다. 4권짜리 원작의 서사 전부를 떠다 욱여넣어 중구난방이고 허접하다. 특히 영화의 핵심인 케이크가 조악하다. 13년 전 영화임을 감안하더라도 케이크 만듦새는 지나치게 허술하다. 아무래도 원작에서 등장하는 케이크 대다수가 ‘앙트르메(entremet)’인 탓이다.
똑같은 스펀지와 크림이 여러 켜 되풀이되는 일반 케이크와 달리, 앙트르메는 맛과 질감이 다른 여러 요소를 대체로 1번씩만 써서 쌓아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켜 전체를 자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도록 부드러운 무스(mousse) 종류로 덮어 마무리한다. 더군다나 앤티크 과자점 제품은 대부분 1인용 케이크 ‘프티 가토(petit gateau)’다. 이래저래 웬만한 솜씨가 아니고는 잘 만들기 어렵다.
영화 속 앤티크 제과점 자체도 허술하다. 일단 케이크 가짓수가 적고 밀도가 너무 낮다. 제과 제빵, 특히 케이크 세계에서는 완성도만큼이나 가짓수와 양 또한 실력의 척도로 통한다. 개별 케이크를 깔끔하고 똑 떨어지게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제품을 진열장에 다양하게 가득 채워 놓을 수 있어야 진정한 파티셰 반열에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주방도 허술하다. 제과점 주방은 오븐부터 냉장고, 믹서 등 큰 기기부터 거품기며 짜는 주머니, 나이프 같은 도구를 엄청 많이 쓰다 보니 공간이 넉넉하지 않다. 또한 구워 식히고 부어 굳히는 등, 시차를 두어가며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드는 제품이 많다. 따라서 설사 공간이 넉넉하더라도 수직적 수납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실은 이렇지만 앤티크의 주방은 휑뎅그렁한 게 최소한의 흉내만 낸 티가 너무 난다.
이처럼 ‘앤티크’는 확실히 아쉬운 영화지만, 2021년 리메이크를 한다면 적어도 케이크만큼은 수준을 확 높일 수 있다. 서울 방배동 ‘메종 엠오’(070-4100-3335)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 파티셰 가운데 한 명인 피에르 에르메의 도쿄 지점 총괄 파티셰였던 오쓰카 데쓰야와 역시 파티셰인 아내 이민선씨 부부가 5년째 분투하며 케이크를 만든다. 프랑스 영향이 두드러지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케이크는 연출이 그저 그런 영화조차도 빛내줄 만큼 완성도가 높다. 현재 휴가 중이고 1월 14일(목)에 다시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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