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죽기 전에

오수경 자유기고가 2021. 1. 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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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방대 사회학과 졸업 후 기자를 꿈꾸며 상경해 5년 넘게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하던 오수연은 ‘매일한국’ 인턴으로 입사한다.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그의 꿈이 깨진 건 “허접한 지방대 출신”을 팀원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편집국장의 의지 때문이었다. 동료 인턴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졌음에도 그를 탈락시키라는 편집국장 말을 우연히 듣게 된 오수연은 그날, 매일한국 홈페이지에 부고 기사 형태로 자신의 유서를 발행한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청년 인턴 오수연의 죽음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턴기자 자살’ 소식이 실시간 검색에 오르고, 추모 물결이 이어진다. JTBC 드라마 <허쉬> 이야기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그의 죽음은 ‘기레기’라 자조하며 살던 한준혁 기자를 각성하게 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장례식장의 육개장은 너무 빨리 식었고, 매일한국은 ‘클릭 수 장사’를 위해 자신의 동료였던 이의 죽음을 활용했다. 여기까지 보고 이 드라마 시청을 포기했다. 오수연의 죽음이 한준혁 기자의 각성을 위한 도구, 살아남은 이들의 자기 연민을 위한 변명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꼭 죽어야만 했을까.

어느 때부터 누군가의 불행이나 죽음이 그저 주인공을 각성하게 하는 계기로 활용되는 서사가 불편하게 여겨진다. 왜 우리는 늘 누가 죽어야만 각성하고, 그제야 고쳐야 할 것들이 보이는 걸까. 죽기 전에 바꿀 수는 없을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은 아마 ‘○○법’으로 호명되는 법들의 이름일 것이다. 누군가 죽어야 겨우 만들어지는 법. 그 법들이 마치 무덤같이 여겨질 때가 있다.

차라리 그 죽음들이 산 자들을 각성하게 하는 계기라도 되면 좋겠다. 늦게라도 ‘○○법’이 제대로 만들어져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지 않게 된다면 그 죽음에 덜 미안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각성하길 거부하는 이들이 법을 만드는 자리에 있기에 우리는 덜 미안할 기회를 자꾸 놓친다. 그러는 사이 충분히 위로받아야 할 유가족이 거리의 투사가 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혹한에도 단식농성하는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고 이한빛의 아버지 이용관씨가, 고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씨가, 고 김동준의 어머니 강석경씨가 원하는 것은 단순하고 선명하다. 다시는 내 자식이나 동생 같은 죽음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했든, 대기업에서 사망했든 노동자 죽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기업 책임을 명확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유가족이 국회 앞 천막에서 몸도 마음도 얼어가는 사이, 국회는 제대로 된 법은커녕 ‘악마의 디테일’을 살려 누더기 법을 만들었다. 새해부터 나온 ‘통합’이라는 구호가 여야 구분 없이 기업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려는 의미였던가. 국회와 국회 정문 앞 농성장 사이의 거리가 이렇게 아득하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다른 이의 고단한 죽음을 뒤늦게 애도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 불행은 자극적인 기사로 생산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될 것이다. 재빠른 정치인들은 ‘○○법’을 만들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흩뿌릴 것이다. ‘죽기 전에’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앞에 있다는 걸 우리는 모른다. 아니 ‘죽어도’ 모르더라.

오수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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