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초상권이 있거든요!
얼마 전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장면을 목격했다. 온라인에 떠도는 속칭 ‘짤’이란 사진으로 문제를 풀던 중 갑자기 비연예인 사진이 등장했다. 다른 방송국 방청객이었던 여성 얼굴이 화면에 뜨자 출연자들은 한 개그우먼을 닮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잠깐! 의문이 들었다. ‘저 사진, 사용 허락은 받았을까?’ 안 받았다면 초상권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은 아무 설명 없이 끝나버렸고, 아니나 다를까 이후 그 프로그램은 동의 없이 일반인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인터넷에서 알려진 사진이라도, 본인 허락 없이 방송에 사용했다면 비난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번 논란을 보며 생각난 옛일이 있다. 과거 명절 선물 세트 취재를 위해 한 백화점에 갔을 때다. 홍보실에 허가도 받고, 담당자 인터뷰도 다 섭외해뒀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촬영이 끝나고 철수를 하려는데 느닷없이 한 판매원이 항의를 해왔다. 남편 몰래 일하는 중이라 절대 TV에 얼굴이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피해서 촬영했을 텐데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현장에서 영상을 확인해보니 그 판매원이 너무 많이 찍혀 있었다. 심지어 인터뷰 뒷배경에도 등장할 땐 실소가 터졌다. 설득을 해볼까 고민도 됐지만 ‘싫다’는 의사가 워낙 확고해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촬영했다. 그때는 고집을 피우는 판매원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번 ‘비연예인 짤(사진) 논란’을 보며 나는 안 쓰더라도 영상이 남아있는 한 그 판매원 얼굴이 언젠간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 촬영한 게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크고 작은 초상권 문제를 만난다. 온라인 영상을 따서 쓰다 항의를 받기도 하고, 뉴스 자료 화면에 자꾸 헤어진 애인과 데이트하는 모습이 나온다며 금전적 보상을 요구해 오기도 한다. 작정하고 그런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당사자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초상권 침해 책임은 언제나 제작진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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