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소환] 발견의 회복
[경향신문]
왁자한 소음이 공간을 채운다. 한 손에 ‘에페스’ 맥주병을 든 사람들이 ‘맥주 박스 피라미드’에 걸터앉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작가 시프리앙 가이야르는 10년 전, 베를린의 전시장 KW에 터키에서 수입한 ‘에페스’ 맥주 7만2000병이 담긴 1만2000개 파란 박스로 6m 높이에 달하는 설치 작품 ‘발견의 회복’을 설치했다. 관객은 박스에서 원하는 만큼 병을 꺼내 마실 수 있다. 술병을 꺼낼 때마다 종이 박스는 비어가고, 피라미드는 머지않아 주저앉을 것이다. 음주를 즐기며 흥을 올릴수록, 그들이 머무는 이 장소는 파괴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있을까. 과연 언제 박스가 무너질까. 술에 취할수록, 이 술이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관객은 언제 파괴를 멈출 것인가. 그들은 멈출 이유가 별로 없다. 즐길 만큼 즐기고 떠나면 그뿐, 파괴하거나 보존하는 문제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맥주 ‘에페스’의 이름은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한 터키의 에페소스에서 따왔다. 작가는 터키에서 옮겨 온 ‘에페스로 세운 피라미드’로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옮겨 온 터키의 유적지를 상기시킨다. 독일은 페르가몬의 제우스 신전을 통째로 베를린의 미술관 섬에 옮겨다 놓았다. 독일인의 의지로 기념물을 보존하기 위해 터키의 페르가몬은 훼손되었지만, 베를린으로 옮겨진 페르가몬 유적들은 최고의 보존 조건을 갖춘 미술관 안에서 최고의 관리를 받으며 관객들을 만난다.
기분 좋게 취한 이들이 떠난 전시장에는 폐허처럼 무너져 내린 푸른 피라미드와 깨진 술병, 마시다 만 맥주병이 굴러다니고, 정리는 다른 이의 몫으로 남아 있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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