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에게 요양원 시절은 '단풍이 곱게 물든 계절'입니다"

2021. 1. 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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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훈 노인전문요양원 '여래원' 사무국장
사회복지사 원경훈씨는 “노인복지가 체질이란 확신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광원 기자

대구 남구에 위치한 노인전문요양원 ‘여래원’에 근무하는 원경훈(38) 사무국장은 노인전문 사회복지사로 통한다. 그는 “대구광역시자활센터와 중구노인복지관 등 다양한 노인복지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노인복지가 체질이란 확신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서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원 사무국장은 “노인복지를 다른 말로 하면 인생 공부이자 사람 공부”라고 말했다. 최근에 얻은 깨달음은 “일상이 곧 인격이 된다”는 것이다.

“평생 경찰을 하신 분은 사회복지사들의 손이 닿으면 자기도 모르게 호신 무술을 쓰세요. 몸이 기억하는 거죠. 공직에 오래 계셨던 분은 결재판에 사인하는 걸 좋아하시구요. 평생의 습관이 남아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일상에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신념으로 살았는지 하는 것도 모두 드러납니다. 하루하루가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결정적 원인이 되는 셈이죠. 하루하루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사회복지사들이 겪는 빼놓을 수 없는 고충 중의 하나는 ‘세대갈등’이다. 젊은 사람들의 눈에는 모두 ‘노인들’이지만 여래원의 최고령자는 100세, 가장 젊은 사람과 41살 차이가 난다. 60~70대 노인도 방을 배정받기에 따라 아버지뻘 어르신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

“한번은 80대 어르신이 ‘니는 어른이 들어왔는데 와 누워있노?’ 하시면서 같은 방 60대 어르신을 혼내신 적이 있어요. 결국 방을 바꿨죠.”

세대 차이 극복을 위해 세대공감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60대, 70대, 80대 어르신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어우러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때로 노인과 사회복지사 간의 갈등도 일어나기도 한다. 한 어르신은 2개월간 탈출시도를 했다. 입소 첫날에는 원 국장을 때리려고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입소하는 노인 중 상당수가 본인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분노가 큰 어르신들은 요양보호사나 사회복지사에게 그 분노를 표출한다. 원 사무국장은 “그분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밖에 없다”면서 “공무원 출신인 분께는 결재판에 전달사항을 적어서 전달하는 식으로 될 수 있으면 익숙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한다”고 귀띔했다.

가장 힘든 순간은 어르신들이 떠나가실 때다. 원 사무국장은 입사 7개월간 추억을 많이 쌓은 어르신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불과 40분 만에 돌아가셨어요. ‘어르신 회의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드렸었는데 회의 후에 돌아가셨죠.”

이전에도 노인복지 기관에서 근무하였지만, 죽음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삶과 죽음이 그만큼 가까운 공간인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바로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상황은 누구라도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원 사무국장은 이를 치유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했다.

“결론은 이거예요. 심리적 과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잊으려 하면 오히려 더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기억하려고 했죠.”

그래서 고안한 것이 전생애 사진집 프로그램이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가장 잘나갈 때의 사진만 간직한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모습들을 사진으로 병상 주변에 꾸며 놓는다. 원 사무국장은 이들을 위해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준비해 멋진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려고 한다. 요양원에 있으면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했던 시간들을 멋진 사진으로 남겨 추억을 선물하는 셈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기억나무’를 만들어 여래원의 모든 노인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죽음을 수용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요. 왕년의 푸르디푸른 시절에만 집착하다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삶이 너무 쓸쓸하잖아요. 요양원 시절은 말하자면 이파리를 모두 떨구기 전 단풍이 곱게 물든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라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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