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인적 끊어진 화양계곡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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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트럭은 진천을 거쳐 다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릴 듯한 화양계곡을 향한다.
해가 바뀌어 이제 그 희생된 대원들의 선배들이 시신들을 수습하러 다시 마나슬루를 오르지만 막내 대원 한 사람만의 시신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눈 쌓인 한겨울은 옛날 386세대의 일원이었던 나를 검은 고독 속에 밀어 넣는다.
나 홀로 먼저 당도한 화양계곡은 아무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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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은 '학병세대' 한운사의 고장
나의 트럭은 진천을 거쳐 다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릴 듯한 화양계곡을 향한다. 거기서 이 작가, 이 평론가,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이 작가의 퇴직을 늦게나마 ‘기념’해 주기로 했다. 원래 약속 같으면 어디 외국으로라도 가보자 했건만 ‘코로나’라는 비상시국은 인적 없을 계곡을 대안으로 삼게 했다.
희디흰 높은 설산에서 얼어붙은 채 누워 있는 ‘어린’ 후배의 시신에 살아있는 선배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엔딩 장면에 가수 임지훈의 노래가 흐른다. “소리 없는 밤비가 내리는 밤이면, 휘저으며 스쳐가는 친구의 영상이, 꿈을 먹고 살자 하던 친구의 음성이, 슬퍼하지 않으려오 친구와의 별리를, 아름다운 추억 속에 친구가 있으니까, 슬퍼하지 않으려오, 친구가 떠남을, 당신은 저 별에서 꿈을 꾸고 있을 테니”
터널을 지나 용산리, 용기리 지나 미원 방향으로, 청안 방향으로 달리며, 나는 마음속으로 언제 시가 되어 나올지 모를 몇 문장을 써내려 간다. “내 외로움은, 친구들을 버려두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데서 왔다, 온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 나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나까지도 집어삼킬 것 같은 어둠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았고, 좋은 친구들은 정말로, 깊은 어둠 속에 그렇게 파묻히고 말았다……”
눈 쌓인 한겨울은 옛날 386세대의 일원이었던 나를 검은 고독 속에 밀어 넣는다. 희망이라 믿었던 것은 신기루로 빚어진 어두운 유토피아였다. 이 어둠의 마력에 사로잡혀 파묻히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려야 했다.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을 향해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암벽을 긁어야 했다. 그런 행위에 비하면 높은 히말라야 설산 등정은 오로지 무욕한 ‘욕망’이라는 역설만을 품은, 빛나는 고독의 투사일 것이다. 그러기에 젊은 그는 죽어서도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던가.
어느덧 차는 괴산으로 접어들어 청안에 이르렀다. 옛날에는 청연 또는 청당이라고도 한 이곳은 영화 ‘현해탄은 알고 있다’, ‘현해탄은 말이 없다’, ‘이 생명 다하도록’의 작가로 잘 알려진 한운사(韓雲史, 1923.1.23.∼2009.8.11.)의 고장이다. 그의 세대는 문학사에 ‘학병세대’라는 말로 기록되고 있다. 그를 비롯하여 이병주, 장용학, 손창섭, 김성한 같은 작가들은 일제 강점이 본격화된 시기에 출생하여 그들의 성장기 전체를 일제의 지배 논리가 계속해서 강화되는 시기에 할당당해야 했다.
한운사는 청주상고를 졸업,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에 유학했다가 1944년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해방될 때까지 운전병으로 복무해야 했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주인공 아로운(阿魯雲)은 영어 ‘alone’을 옮겨놓은 것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일본 군대 복무 경험을 극작으로 옮겨 놓은 한운사는 자신의 세대의 고독한 운명을 대변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 홀로 먼저 당도한 화양계곡은 아무 말이 없다. 화양서원의 만동묘를 외면하면서 지나쳐 화양구곡 길을 걸어 들어간다. 고독이 사무쳐 금방이라도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휑하고도 깊은 계곡 길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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