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과수원 길 그 꽃, 아카시아 아닌 '아까시'

채민기 기자 2021. 1. 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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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문답

조현진 지음|눌와|172쪽|1만5500원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이 노랫말엔 식물학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아카시아란 주로 아프리카·호주에서 자라며 회녹색 잎사귀에 둥근 꽃을 피우는 식물들의 통칭이고, 한국의 동구 밖에 서서 하얀 꽃 이파리를 눈송이처럼 날리는 건 ‘아까시나무’다. 그렇다고 “아까시나무 꽃 하얗게 핀”이라 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먼 옛날의 과수원 길일 수 없게 된다. 식물화가인 저자도 이 점을 우려한 듯 “표준국어대사전에 아카시아가 아까시나무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등재되어 있으니 식물학자가 보기에 정확하지 않을 뿐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해 놓았다.

꽃잎 한 장, 잎사귀 하나에 깃든 이야기들을 문답으로 꼼꼼하게 구성했다. 말하지 않는 식물의 목소리를 듣는 섬세함이 생생하면서도 차분한 세밀화에서 드러난다.

열두 가지 식물을 열두 달의 테마로 삼은 화투도 승부 아닌 탐구의 현장이다. ‘똥’은 사실 오동나무이며 검은 덩어리는 잎사귀를 묘사한 것이라고, ‘흑싸리’가 화투장 위쪽부터 거꾸로 자라는 것은 싸리나무가 아니라 덩굴식물인 등나무여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하루는 회식하던 친구가 생선회를 장식한 보랏빛 꽃의 이름을 물어왔다. 그것은 ‘덴파레’라는 난초이며 꺾어 놓아도 잘 시들지 않아 장식에 쓰인 모양이라고 일러주면서 저자는 생각했다. “친구는 생선살 위에서 잎도 줄기도 없이 웃고 있는 그 꽃에서 피곤해도 회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신의 표정을 발견했을까.” 그리고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 친구처럼 우리는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듯 식물에게 반하게 된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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