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요즘 시국? 난 희망을 봤다"

박돈규 기자 2021. 1. 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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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장례식 이후 어느덧 20년
7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작가 이문열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연말에 ‘우리 사회가 쉽게 무너지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감사원과 법원이 신선한 감동을 줬다. 희망적인 신호다.”

지난 7일 오후 경기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난 작가 이문열(73)은 “요즘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20년 전 (이문열 소설을 불태운) ‘책 장례식’이 열린 장소다. 간밤에 내린 눈은 빙판으로 변해 길이 엉망이었다. 부악문원 앞엔 아무 발자국 없이 눈만 수북했다.

이문열이 원작 희곡(‘여우사냥’)을 쓴 뮤지컬 ‘명성황후’는 25주년 공연(1월 19일부터 예술의전당)이 코앞이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20년 전 ‘책 장례식’과 정치, 세상 이야기로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그는 “이 정부에서 임명한 최재형 감사원장이 터뜨린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문제가 특히 컸다”고 했다.

-교수신문이 최근에 뽑은 2020년 사자성어가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다.

“1987년에 발표한 ‘구로아리랑’에 “지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믄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라는 표현을 썼다. 그게 ‘내로남불’이고 어쩌면 ‘아시타비’의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두 진영으로 쪼개진 것 같다.

“아까 안도감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도 ‘이거 큰일 났다’ 싶었다. 하지만 2020년을 넘기면서 생각보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겹치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법원이 살아 있고 진중권·강준만·홍세화도 돌아섰지 않나. 진중권·강준만은 20년 전에 나한테 악쓰고 덤빈 사람들이다.”

-좀 더 설명해달라.

“공자가 남긴 말 중에 ‘사람을 죽여도 되는 다섯 가지 죄’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거짓을 말하면서 달변인 죄’다. 20년 전 홍위병 파문은 진중권과 얽혀 있다. 내가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을 보고 ‘홍위병을 돌아보며’라는 칼럼을 쓰자 진중권이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이문열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시민운동에서 홍위병을 떠올리듯이 나도 그를 보면 젖소부인이 생각난다는 내용)라는 글로 반박하며 논객으로 떠올랐다. 강준만은 ‘개가 짖어도 돌아보는데 얼마나 무시하면 대꾸를 안 하냐’고 나를 욕했다.”

-그랬던 그들이 문재인 정부와 갈라섰다.

“어떤 책임감 때문에 앞장섰는데 가다 보니 ‘이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더는 찬성 못 하겠다’며 선 긋기를 한 거다.”

-진중권이나 강준만과의 논쟁은 일부러 피했나.

“검도 6단도 초단과 붙으면 손목 하나 날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겨도 상처받고 지면 끝나는 그런 싸움을 내가 왜 하겠나.”

-홍위병 파문 이후 2001년 이곳에서 ‘책 장례식’이 열렸다.

“안티조선운동과 주사파가 합세해 선동한 퍼포먼스였다. 당시 나는 코웃음도 안 쳤다. 상처는커녕 오히려 훈장 하나 달았다는 기분이 들었을 정도였다.”

-이 정부가 내건 적폐 청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치적인 구호일 뿐이었다. 나는 박근혜 싫어하고 탄핵에 별로 불만 없지만, 문재인 정부가 적폐를 말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 내부에 전부터 쌓여 있던 적폐가 권력을 잡고 나서 다 드러나고 있지 않나. 추미애도 그렇다. 10년 아래인 추미애는 20년 전에 나를 향해 ‘곡학아세(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한다)’라며 공격한 뒤 기자들 앞에서 취중에 ‘가당치 않은 놈’이라고 폭언했다. 일간지 1면에 났다. 어떤 기자는 욕하기 민망해 ‘비(非)가당자’로 바꿔 썼다. 나는 그때부터 추미애의 본질을 알아봤고 ‘비가당녀’로 여긴다.”

-정치권에 내로남불이 극심하다.

“옛날에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일본에서 눈이 하나 먼 여당 의원이 있었다. 야당 의원이 ‘애꾸야, 한 눈으로 뭘 보냐?’고 쏘아붙이자 그가 이렇게 대꾸했다. ‘뭐 인마, 일목요연(一目瞭然)하지!’(웃음) 그렇게 말을 뒤집는 게 정치의 속성이다. 내로남불은 정치권 바깥에도 흔하다.”

-최근까지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뉴스를 지배했다.

“나는 순기능도 있다고 본다. 청와대나 거대 여당이 마음먹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온 국민이 알게 됐다. 아주 긍정적인 신호다.”

-월성 1호기 폐쇄 논란에 대해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중국에 태양광을 바치려고 그랬다는 둥 가설은 여럿이다.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비상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오죽 답답했으면 ’신내림을 받았다'고 했지 않나. 빠르면 검찰 수사로 드러나거나, 늦어도 그 의혹이 투표에 반영될 것이다. 지금 풍력 발전도 문제다. 내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 등장하는 창수령(고개)을 넘으면 풍차가 150개 돌아간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다 베어냈다. 그 바람에 짐승들은 다 사라졌다.”

-보수주의자는 보수(保守)를 뭐라고 정의하나.

“내가 보기엔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박정희 20년과 신군부 10년이 절벽처럼 가로막고 있는데 그들이 100% 악당이 돼버렸다. 아니다. 그 시대를 거쳐 도착한 게 오늘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필요악이었다. 우리가 다시 전두환과 3김(金) 중 선택을 한다고 치면 누굴 고르는 게 나았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코로나 사태로 예술가도 위기인데.

“내 제자가 많다. 학교에라도 자리를 잡으면 살지만 나머지 전업작가는 전멸이다. 단 한 명도 문학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비참하다. (정부 지원은 다양해지고 늘어난 것 같다고 하자) 그렇긴 하다. 하지만 문학이 정부가 보호해야 할 것으로 전락하는 순간 ‘당 일꾼‘이 되는 셈이다. 예술가는 그렇게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어야 자율성이 유지된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25주년 공연을 한다.

“마음먹고 매달리면 질기기가 쇠심줄 같은 친구(연출가 윤호진)가 등을 떠밀어 쓴 작품이다. 명성황후에 대한 애정이 없어 처음엔 곤혹스러웠다. 일본 자료와 달리 영미권 자료는 명성황후에 우호적이라서 도움이 됐다. 하기사 증오도 문학생산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증오도 열정이다.”

-그동안 민음사에서 낸 책 중 대부분(약 70종)을 RHK 출판사로 바꿔 냈는데.

“민음사에서 40년이 지났다. 마지막이라는 생각도 들어 약간 교정을 봐서 넘겼다. 작가로 활동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울적하고 허망하다. 연재가 중단된 ‘둔주곡’부터 재개하고 싶다. 마감 시간에 쫓기는 셈인데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쇠약해졌고 정리하는 힘도 부족하다.”

-요즘 시국을 어떻게 보나.

“별로 할 말이 없다. 기분 좋게 관망하고 있다. 아까 ‘희망을 봤다’고 했는데 정경심과 윤석열 등에 대한 딱 부러지는 법원 판결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성숙하고 견고한 두께랄까 지층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7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난 작가 이문열. 이날 아침 직접 눈을 쓸었다고 했다. 뮤지컬 '명성황후' 25주년 공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장수할 줄 몰랐다"며 "원작을 쓸 때의 곤혹스러움 때문에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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