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선의 뇌가 즐거워지는 과학] '정인아 미안해' 그 후

2021. 1. 9.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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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함에 대하여
잔혹함에 대하여

“어떻게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악마다, 악마야.”

만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형용할 수 없는 학대의 고통을 당하고 죽었다. 숨진 과정이 너무나 잔혹하고 충격적이라 피가 거꾸로 솟구치며 이성의 끈을 잠시 놓을 만큼 큰 슬픔과 분노가 치밀었다. 아마도 소식을 접한 많은 이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잔혹한 악행을 대하는 뇌의 가장 원초적인 방법은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분노하는 대상은 머릿속에서 괴물로, 악마로 변한다. 그러나 잔혹함과 악은 같지 않다고 심리철학자 애덤 모턴은 ‘잔혹함에 대하여: 악에 대한 성찰’(돌베개)에서 말한다. 잔혹한 학대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는 결코 악마가 아니다. 인간이다. 우리가 가해자를 ‘괴물’ 취급하며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그러한 악행을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오히려 그러한 잔혹함이 반복해서 일어날 여지를 주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부분의 악행은 충격적이지만 여러분이나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행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이가 학대당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눈을 감고 피해버렸다. 도움의 손길을 뻗었어야 할 경찰과 행정 담당자들도 ‘괜찮겠지’ 생각하며 의무를 외면했다. 외면이 일어나는 까닭은 인간이 넘을 수 있는 잔혹함의 선(線)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잔혹함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역자는 저자의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한다. “악행에 대해 보복이나 단죄에 앞서 무엇보다 진실의 추구가 우선해야 한다. 그 과정은 악행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는 힘겨운 과정을 요구한다.” 분노에 찬 응징을 외치기 전에 우리 주변의 잔혹함을 찾아보고 나는 외면하고 있지 않았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인아 미안해.”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해시태그를 올리고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 뇌과학자·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

장동선 뇌과학자·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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